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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람쥐가 가져온 상념

뒤뜰에 사는 다람쥐가 선물을 가져왔다. 야생 호두 스무 개가 문 옆 구석진 곳에 놓여 있다. 문 앞에서 두발을 모으고 서 있는 모습이 이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먹던 땅콩을 짐짓 흘려준 것이 고마워서 일까? 일단 참한 뜻을 받기로 하고 두 알만 남기고 나머지는 집안으로 들였다. 너의 마음은 안다. 그만큼의 호두를 모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올겨울을 새끼와 나기 위해서 그 작은 입이 얼얼하도록 물어 날랐을 것이다. 일단 문 앞에 두고 시간 날때마다 땅을 파고 묻을 작정이었겠지. 내 문 앞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밉지 않다. 그 많은 호두를 하루 밤사이 다 묻을 수는 없을 터 밤사이 스컹크나 라쿤이 뺏아갈 것 같아 매일 두 개씩 내놓기로 한 것이다. 기특하게도 내 뜻을 알아차린 것인지 밤사이 두 알씩..

단상/일상 2021.09.15

나 자신의 하자 보수 2

도심 곳곳이 공사 중이다. 하기야 그 많은 사람과 차들이 바글거리는 곳이니 고칠 것이 오죽 많을까? 이해심을 발동하려고 해도 차가 밀리고 심지어 느닷없이 길이 끊기기도 하니 짜증이 난다. 며칠이면 견딜만 하겠는데 어떤 공사는 10년이 넘도록 진행형이다. 덜 불편하게, 더 빠르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나도 공사가 필요하다. 특별하고 어려운 공사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을 고쳐야 하는 일이다. 공사에 대한 정보는 많으나 시공자는 나 혼자다. 공기도 정해져 있지 않고 감독관도 없다. 오롯이 내 책임하에 진행된다. 우선 공사 매뉴얼을 보자. 수천년 전부터 발간된 된 종교 교과서, 현재 교양서적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가지수도 무지 많다. 그다지 어려운 전문 용어는 없다. 그냥 하면 된다. 문제는..

요설 2021.09.14

나 자신의 하자 보수 1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나서 “참 좋았다”란 감탄사를 남기셨다. 그리고 당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시고 그 좋은 세상에 살도록 하셨다. ‘화룡점정畵龍點睛)’ 하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사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 참 좋다는 생각이 항상 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 볼 것 없이 나 자신을 곰곰이 뜯어보면 하자가 한 두 곳이 아니다. 만약 이런 상품을 쇼핑몰에서 판매하면 즉시 환불 요청이 들어올 것 같다. 창조주께서 그동안 너무나 많은 인간을 창조하시다 보니 나 같은 불량품도 생겼을 것이라는 우스개말도 해 본적이 있다. 불행히도 인간은 한번 만들어지면 반품이나 신품으로 교환이 안된다. 버리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고쳐 써야한다. 설사 불량품이 아니더라도 험한 세상에서 살다 보면 먼지도 ..

요설 2021.09.14

낚시 8맛

1. 친구가 생긴다 술꾼들이 술 인심 후하듯이 낚시꾼들은 낚시 정보에 인색하지 않다. 공통 관심사를 갖고 아낌없이 퍼주는 분위기가 조성되니 낚시 이야기를 나눌 때만큼은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된다. 2. 상상의 나래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여행을 계획할 때가 더 즐겁다고 했다. 어디로 갈까? 그곳은 어떤 풍경일까? 몇 호 바늘을 맬까? 어떤 놈이 물까?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편다. 맛있는 것 먹을 때 보다 맛있는 음식 상상할 때 침이 더 흐르는 법. 3. 가는 길이 즐겁다 고기는 이른 새벽이나 해 저물 때 잘 문다. 새벽에 작은 낚시배를 타고 바다로 나서면 해돋이를 볼 수 있다. 뱃전에 앉아, 파도를 이고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다. 4. 기다림의 묘미 만약 매 1..

단상/재미 2021.09.14

내 맘 니가 알고 2

개도 사람 마음을 읽는다. 독일의 한 연구소에서 나온 실험 결과를 소개하는 신문 기사의 제목이다. 내용을 보니, 개는 주인의 행동을 보고 최소한 그것이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우연한 실수에 의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가 아니지만 나는 기사를 읽고 한가지 의문을 가졌다. 그 연구 결과로 인해 ‘개는 인간의 행동을 100% 읽는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전문을 원문으로 읽지 못한 나로서는 그냥 의문을 가져보는 수준이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개가 인간의 마음을 읽을 수도 있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영화 장면 중 한참 사랑을 나누던 여인이 연인에게 돌연 살해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연인이, 사실은 살해 목적을 가진 킬러였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 속 이..

단상/소통 2021.09.13

이기심을 먹고 사는 바이러스

개인의 자유와 집단의 이익과는 충돌이 일어날 수 있다. 사회 전체로 보아서는 바람직한 것이나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속박하는 경우 어느 것을 우위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는 쉽게 결정하거나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로는 그 사회의 문화 혹은 주된 가치관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최근의 백신 사태의 예를 들어보자. 과학적 분석과 노력에 의해서 현 팬데믹 상황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백신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고 국민 대부분이 최단 시간내 백신을 접종해야만 팬데믹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백신을 맞은 후 항체 형성율이 최소 60% 이상이다, 부작용은 거의 없다 등등의 과학적인 통계보다는 내가 수십만 분의 일 가능성으로 운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심..

시사 2021.09.12

내 눈에는 티끌조차 없소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내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 의미는 익히 아는 바이니, 말꼬리 잡기 놀이를 해보자. 진정 내 눈에 들보가 있다면 못 느낄까? 들보가 아니라 티끌만 있더라도 남의 눈 속 들보 타령 하기전에 내 눈부터 비빌 것이다. 아침에 세수하고 나서 눈썹 하나가 눈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느끼면 그냥 두기 힘들다.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게 엄격한 것은 특정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거칠게 말해서 인간이면 다 그렇다. 심리학 용어를 한가지 빌려보자. 방어기제란 것이 있다. 인간이 생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조물주가 주신 선물이다. 그 중에서 널리 알려진 ‘합리화’란 기제는 불쾌한 상황을 그럴듯한 이유로 정당화하여 변명하는 것이다. 여우가 포도를 따 먹으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하..

시사 2021.09.11

행복했던 순간 3

캐나다로 이민 와서 처음 정착한 B.C주에 있는 작은 도시는 마치 고향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물론 낯선 이국 땅에 처음 발붙이고 산 곳이니 그러겠지만, 천당 보다 조금 못한 999당이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문자 그대로 산 좋고 물 좋은 곳이어서 더욱 정이 가는 곳이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이민 초기의 어려움을 많이 어루만져준 한 local 성당은 마치 고향 부모님 집과 같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아내를 따라 운전 기사로 성당을 다닌지 거의 8년 만에 세례를 받았다. 청강생 보다는 정식 졸업장을 받아 두는 것이 나중에 뵐지도 모르는 그분을 만날 때 더 유리할 것이라는 세속적인 계산이 마음속 저 밑바닥에 깔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정식으로 성당 재적 학생이 되고난후 나름 열심히..

단상/행복 2021.09.11

행복했던 순간 2

방학이 시작되는 날 늦은 오후다. 겨울 방학은 길다. 1달 넘게 수업 안 받아도 되고 매일 숙제 걱정도 없다. 참 편하고 기쁘다. 눈발이 가끔씩 날리지만 찬 바람은 대부분 문풍지가 막아주니 온돌방이 따듯하다. 아랫목에 깔아 놓은 캐시밀론 이불속에 드러누워 무협지를 읽는다. 무협지는 참 재밌다. 하늘을 나는 주인공은 잘 죽지도 않는다. 그러나 악당은 결국 죽고 만다. 엄마는 무엇이라도 읽으면 좋다고 내가 무협지 읽는 것을 별로 말리지 않는다. 오히려 간식거리로 튀긴 강냉이를 넣어 주셨다. 집이 조용하다. 스르르 잠이 온다. 뜰에 있던 내 강아지가 심심한지 몇 번 짖다 멈춘다. 방학 첫날, 재미있는 읽을 거리, 맛있는 간식, 친구 강아지와 함께 있으니 난 참 행복하다. 초등 학교 2~3학년 때 내가 적은 일..

단상/행복 2021.09.11

오랜만의 라운딩

골프는 참 좋은 운동이다. 돈과 시간이 좀 많이 든다 싶어 그렇지 70이 넘어도 age shooter를 노려볼 수 있는 운동이라서 더 매력이 있다. 아주 오랜만에 필드에 나갔다. 후배분들이 고맙게도 초청해준 덕이다. 약속일 전 평생 잔소리꾼인 아내가 조언을 준다. 옛날 생각 잊어버리시고 마음 편히 즐기다 오세요. 맞은 말이다. 당연히 그래야지. 티 박스에 서니 약간 현기증이 난다. 주위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나무와 풀들도 나를 지켜보는 것 같다. 순간 몸이 뻣뻣해지고 드라이버의 바람 가르는 소리에 비해서 공은 초라하게 러프로 힘없이 휘어져간다. 세컨드 샷 거리가 많이 남았다. 조금이라도 더 가야지 하는 마음에 평소 잘 안 썼던 3번 우드를 잡는다. 공이 놓인 곳이 풀이 긴 러프임을 깨닫지 못한다..

단상/반성 2021.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