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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빨라서 행복하다

뜰에 있는 목련 꽃망울 본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제일 높은 가지 잎사귀는 노란 빛을 띈다. 누군가 흐르는 세월의 속도를 화장실에 걸어 둔 두루마리 휴지에 비유한 것이 생각난다. 처음 휴지 뭉치를 걸어 놓고 사용할 때는 줄어드는 것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두루마리에 휴지가 얼마 남아 있지 않으면 확확 주는 것이 느껴 진다고 했다.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껴질 때 ‘나는 참 편하게 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신임 소위 시절 한여름 땡볕 아래 황톳길을 터벅터벅 걸어 행군하면서 점심 먹을 때가 됐나 하고 시계를 보면 오전 9시쯤 됐던 것 같다. 우리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산다는 것은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괴롭거나 지루하지 않은 삶을 산다는 방증이 아닐까? 세상이 뒤숭숭하고 모두 집에 갇혀 있는 ..

단상/행복 2021.09.24

개념 혼동 사회

‘일이나 어떤 사물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지식.’ 개념(Concept)에 대한 사전적 정의다. 우리는 많은 경우 개념을 혼동하며 살고 있다. 뷔페 식당에서 아이가 통로를 마구 뛰어다니고 있다. 접시를 들고 음식을 고르던 손님들이 불편해 한다. 아이의 부모는 그런 모습을 대견한듯 바라보고 있다. “아이는 기를 살려서 키워야 해.” ‘기를 살리는 것’과 ‘버르장머리 없음’의 개념 혼동이다. 나는 주관이 뚜렷한 사람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만 일을 추진하는 리더도 있다. ‘주관’과 ‘아집’, 자부심’과 ‘교만’의 혼동이 섞여 있다. 이와 같이 개념을 혼동함으로써 생기는 개인적, 사회적 손실이 크다. 예의 바르게 자라야 할 아이가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가 되고 나중에 커서 사회..

시사 2021.09.22

행복했던 순간 4

18년 동안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던 녀석이 있었다. 세상에 나온지 4주만에 엄마 젖도 제대로 못 먹고 가게로 팔려와서 옆구리에 피부병 걸린 채 새 주인 기다리던 녀석. 그냥 두면 죽을 것 같아 덥석 안고 집에 와서야 녀석이 시츄라는 것을 알았다. 자기 밥그릇 속에 네발 딛고 서 있을 만큼 작았던 녀석. 건강해지라고 ‘바우’라 이름 지어 줬다. 한 6개월 정성 들여 키웠더니 우리집 보스가 되었다. 서열 1위 바우, 2위 엄마, 3위 형아, 4위 누나 내가 마지막이다. 내가 왜 서열 꼴찌가 되었는지 잘 모른다. 그저 ‘이쁘다’ ‘이쁘다’ 해준 죄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서열이 낮다 보니 보스 눈치 살피고 심기 관리 잘해야 한다. 뒤가 마려운 것 같으면 문을 열어드려야 하고 하루에 몇 번이 됐건 콧구멍이 간지..

단상/행복 2021.09.22

내 마음 속 가시 2

작은 가시는 살 속에 그냥 두어도 삭거나 굳어 내 몸의 일부가 된다. 어떤 땐 굳은살이 보통 살 보다 더 강해져서 유용할 때도 있다. 그럼 큰 가시는? 빼내지 않으면 상처가 덧나 고생한다. 누구나 마음 속의 가시를 가지고 있다. 크고 작고는 본인 생각이다. 본인이 묻어 두기를 원해서 삭고, 굳을 수 있다면 굳이 주위 사람이 들추지 않는 것이 좋다. 짐짓 잊고 있는 상처를 들쑤시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시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데 본인은 뺄 때의 고통이 두려워서, 아니면 피가 무서워서 망설이고 있는 경우라면 누군가 용기를 불어넣어 주거나, 본인은 눈감고 있고 다른 이가 확 빼 줄 수도 있다. 자살자의 대부분이 실행 전 자살을 암시하는 무엇인가를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살고자 하는 본..

단상/일상 2021.09.21

내 마음 속 가시 1

어느 집이나 아픈 가시 하나는 있다는 말이 있다. 마냥 행복할 것 같은 가정에도 말 못할 아픈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신이 공평해서 그렇다는 생각을 하면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다. 어디 가정사뿐이랴. 내 마음에도 아픈 가시가 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아픈 곳. 드러내기도 힘들고, 잊을 수도 없는, 그냥 안고 가야할 그런 것들. 혹자는 말한다. ‘훌훌 털라고…’ 아니면 종교적 의식인 고해를 방법으로 제시한다. 털 수 있고 고백할 수 있었으면 했겠지. 그러지 못하는 마음 역시 다른 가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손가락에 가시가 박히면 아프다. 처음에는 빼내려고 했겠지만 아파서, 피가 무서워서 등 어떤 이유로 못 빼내면 그냥 살에 묻혀 삭거나 굳는다. 큰 ..

단상/일상 2021.09.21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이 키우는 집에서 곧잘 재미삼아 아이에게 묻는 질문이다. 교육학적으로 보면 어린아이에게는 해선 안 될 질문이다. 자칫하면 편가르기를 가르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조금 철이든 아이는 망설이거나 거짓말할 수도 있다. 아이의 순수한 감정을 그대로 두고 보는 편이 맞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느낌은 그 사회 규범에 분명하게 어긋나지 않는 한 내 마음에서 비롯된 감정이기 때문에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다. 얼마전 아프간에서 난민 탈출 작전이 한창일 때 영국에 사는 어떤 사람이 전세기를 동원해서 개를 포함한 반려동물들을 구출해와서 논란이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람 구하기도 급한데 반려동물 구출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 그를 비난하는 진영의 논리다. 내가 캐나다..

단상/일상 2021.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