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5

왜 글을 쓰는가 4 : 적자생존

다윈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참 친숙한 분이시다. 어느 분야나 불쑥 나타나셔서 꼭 필요한 이론을 제공해 주신다. 글쓰기 분야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바로 ‘적자생존’ 이론이다. '적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 이 말을 사실 그대로 믿을 분은 없을 것으로 본다. 많이 알고 있는 아제 개그다. 정권 잡고 500년 동안 일기 쓴 정부는 유사이래 ‘조선 왕국’이 유일하다고 한다. 사관이 왕을 따라다니면서 왕과 주변 신하들이 하는 행동을 빠짐없이 적은 기록물인 사초(史草)를 만들고, 왕조차 볼 수 없는 비공개 문서로 관리해 왔다. 누가 내 옆에서 내 언행을 낱낱이 기록하고 그 기록을 대를 이어 남기고 또 그것을 후세 사람들이 반면교사로 삼는다고 생각하면 언행 조심 안 하고는 못 배길 것 같다. 만인지상 왕들이 자기 하..

단상/글쓰기 2022.09.17

묵은지

고등어와 묵은지를 듬뿍 넣어 자글자글 끓여낸 고등어 찌게는 겨울철 별미다. 이 맛은 6개월 이상 저온에서 숙성 시킨 김치가 내는 맛이다. 글도 숙성과정을 거치는 것 같다. 번득이는 영감에 의해 일필휘지로 작성된 좋은 글도 있겠지만 나의 능력으로는 언감생심이다. 한참 고민하여 쓴 글이라도 다시 보면 풋내가 난다. 오자 탈자는 기본이고 문장의 연결도 어색하다. 심한 경우 내가 봐도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모호할 경우도 있다. 생각도 바뀐다. 가슴이 뜨거워서 썼지만 며칠 지난 후 보면 내 주장이 너무 과했다는 느낌도 든다. 독선과 아집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글을 저장하는 파일을 둘로 갈라서 ‘숙성방’ 파일을 따로 만들었다. 쓴 글은 일단 그 방에 넣어두고 틈나는 대로 되새겨 본다. 내용을 다시 음미하고 ..

단상/글쓰기 2021.11.09

왜 글을 쓰는가 3

‘숙성’이란 단어의 뜻을 천천히 익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멋스러워 보인다. 글자 순서를 뒤집으면 ‘성숙’이 되니 더욱 그렇다. 글쓰기를 하면서 컴퓨터에 ‘숙성방’을 만들어 현재 작업 중인 글을 넣어 둔다. 불완전했던 글이 술 익어 가듯 천천히 맛있게 익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드러내고 싶은 교만, 곰곰이 생각 않는 조급함, 너무 뜨거웠던 감정. 이런 것들이 곰삭아 내 글이 성숙되어 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이번 글이 부족하면, 다음 글의 키가 더 자랄 것을 기대하면서. 아이를 키우듯, 만사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리는 지루함 보다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더 크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지혜를 글을 쓰며 배운다.

단상/글쓰기 2021.09.09

왜 글을 쓰는가 2

그 놈의 역병 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지면서 시간을 유용하게 보낼 방법을 생각하던 중 불현듯 글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 전문 교육을 받은 바가 없고 독서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 글을 자주 써온 것도 아닌 사람이 말이다. 회사 생활 중 문서는 많이 다루어 보고 사보 기자 하면서 깔끔하게 쓴다는 칭찬을 받는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내본 용기일 수도 있겠다. 60 여년 지난 생활을 돌이켜 보면 나름대로 참 많이 보고 들었고 고민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걸 바탕으로 아는 체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희미한 기억 뿐이다. 이것 마저 조만간 사라져 버릴 것인데… 남이 기억해줄 만한 업적이 없으면 나라도 나를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생의 마지막 문턱에 서서 자신에 대한 ..

단상/글쓰기 2021.09.01

왜 글을 쓰는가 1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말을 한다. 하지만 그것을 글로 남기는 일은 드물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게으름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은 쉽다. 그냥 떠 올려진다. 오만가지 생각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글로 쓰는 것은 다르다.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구성하고 다듬고… 집을 짓는 것과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보통의 사람은 자신의 집을 짓기 보다는 남이 지어 놓은 집에서 사는 것을 더 선호한다. 둘째, 증거를 남기기 싫어한다. 글은 남는다. 한번 써 놓은 것은 변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니 오롯이 내가 쓴 것은 내 책임으로 남는다. 허튼 생각이나 그냥 해본 소리라면 누가 그것에 대해 책임지고 싶어하겠는가? 깊이 없는 생각이나 말로 자신의 낮은 수준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단상/글쓰기 2021.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