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설 23

무제

‘아는 것이 병이다.’ ‘불을 끄면 더 멀리 본다.’ 통하는 말인 것 같다. 고민고민 한다고 꼭 신통방통한 답이 나온다는 법이 없다. ‘장고 끝에 악수’ 라는 바둑에서 통하는 격언도 있고. 결국 내가 구축한 ‘신념의 체계’ 내에서 사고할 수밖에 없다. 일종의 창문 같은 것. 창을 통해 밖을 볼 수 있게 되지만, 나는 창이 보여주는 하늘만 본다. “절대적인 가르침이라 믿습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언제 한번 그것이 왜 절대적이냐고 물으면 안될까? 그러면 불경스러운 것인가? 성탄절 모래밭에서 싸우는 두 무리. 폭탄 떨구고 총 쏴서 숨어 떨던 민간인까지 싸잡아서 백여명 죽이는 전과 올렸다고 한다. 그들이 믿는 가르침이 잘못된 것인지, 그들이 참된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것인지?..

요설 2023.12.26

약속글 4: 기도에 대한 생각

“기도하면 맘이 편해. 그래서 자주 한다.” “전공 선택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열심히 기도하면서 여쭈었더니 어느날 내 눈 앞에 칠판이 그려지면서 ‘식품영양학’ 이란 글자가 씌여지더라.” “무료급식 봉사하는데 급식소 월세 낼 돈이 없어서 열심히 기도했더니 마지막 날 어떤 분이 오셔서 꼭 월세 금액만큼의 돈을 기부하고 가시더라.” “국화의원 출마해서 691표 차로 낙선해서 낙담 했는데, 어느날 기도 중 불현듯 떠오른 생각, ‘0691’, 아~ 영(0)혼과 육(6)신을 구(9)원(1)하는 일을 하라는 계시임을 깨달았다.” 기도 관련 들은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이다. 듣는 사람마다 모두 느끼는 생각들이 다를 것이다. “기도해주세요” 라는 청을 받았을 때 그저 “예” 하고 나서 막상 기도하는 순간 분심이 든..

요설 2023.01.17

자식과 로봇

# “평화를 주소서” 열심히 기도한다. “그럼 너는 뭐할래?” “주시면 평화롭게 시키는 대로 잘 살랍니다.” “너 거지냐? 주는 대로 받아만 먹게? 나 애써서 인간 만들었지 로봇 만든 거 아니거든. 로봇은 사실 네가 나 보다 더 잘 만들 수 있겠다. 많이 만들어 쟁여 놔라. 너희들 다 죽고 나면 로봇만 사는 평화로운 세상이 저절로 될 것이야.” “…” # “Have mercy on us.” 열심히 노래한다. “이번에 용서하면 어떻게 할래?” “다시는 죄 안 짓고 잘 살랍니다.” “같은 말 너희 조상님들이 수 없이 했지. 이젠 지겹다. 내 약속 하나 하마. 지금부터 죄 안 지으면 이전 것 다 용서해 줄께. 할 수 있나” “…” “에그 차라리 로봇을 만들걸…” # 당찬 인간 등장. 뭐 하나 잘하고 나서 아버..

요설 2023.01.07

되바라진 자식의 항변

# 나름 바르게, 열심히 살려고 노력 중. 어느 날 고속도로 차 몰고 가다가 술 취해서 역주행 하던 차에 받혀서 저승으로 감. 그곳에서 그분을 만남. “잘 왔다. 내가 너를 요긴하게 쓸 일이 있어 데려왔지.” “좀 우아한 방법으로 데려오면 안되나요?” #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 참 황당하고 슬프다. 무진 고생 끝에 굶어 죽지는 않았고, 아픈 마음 달랠 길 없어 종교에 귀의. 기도 열심히 하다가 저승으로 감. 그곳에서 그분을 만남. “잘 왔다. 너로 하여금 나를 알게 하려고 그런 일이 일어난 것 이제 알겠지?” “그런 모진 일 안 겪고도 이곳에 오신분들 많은 줄 압니다.” # 아버지 잃고 홀어머니와 살다 입 하나 덜자고 보육원에 보내진 외아들. 다행히 의지가 굳고 좋은 기회도 만나고 독하게 노력해..

요설 2023.01.06

내가 신부님이 된다면

나는 신부 시켜준데도 안할란다. 적성에 안 맞다.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자질이 안된다. 그 정도는 내가 잘 알고 있지. 아예 나하고 거리가 아주 먼 일 상상하는 것이 때론 재밌다. 새롭기도 하고, 안 할 것이니 부담 없어 홀가분하고 그러니 더 솔직해 질 수도 있고. 내가 신부님이 된다면 다음과 같이 하고 싶다. 1. 성가대 노래 부르는 속도를 지금 보다 두배쯤 빠르게. 즐거운 노래나 장중한 노래나 모두 장송곡 부르는 속도다. 2. 교우들에게 좀 밝은 색 옷 입고 오라고 틈틈이 당부한다. 크리스마스 때도 검정색 일색이다. 3. 제발 내자리라고 매주 같은 자리 앉지 말고 옮겨 앉아서 새 친구 좀 사귀고. 4. 성당 입구 들어올 때 죄 지은 사람 마냥 고개 숙이고 발끝으로 걷지 말고 친정집 찾아오듯 기쁘고..

요설 2022.10.25

자문자답 2: 섭리(攝理)

섭리, 기독교에서 ‘세상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신의 뜻’을 말한다. 묻지마 총격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한 현직 경찰관의 장례 예절에 다녀왔다. 관속에 핏기 없는 얼굴로 누워있다. 신부님과 목사님이 강론하신다. 신의 섭리, 부활, 믿고 슬픔을 이겨내십시오. 성경에서 찾아낸 증거를 들어 설득하신다. 서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다 말귀 못 알아듣는다고 갑갑해한다. 말이란 공기의 진동을 타고 흐르는 일종의 약속된 기호를 내가 번역해서 이해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그래서 예수님도 비유를 많이 드셨다. 말귀 좀 알아들으라고. 그래도 잘 안 되니,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하셨고. 성경을 신의 존재를 증거하는 증거물로 들고, 신의 말씀이 그 안에 온전히 있다고 한다. 그럼 지금의 그 성경은 누가 썼나? 사람이..

요설 2022.09.21

자문자답 1: 믿는다는 것

못 믿을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한다. 맞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은 객관적인 증거가 있으므로 믿는다는 것 보다 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럼 믿어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에 무조건 “믿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맞나? 그런 경우 질문하면 믿음이 부족한 것이 되는가? “믿습니다” 이 말 한마디로 내가 믿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믿어야 할 이유가 있어야 내 마음이 믿게 되는 것이 아닐까? 믿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믿어야 할 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해가 필요하다. 과녁이 확실히 보이지 않으면 자신 있게 화살을 쏠 수 없다. 믿음의 대상에 대한 확실한 개념 정립이 안된 경우에는 설사 믿는다 하더라도 잘못된 대상을 믿거나 믿는 방식이 그릇될 수 있다. 맹신이나 광신 같은 것..

요설 2022.09.13

첫번째 말씀은 무엇일까?

하느님이 인간 앞에 현실로 나타나신다면 하실 첫 말씀은 무엇일까? 나의 상상력을 동원해 본다. 1. 내가 너희들을 심판하러 왔노라. 성경 내용을 보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2. 평화를 빈다. 예수님이 이웃집 방문하실 때 많이 하신 말씀이므로 삼위일체로 보면 가능성이 있다. 3. 아이쿠, 내 자식 반갑구나. 주님은 아버지이니까 우리 아버지 상상하면 그럴 것 같기도 하다. 4.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설사 하느님이 이러셔도 사랑의 마리아님이 말리실 것 같다. 5. 묵묵히 하실 일을 하신다. 인간을 위해서 항상 가르쳐 주시려고 하시는 분이시므로 아닐 것 같다. 내가 어찌 하느님의 큰 뜻을 알겠는가? 하지만, 내가 기대하는 하느님의 첫 번째 말씀에 따라 나의 신앙 생활 모습이 달라질 것 같다.

요설 2021.10.20

응석 부리는 자녀

너무 어른스러운 아이를 대할 때면 안스럽기도 하고 솔직한 심정으로 친근함이 덜 느껴진다. 어떤 이유에서 든 하고 싶은 이야기, 행동을 마음 속에 감추고 아닌 척 하는 것은 어른이 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아버님”하며 큰 절부터 올리는 자식 보다 “아빠”하고 달려와서 덥석 안기는 딸이 더 예쁘다.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시다. 아버지가 계시는 교회에서 느끼는 나의 감정은 덥석 안길 수 있는 아빠가 아닌 봉당 위에 높이 올라앉아 계시는 아버님 같다. 행동거지를 조신하게, 조심조심하고 말도 소근소근 한다. 성가대의 노래도 장엄하고 느리다. 모두 이 죄인을 용서해 달라고 간절히 청한다. 부모의 눈으로 볼 때 잘못 안하고 자라는 자식이 있던가? 그렇다고 그 때마다 이 죄인을 용서..

요설 2021.10.01

나 자신의 하자 보수 2

도심 곳곳이 공사 중이다. 하기야 그 많은 사람과 차들이 바글거리는 곳이니 고칠 것이 오죽 많을까? 이해심을 발동하려고 해도 차가 밀리고 심지어 느닷없이 길이 끊기기도 하니 짜증이 난다. 며칠이면 견딜만 하겠는데 어떤 공사는 10년이 넘도록 진행형이다. 덜 불편하게, 더 빠르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나도 공사가 필요하다. 특별하고 어려운 공사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을 고쳐야 하는 일이다. 공사에 대한 정보는 많으나 시공자는 나 혼자다. 공기도 정해져 있지 않고 감독관도 없다. 오롯이 내 책임하에 진행된다. 우선 공사 매뉴얼을 보자. 수천년 전부터 발간된 된 종교 교과서, 현재 교양서적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가지수도 무지 많다. 그다지 어려운 전문 용어는 없다. 그냥 하면 된다. 문제는..

요설 2021.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