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설 27

25.04.19 아침 단상: 전통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식 일반인 조문 첫날, 수녀가 관례를 깨고 교황이 안치된 관 옆에서 조문을 하는 모습이 포착돼 화제가 되고 있다.’세계 토픽 중 하나다.인간 모두를 사랑하시다가 떠나신 분인데 여성은 (친견?) 조문을 못한다?교회의 전통이라서 그렇다고 한다.그런 전통이 생긴 이유는 짐작이 된다.지금도 신부( 神父)는 남자만 되는 전통이 있지.2000년전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지가 않았다.예수님이 돌아가셨을 때 끝까지 곁에서 자리를 지킨 사람은 대부분 여성들이었는데 12사도는 모두 남자다.전통은 바뀐다. 아니 바뀔 필요가 있다.‘변화하지 않는 것은 모든 것이 변한다는 진리 뿐이다.’텅텅 비어가는 장엄한 교회의 모습이 오버랩 된다.

요설 2025.04.26

25.04.09 아침 단상: 용서

책 한권 읽고 내 생각을 다시 간추린다.용서가 어렵다. 아니 안된다. 그래서 자책하기 쉽다. 용서는 신 만이 할 수 있다. 인간이 무슨 권능으로 인간의 죄를 없애 주나?인간으로 오신 예수님도 좌측에 같이 매달린 도적을 본인이 용서하지 않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용서가 아니라 관용이다. 측은지심이 깔린 것. 너도 죄인이고 나도 죄인이다. 용서는 그분께 맡기고 우리는 더 이상 죄 짓지 말고 살자. 보기 싫고 만나면 불편한 사람 지나가면 그냥 “Hi” 하고 지나치든지,더 마음이 내키면 짧게나마 이야기 나누고 웃으며 헤어지는 것으로 족하다. 급할 것도 자책할 것도 없다.그자는 그분께서 용서하시든지 벌 주시든지 하실 것이니,나는 나대로 죄 덜 지으려고 노력하며 즐겁게 살면된다.

요설 2025.04.09

순서만 바꾸면

지인이 오랜만에 찾아와서 점심을 사겠다고 한다.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 것이다. ‘공짜 점심 없다’.의례적인 인사말이 오간 후 본인 머리속이 복잡하니 조언을 구하겠다고. 내가 무슨 남의 머리 속 교통 정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마는, 잘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경청 자세를 취한다. 이야기의 내용은 개인사이니 밝힐 수는 없지만 그간 그분과 일해본 경험과 표정을 합해서 짐작해 보니 문제는 하나다. 내 욕심은 있는데 그것을 밝히지 않고 우아하게 뭔가 도모하려니 말이 꼬이고 생각이 헝클어진 것이다. 그냥 듣기만 하겠다는 본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본색을 드러냈다. “본인 속 마음을 먼저 솔직하게 말씀해 주시면 대응 방향은 아주 간단해 질 것 같습니다.” ‘천국이 있나 없나’를 가지고 생각이 ..

요설 2025.02.14

의심하지 말지어라

서로 부대끼며 살다 보면 의심할 경우 있다.웃으며 다가 오지만 속에는 칼을 품고 있을 수도 있고좋은 말씀이라며 열변을 토하지만 그 진의가 좀 찜찜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인간은 부정적 사고로 편향((negativity bias) 되어 진화되었다고 말하는 진화론자도 있다.잘 모르는 상황이 발생되면 위험할 것이라고 우선 예측하는 개체가 더 많이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논리다. 내게 들어오는 무수한 정보를 내가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이럴 경우에는 의문이 들고 이를 질문을 통해서 이해하는 것이 순서다. 여기에서 하나 구분이 필요한 것이 의심과 의문의 개념 차이다.‘의심은 불신(不信)의 마음이 바탕에 깔린 질문이고, 의문은 완전해지고자 하는 욕구가 만들어낸 질문이다.’ 라는 인용구가 나의 이해를 돕는다.의..

요설 2024.10.26

무제

‘아는 것이 병이다.’ ‘불을 끄면 더 멀리 본다.’ 통하는 말인 것 같다. 고민고민 한다고 꼭 신통방통한 답이 나온다는 법이 없다. ‘장고 끝에 악수’ 라는 바둑에서 통하는 격언도 있고. 결국 내가 구축한 ‘신념의 체계’ 내에서 사고할 수밖에 없다. 일종의 창문 같은 것. 창을 통해 밖을 볼 수 있게 되지만, 나는 창이 보여주는 하늘만 본다. “절대적인 가르침이라 믿습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언제 한번 그것이 왜 절대적이냐고 물으면 안될까? 그러면 불경스러운 것인가? 성탄절 모래밭에서 싸우는 두 무리. 폭탄 떨구고 총 쏴서 숨어 떨던 민간인까지 싸잡아서 백여명 죽이는 전과 올렸다고 한다. 그들이 믿는 가르침이 잘못된 것인지, 그들이 참된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것인지?..

요설 2023.12.26

약속글 4: 기도에 대한 생각

“기도하면 맘이 편해. 그래서 자주 한다.” “전공 선택을 무엇으로 해야 할지 열심히 기도하면서 여쭈었더니 어느날 내 눈 앞에 칠판이 그려지면서 ‘식품영양학’ 이란 글자가 씌여지더라.” “무료급식 봉사하는데 급식소 월세 낼 돈이 없어서 열심히 기도했더니 마지막 날 어떤 분이 오셔서 꼭 월세 금액만큼의 돈을 기부하고 가시더라.” “국화의원 출마해서 691표 차로 낙선해서 낙담 했는데, 어느날 기도 중 불현듯 떠오른 생각, ‘0691’, 아~ 영(0)혼과 육(6)신을 구(9)원(1)하는 일을 하라는 계시임을 깨달았다.” 기도 관련 들은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것들이다. 듣는 사람마다 모두 느끼는 생각들이 다를 것이다. “기도해주세요” 라는 청을 받았을 때 그저 “예” 하고 나서 막상 기도하는 순간 분심이 든..

요설 2023.01.17

자식과 로봇

# “평화를 주소서” 열심히 기도한다. “그럼 너는 뭐할래?” “주시면 평화롭게 시키는 대로 잘 살랍니다.” “너 거지냐? 주는 대로 받아만 먹게? 나 애써서 인간 만들었지 로봇 만든 거 아니거든. 로봇은 사실 네가 나 보다 더 잘 만들 수 있겠다. 많이 만들어 쟁여 놔라. 너희들 다 죽고 나면 로봇만 사는 평화로운 세상이 저절로 될 것이야.” “…” # “Have mercy on us.” 열심히 노래한다. “이번에 용서하면 어떻게 할래?” “다시는 죄 안 짓고 잘 살랍니다.” “같은 말 너희 조상님들이 수 없이 했지. 이젠 지겹다. 내 약속 하나 하마. 지금부터 죄 안 지으면 이전 것 다 용서해 줄께. 할 수 있나” “…” “에그 차라리 로봇을 만들걸…” # 당찬 인간 등장. 뭐 하나 잘하고 나서 아버..

요설 2023.01.07

되바라진 자식의 항변

# 나름 바르게, 열심히 살려고 노력 중. 어느 날 고속도로 차 몰고 가다가 술 취해서 역주행 하던 차에 받혀서 저승으로 감. 그곳에서 그분을 만남. “잘 왔다. 내가 너를 요긴하게 쓸 일이 있어 데려왔지.” “좀 우아한 방법으로 데려오면 안되나요?” #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 참 황당하고 슬프다. 무진 고생 끝에 굶어 죽지는 않았고, 아픈 마음 달랠 길 없어 종교에 귀의. 기도 열심히 하다가 저승으로 감. 그곳에서 그분을 만남. “잘 왔다. 너로 하여금 나를 알게 하려고 그런 일이 일어난 것 이제 알겠지?” “그런 모진 일 안 겪고도 이곳에 오신분들 많은 줄 압니다.” # 아버지 잃고 홀어머니와 살다 입 하나 덜자고 보육원에 보내진 외아들. 다행히 의지가 굳고 좋은 기회도 만나고 독하게 노력해..

요설 2023.01.06

내가 신부님이 된다면

나는 신부 시켜준데도 안할란다. 적성에 안 맞다.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자질이 안된다. 그 정도는 내가 잘 알고 있지. 아예 나하고 거리가 아주 먼 일 상상하는 것이 때론 재밌다. 새롭기도 하고, 안 할 것이니 부담 없어 홀가분하고 그러니 더 솔직해 질 수도 있고. 내가 신부님이 된다면 다음과 같이 하고 싶다. 1. 성가대 노래 부르는 속도를 지금 보다 두배쯤 빠르게. 즐거운 노래나 장중한 노래나 모두 장송곡 부르는 속도다. 2. 교우들에게 좀 밝은 색 옷 입고 오라고 틈틈이 당부한다. 크리스마스 때도 검정색 일색이다. 3. 제발 내자리라고 매주 같은 자리 앉지 말고 옮겨 앉아서 새 친구 좀 사귀고. 4. 성당 입구 들어올 때 죄 지은 사람 마냥 고개 숙이고 발끝으로 걷지 말고 친정집 찾아오듯 기쁘고..

요설 2022.10.25

자문자답 2: 섭리(攝理)

섭리, 기독교에서 ‘세상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신의 뜻’을 말한다. 묻지마 총격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한 현직 경찰관의 장례 예절에 다녀왔다. 관속에 핏기 없는 얼굴로 누워있다. 신부님과 목사님이 강론하신다. 신의 섭리, 부활, 믿고 슬픔을 이겨내십시오. 성경에서 찾아낸 증거를 들어 설득하신다. 서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다 말귀 못 알아듣는다고 갑갑해한다. 말이란 공기의 진동을 타고 흐르는 일종의 약속된 기호를 내가 번역해서 이해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그래서 예수님도 비유를 많이 드셨다. 말귀 좀 알아들으라고. 그래도 잘 안 되니,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어라” 하셨고. 성경을 신의 존재를 증거하는 증거물로 들고, 신의 말씀이 그 안에 온전히 있다고 한다. 그럼 지금의 그 성경은 누가 썼나? 사람이..

요설 2022.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