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3

난 막걸리를 마시고

27세, 유학생, 여자, 한국 시골에서 태어나 명문 Y대 졸업. 캐나다 유학 후 영주권 취득을 위해 WORKING PERMIT으로 일하던 중 돌연사. 지병이 있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한국에서 수술 받기 위해 항공권까지 예약해둔 상태였음. 세례 받았고 미사도 착실히 참석. 성당 연령회에서 장례 지원. 가족은 한국에서 날아온 부모님과 여동생 한 명. 이곳 친구 소수. 관 들어줄 사람 없어서 내가 봉사. 사지 멀쩡하고 시간 많다. 이곳 문화에 따라 관 뚜껑 열려 있고 조문한다. 참 예쁜 얼굴이다. 죽은 자 예쁘든 안 예쁘든 무슨 상관이겠냐 만은 그래도 이쁘고 젊은 얼굴 보니 더 안타깝다. 부모님 보니 50대 초반. 어머니가 무척 강하시다. 장례 미사 때 떠난 딸 회고하는데 많이 울지 않음. 미사 참석한 사람들..

단상/일상 2024.03.27

방탄복 입은 순교자

저항군 거점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탈레반 전사의 모습인데, 순교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방탄복을 입고 있다. 순교를 하더라도 더 많은 적을 죽이고 난 이후여야 한다는 실리적인 명분이 있겠으나, 죽고 사는 것은 신의 뜻이라는 평소의 그들의 믿음과는 왠지 아귀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간이 사는 동안에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명제를 생각할 수 있음으로 인해 종교가 탄생되었을 것이라는 종교학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죽기 전까지는 죽음을 겪어볼 수 없는 한계로 인한 불안 때문에 신이라는 존재를 찾게 되었다는 논지다. 이생에서 생을 마감한 후에 벌어지는 부활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나의 죽음은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생각해 보니 3가지 정도로 크게 나눌 수 있었다. 첫째는 우연히 결정된..

요설 2021.09.02

별라

집 뒤뜰에 동물들이 자주 놀려온다. 다람쥐, 새, 스컹크, 이웃집 고양이. 가끔씩 라쿤도 보인다. 도심이지만 비교적 큰 나무들이 있는 조용한 곳이어서 그렇겠지만 주인의 심덕이 후해서 그럴 것이라는 나름 좋은 생각도 해본다. 며칠 전 그동안 뜸했던 덩치 큰 라쿤 한 마리가 대낮에 뜰 중앙에 서 있는 큰 전나무를 타고 천천히 내려오는 모습을 보았다. 통상 밤에 몰래 왔다 가는 놈인데 대낮에 나타난 것이 이상해서 자세히 보니 움직임이 많이 다르다. 내려오는 모양새가 불편해 보인다. 속도도 늦고… 떨어질까 조심하는 것 같고 입에 약간의 거품도 보인다. 무엇보다 평소와 다른 점은 사람이 가까이가도 놀라거나 도망갈 기색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마치 인간이 다가오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다 내려와서는 마당을 이리저리..

단상/자연 2021.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