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반성 13

나는 몇 류(流)?

위(位)와 류(流)의 차이점이 궁금하다. 1위와 일류의 차이. ‘위’는 개별적, ‘류’는 집합적 의미가 강한 것 같다. 1위는 한 명, 일류는 여러 명. 1위가 되기 위해 아등바등할 생각은 없다. 무한 경쟁이니, 해도 잘 안될 것 같지만, 돼도 힘들다. 그러나 일류는 되고 싶다. 다들 노력하면 같이 일류가 될 수 있다. ‘류’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분야에 따라 다를 것이나, 인간 됨됨이에 초점을 맞추면? 인식의 수준이다. 사물을 분별하고 판단하여 아는 일. 세간에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를 살펴보면 생각의 수준과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의 수준이 비례하는 것 같다. 그럼 내 인식 수준은 무엇을 바탕으로 하고 있나?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자로서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양심에 기댈 수밖에 없다. 내가 알고..

단상/반성 2022.12.28

왜 그럴까? 5: 칭찬에 인색하다

칭찬받고 싶지만 칭찬하는 것에는 인색하다. 나만의 이야긴가?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공감은 하지만 실행은 안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진화론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상식선에서 어느 부문에서나 적용이 가능한 다윈 할아버지의 이론을 좀 빌어보자. 인간의 부정적 감정 발달이 원인이다. 어느 진화론 전문 학자가 말하길, 인간은 부정적 감정에 우선적으로 반응하도록 진화됐다고 한다. 항상 주위의 위협으로부터 민감하게 반응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그 이유다. 처음 만난 사람이 좋은 사람일 것이라는 생각에 앞서 혹시 나를 해치러 온 사람이 아닐까라고 의심하는 것이 본능이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확장해서 생각하면, 남을 칭찬하기에 앞서 비난거리를 먼저 찾는 성품에 대한 변명이 될 수도 있겠다. 자연계에..

단상/반성 2021.10.20

왜 그럴까? 4: 반골

반골(反骨)이란, 뼈가 거꾸로 된 것을 말하며, 속뜻은 명령이나 권위에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기질을 의미한다. 특히 그 권위가 정당하지 않을 경우엔 오히려 반골이라는 말이 '부당한 권력에 맞서는 투사'라는 찬사에 가깝게 쓰일 때도 있다. (이상 ‘나무위키’에서 인용) “나는 소실점을 바꾸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어느 도시공학 전문가가 하신 말씀이다. 사회 구성원 다수가 생각하는 방향과는 다른 방향을 모색해 보고 싶고 또 그런 방향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조직 전체 분위기상 수용되는 통념에 반대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마다 평가가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조직이 제 맛을 내기 위한 양념의 구실을 한다고 본다. 단, 그의 반대적 성향이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선한 목..

단상/반성 2021.10.16

왜 그럴까? 3: 권위적인 사람

누구나 아주 권위적인 사람과 아주 겸손한 사람 양 극단을 잇는 선상 어딘 가에 위치해 있다. 비교적 권위적인 것에 가까운 사람은 왜 그럴까? 먼저 ‘권위’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권위가 있어야 힘이 생긴다. 단, 그 권위가 리더에 의해서 강요되거나 권위가 필요하지 않은 시간과 장소에서 발현되면 문제가 된다. 여기서 ‘권위적’이란 의미는 후자의 경우다. 권위는 권위를 가지는 개인과 그가 속한 집단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생겨난다. 권위라는 힘을 발현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과 그것을 조장하고 인정해 주는 조직원이 상호 작용하는 것, 즉 ‘곱하기’의 관계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보자. 권위가 가장 필요한 조직이 어디일까? 민감할 수 있지만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교회를 예로..

단상/반성 2021.10.15

왜 그럴까? 2: 이래라 저래라

남이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싫다. 왜 그럴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에게 더 나은 길을 제안해 주는 태도가 아닌 훈수두고 가르치려 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 나는 불편해 진다. 나의 수용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좋게 말하면 자존심이 강하고 주관이 뚜렷한 것이고 반대로 생각하면 교만하고 아집이 강하다. 남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은 곧 내가 저보다 못하거나 지는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깔려 있다. 열등감이 있는 사람들에게 종종 나타나는 심리 현상이다. 본질에 충실하지 못하다. 상대의 태도가 어쨌든, 나의 기분이 어떻든, 공짜로 주는 Tip인데 내용을 보고 내게 덕되면 받고 아니면 흘려 보내면 되는데,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로 인해서 내용을 살피기 전에 무조건 귀를 막는다. ..

단상/반성 2021.10.15

왜 그럴까? 1:나와 다른 생각

사람은 모두 고유하다. 생긴 모양은 물론이고 생각, 가치관, 습관 등등 모든 것이 각자 다르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기 때문에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한다. 맞는 말씀이다. 그러나 남이 나와 다른 의견을 제시하거나 다른 생각을 피력하면 불편해진다. 불편하지는 않을지라도 반사적으로 방어자세가 먼저 나오는 것이 대부분이다. 왜 그럴까? 가능한 이유들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내 것이 옳거나 내가 너보다 낫다는 생각이 내면에 깔려 있다. 교만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교만은 아직 나를 떠나지 않았다. 상대가 맞고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곧 내가 패배한 것이 되거나 최소한 창피해진다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다름을 수용하지 못하는 원초적 본능이 아직도 강하다. 다른 종을 만나면 털을 세우고 이빨을 드러내..

단상/반성 2021.10.14

이기적인 용서

‘지은 죄나 잘못한 일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하지 아니하고 덮어 줌’ 용서의 사전적 의미다. 여기서 ‘덮어준다’ 는 의미는 ‘없앤다’ 라는 뜻 보다 ‘드러내지 않고 숨겨둔다는 의미가 강하다. 사전적 의미만 놓고 볼 때 내 마음 속에 있는 상대에 대한 미움의 감정까지 포함하는 용서를 말하고 있는지 확실치 않다. 용서는 통상 물리적 용서와 마음의 용서로 나눌 수 있다. 쉬운 예로, 상대가 나를 공개리에 모욕해서 내 명예가 실추되고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경우, 용서한다면, 그 상대가 내게 저질렀던 모욕 행위에 대해서 형사, 민사상 책임을 묻는 것을 포함해서 일체의 대응 행동을 하지 않는 물리적 용서가 우선이고, 그로 인해서 내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상대에 대한 미운 감정까지 없애는 것, 즉 마음의 용서까지 할 수..

단상/반성 2021.10.13

주머니 속 송곳

어려워 보이는 사자성어 한번 써보자. 낭중지추(囊中之錐), 주머니 속 송곳. 즉,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남의 눈에 띄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한창 때 누군가가 나를 보고 “날이 시퍼렇다” 라고 말한 것이 기억된다. 샤프(Sharp)란 단어의 뜻에는 차갑고 날카롭다는 것 외에도 예리한 판단력을 가졌다는 의미가 있는 줄 알 았으니 아전인수격 해석이지만, 그 당시 기분은 별로 나쁘지 않았다. 나 보고 송곳보다 날카로운 칼로 비유하니 더 좋은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낭중지검(囊中之劍), 주머니속 검이다. 날이 무딘 칼은 무난하게 사용된다. 다루는 솜씨가 별로인 사람도 크게 부담감 없이 사용한다. 아예 날이 없 이 모양만 갖춘 장난감 칼은 아이들도 갖고 논다. 날이 시퍼런 횟집 칼은 보기에도 무섭다...

단상/반성 2021.10.02

오랜만의 라운딩

골프는 참 좋은 운동이다. 돈과 시간이 좀 많이 든다 싶어 그렇지 70이 넘어도 age shooter를 노려볼 수 있는 운동이라서 더 매력이 있다. 아주 오랜만에 필드에 나갔다. 후배분들이 고맙게도 초청해준 덕이다. 약속일 전 평생 잔소리꾼인 아내가 조언을 준다. 옛날 생각 잊어버리시고 마음 편히 즐기다 오세요. 맞은 말이다. 당연히 그래야지. 티 박스에 서니 약간 현기증이 난다. 주위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나무와 풀들도 나를 지켜보는 것 같다. 순간 몸이 뻣뻣해지고 드라이버의 바람 가르는 소리에 비해서 공은 초라하게 러프로 힘없이 휘어져간다. 세컨드 샷 거리가 많이 남았다. 조금이라도 더 가야지 하는 마음에 평소 잘 안 썼던 3번 우드를 잡는다. 공이 놓인 곳이 풀이 긴 러프임을 깨닫지 못한다..

단상/반성 2021.09.11

내 안의 보물

“네 발 밑의 다이아몬드 밭.” 바깥에서 더 나은 것을 찾는 이들에게 들려주는 경구다. 행복을 찾아 무지개를 쫓는 자에 대한 교훈. 스승을 찾아 10년을 헤매다 돌아온 아들을 반겨 맨 발로 뛰쳐나오는 어머니. 근자에 많이 회자되는 신조어 ‘소확행’. 이 모든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 안에 존재한다는 이치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 안에 있는 나의 보물을 먼저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집콕 생활을 한지 1년이 다 되어가니 슬슬 답답해지고 그간 적조 했던 친구들의 연락처를 뒤져보면서 스스럼없이 연락할 수 있는 친구의 수가 몇 안됨을 보고 약간은 서글퍼 진다. 아직 나를 생각하고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이들의 이름을 찾는 것 보다 항상 내 곁에 있는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

단상/반성 2021.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