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427

헌 달력

새해 이튿날 일찍 일어나 두리번거리다 책상 위에 놓인 2021년 달력을 본다. 헌 달력이다. 하루 새 쓸모 없어졌다. 꽤 여러가지가 적혀 있다. 의미 있는 날, 돈 내야할 일, 병원 가야할 일… 한해 동안 내가 해온 일들이다. 그 일들의 바탕위에 내가 서있다고 생각하기에는 대부분 사소한 일들인 것 같다. 정말 소소한 일상이었다. 버리려고 쓰레기통 앞에 서니 망설여진다. 나의 지난 1년이 폐기물이 되는 느낌이다. 좀 뒀다 버릴까? 쓸데없는 짓이란 것을 안다. 지지난해 달력도 1년 넘게 보관했지만 한번도 다시 꺼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그렇지. 나의 역사인데. 결국 2020년 달력 위에 포개 놓는다. 역시 다시 볼일 없을 것이다. 그래도 웃고 화내고 의미 부여하며 열심히 사는 것처럼 살았는데 하루, 아니 ..

단상/일상 2022.01.02

새해결심 3: 병아리 껍질 깨듯

내가 나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정체성 문제다. 무엇이 나의 정체성을 결정할까? 한가지는 아닌 것 같다. 생김새, 습관, 취향, 사고방식... 등등. 아주 여러가지가 모여 나를 나 답게 만들고 있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오랜 기간 동안 만들어져 와서 굳어진 것들이다. 그러니 쉽게 안 변한다. 변하더라도 아주 조금씩 변한다. 만약 나를 만들고 있는 것들이 순식간에 변한다면, 나는 미쳤다는 소리 들을 것 같다. 잘 안 바뀌는 것이 맞다. 하지만 더 나아지려면 바뀌어야 한다. 잘 안 변하는 것을 변하게 하는 방법이 있어야하겠다. 생각을 뒤집어, 잘 변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 변화해야 할 이유를 수용하지 않는다. 변해야 할 이유에 공감하지 않으면 바뀔 수 없다. ● 변화하겠다는 결심을..

단상/일상 2021.12.29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있다

송구영신(送舊迎新) 흐르는 시간을 아쉬워하고 다가오는 새날에 설렌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 갈 수 없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다. 그냥 명제만 보고 내 생각을 적는다. 강물은 쉬지 않고 흐르니 내 앞에 흐르는 물은 같을 수 없다. 그 강물은 흘러 바다에 이르고,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비가 되어 내 머리 위에 떨어진다. 눈이 된 것은 뒷산에 내리고 봄이 되면 녹아 강물이 돼서 다시 내 앞을 지나간다. 부활, 윤회, 세상은 한 몸… 내 앞에 흐르는 강물을 보니 가깝게 느껴진다. 옛 어르신들의 말씀도 다르지 않다. “떠나는 사람 잘해줘라.” “다시는 안 볼 거야 하면서 침 뱉고 간 사람 꼭 다시 보게 되더라.”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글 때 좀더 조심해야하겠다. 언제 다시 내게 돌아와서 내 몸의..

단상/일상 2021.12.26

낙서 2 : 나만 틀렸나?

마음이 변했다. 다시 낙서한다. 가슴에서 조금 뜨겁고 뾰족한 것이 올라와서 머리를 찌른다. 코비드가 사람 지치게 한다. 가야할 목표가 정해져 있으면 어쨌든 간다. 하지만 얼마만큼 가야할 지를 모르면 금방 질리고 지쳐서 주저 않는다. 이럴 때 힘이 되는 것이 같이 가는 자의 격려다. 같이 걷자고 약속하고, 돕고,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 한마음됨이 필요하다. 여러 사람 모이는 곳에 정기적으로 간다. 가서 나름 방역 수칙 잘 지키면서 일도 돕는다. 그런데 한가지 중요한 것이 빠진 것 같다. 입장하는 사람 백신 1, 2차 접종 확인 안 한다. 확인하자고 제안한다. 답은 이렇다. 조직 구성원들의 분열을 우려해서 안 한다고. 분열? 순간 화가 조금 솟는다. 솔직한 표현이다. 그럼 곰곰이 생각해보자...

단상/낙서 2021.12.22

백성 2: 복원력

세상이 시끄럽다. 진보 대 보수, 좌파 대 우파 등등으로 갈라져서 절충점을 찾거나 중지를 모우는 지혜는 간 곳 없고 오로지 상대를 향한 삿대질 일색이다. 급격한 기후변화, 계층갈등, 빈부격차 등 범 지구적 이슈도 이들의 맞짱에 관심 우선 순위에서 밀리거나 진영 논리에 따라 그 해결책이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마치 파도에 따라 좌우로 기울어지는 태풍속을 항해하는 배를 보는 것 같아 조마조마하다. 배는 유체로 이루어진 바다나 강을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파도나 바람 같은 외부의 힘에 쉽게 노출된다. 이때 외부로부터 받은 힘으로 기울어진 선체가 본래대로 돌아오는 힘을 복원력이라고 한다. 복원력이 좋은 배는 웬만한 풍랑에도 견딜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배는 작은 파도에도 휩쓸려 전도되고 만다. 이 복원력은 그 배의..

시사 2021.12.22

낙서 1

【2021.12.14 봄 날씨 같다】 작정하고 글 쓰면 어깨에 힘 들어간다. 머리속이 복잡해 진다. 주제 정하고, 제목 그럴듯하게 뽑고, 전체 윤곽 잡고, 몇 번 고쳐도 머리가 갸우뚱해 진다. 내 생각도 중요하지만 독자들 취향도 무시할 수 없다. 다시 쓴다. 파는 글도 아닌데… 고민이 많다. 그래서 낙서해 보고 싶다. 그냥 쓱쓱 그리거나 쓰는 것 하다가 싫증나면 그만두고 낙서니까 댓글창은 닫아야겠다. 그럴양이면 왜 띄우나? 길가 담벼락에 하는 낙서도 있다. 【2021.12.15 종일 흐리다】 세상의 모든 것을 그분께서 창조하셨다면, 삼엽충도 그분을 모시고 공룡도 그분께 경배 드려야 했을 것이다. 왜 인간만 그분을 알아 모셔야 하나? 혹시 인간이 만든 그분이 아닐까? 아님, 인간만이 그분을 알 수 있다는 ..

단상/낙서 2021.12.20

안녕하세요? 코로나예요

안녕하세요. 저는 요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입니다. 사실 저는 제 이름도 모르고 있었지만 사람들이 ‘코로나’ 라는 예쁜 이름을 붙여주니 이제 그것이 제 이름인 줄 알게 되었어요. 우리 가족들은 사람들에게는 사실 관심이 없었거든요. 그냥 우리가 살 수 있는 곳이 생기면 그곳에 보금자리를 틀고 살았어요. 우리는 스스로 찾아갈 수는 없고 꽃가루처럼 누가 옮겨주지 않으면 제 발로 갈 수는 없답니다. 아마도 어느 분이 저를 데려오신 것 같아요. 어느 날 저는 새로운 곳으로 옮겨지게 되었어요. 어떻게 왔는지는 몰라요. 그냥 와서 보니 그런대로 살 만한 곳이었고, 이미 자리잡고 있는 친척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제가 사람의 몸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제가 절대 무단 침입자는 아니란 것을..

시사 2021.12.15

백성 1: 욕 대신…

신부님도 사람인지라 신자들로부터 욕 먹으면 화난다. 화를 속에 쌓아 두면 병 되는 것 아니까 밖으로 토해내야 하는데 점잖은 체면에 남 보는 데서는 곤란해서 하는 수 없이 아무도 없는 새벽 성당 주위를 “~시키 ~시키” 러시아어 비슷하게 혼자 욕하며 걸었다. 이 광경을 우연히 본 신자 중 한 명이 소문을 냈다. “우리 신부님 새벽 기도하면서 은총 받아 방언하시더라.” 정치하시는 분 욕 먹을 각오해야 한다. 어떠한 정책이 되었든 간에 이해가 상충되는 개인이나 집단이 생기기 마련이다. 욕하는 입장에서 보면 욕할 이유가 있다. 이유 없이 욕하는 사람은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를 봤다. 지금은 생각만으로 전원을 on, off 시키거나 컴퓨터 화면에서..

시사 2021.12.12

호사를 부려보자

어지럽고 지저분하면 화난다. 나이 땜시 많이 무뎌 졌지만 네모지고 텅 빈 승방이 좋다. 깔끔한 성격? 돈 아까우니 안 사서 단출해진 면도 있다. 빈 방이 시원해서 좋지만 허전하다. 쨍~하는 환청이 들릴 것 같다. 큰맘 먹고 꽃을 산다. 병에 꽂아 놓고 보니 참 좋다. 주변이 환해지고 향이 찬다. 쳐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비워진 만큼 채워야 한다. 이왕이면 호사스러운 것으로 채워보자. 지금까지 내 것 아니 줄 알았던 화려하고 비싼 것으로. 그 시작이 꽃이다. 그 동안 수고한 내 몸과 마음 좋은 것 보여주고 들려주고 먹여주고 싶다. 너도 한번 수준 높게 살아봐야지. 꽃으로 눈 호강했으니 차려 입고 심포니 가고 점잖게 앉아 와인도 골라 보자. 탁한 말에 찌든 목도 순수한 가글로 행궈야지. 사랑, 위로, ..

단상/일상 2021.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