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129

금수저 흙수저 2

흙수저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 흙수저에 만족하며 사는 법을 생각했다. 뭔가 찝찝하다. 달리는 자의 능력에 따라 골인 지점에 들어가는 시간이 다른 것은 충분히 이해되는데, 출발점이 다른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라는 억울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법. 그분의 뜻이든 확률에 의한 불운이든 내가 흙수저를 갖고 태어난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 금수저를 훍수저를 바꾸는 꿈을 꿔보자.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으니… 오래전의 일이다. 서울역 광장에 구두 닦는 소년 2명이 있었다. 두 명 다 장래 성공한 삶을 살고 싶은 꿈을 가졌다. “서울대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해서 사법고시 합격하고 판사가 되어 성공한 사람이 되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도 같은 생각을 ..

단상/일상 2021.09.05

잠이 줄어드는 이유

몇 년 전만해도 내가 가장 자신 있었던 분야가 3가지 있었다. 먹고, 마시고, 자는 것. 이제는 이 3가지가 나의 취약 분야가 되어가고 있다. Because of aging.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먹고 마시는 것이 약해지는 원인은 바로 짐작이 되는데 잠은 왜 줄어들까? 신체적 변화는 생존을 위한 본능이라고 한다. 소화 기능이 약해졌으니 음식물을 적게 넣어야 하고 그러니 입맛이 떨어진다. 맞다 간이 망가졌으니 알코올은 매우 해롭다. 그래서 조금 먹어도 많이 취한다. 맞다 그러면 잠은 왜 줄어드나? 내 의학적 상식이 부족하다. 구글에 물어보기 전에 나름대로 이유를 상상해 본다. 1. 떠날 시간이 길게 남지 않았으니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을 빨리 끝내라는 재촉. 2.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게을러졌으니 더 움..

단상/일상 2021.09.04

흔적 없애고 추억 남기기 1

이제 나이가 60 중반에 가까워지니 대화의 주제도 달라져서 이전까지는 거의 금기시했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러워진다. 다른 이들의 생각도 살펴보고 내가 죽음을 맞이한 이후 남은자를 위한 배려도 생각해볼 필요를 느낀다. 아무래도 나보다 오래 남아 있을 것 같은 아내의 의견을 물어보니 나를 그냥 떠나 보내기는 아직은 조금 섭섭한 듯 무엇인가 추억할 만한 흔적을 남기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 매장 보다는 화장이 낫다는 것에는 마지 못해 동의했지만 화장 후 유골 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 아내는 최소한 유골함이라도 적당한 곳에 모셔 놔야 보고 싶을 때 찾아갈 곳이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 뜻이 우선 고맙다. 힘들었던 경험도 추억이 되면 그립고 좋아 보이는 법이다...

단상/일상 2021.09.03

금수저 흙수저 1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있는 자” 어리석고 게으른 사람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되는 비유다. 하지만 작은 확률에도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그 사람의 끈기와 한번쯤 시도는 해보는 도전정신은 칭찬할 만한 것이 아닌지. 어차피 자신의 손으로 감을 딸 재주가 없다면 입이라도 벌리고 기다리는 것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다. “행운은 노력이 기회를 만났을 때 일어난다.” 공감이 되는 이야기다. 노력은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것에는 공감해도 많은 사람들은 기회의 불공평함을 탓한다. 그래서 금수저 흙수저는 이제 누구나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널리 사용되는 낱말이 됐다. 하지만 만인에게 공평한 기회란 애당초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항상 변하는 환경과 다른 사람들과 엮여서 만들어지는 기회라..

단상/일상 2021.09.02

타타타

갑자기 ‘타타타’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김희갑 선생님이 작곡하고 가수 김국환씨가 부른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하며 핫핫핫 웃는 가사가 인상적인 노래의 제목이다. 브리트니 백과사전을 책장에 장식용으로 꽂아 두고 흐뭇해 하던 시대가 있었는데, 이제는 손으로 몇 자 치기도 번거로워서 “Hey Google”하고 불러 “타타타의 뜻?”하고 묻자 내가 궁금했던 답을 주르르 나열해 준다. 산스크리트어로 ‘그래 그거야’라고 번역되기도 하며, 내면의 뜻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 진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정보가 필요할 때 입만 움직이면 즉각 그럴듯한 정보들이 내 눈앞에 나열되는 참 편한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그 중 내가 가장 맞다고 믿는 것을 선택해야하는 부담은 있지만… 그러다 보니 ‘귀명..

단상/일상 2021.08.30

신책길에서 겪은 즐거운 기억

“You are going the wrong way.” 저녁 무렵 운동 삼아 동네길을 걷고 있는데 내가 걷고 있던 길 반대편에서 내 쪽을 향해 걸어오던 한 젊은 여자가 내게 큰 소리로 한 말이다. 당시 나는 안경을 쓰고 있지 않아서 상대편의 얼굴 표정까지는 알 수 없었으므로 뭔가 내가 잘못한 것이 있는가 싶어서 가까이 다가가서 조금 긴장한 표정으로 무슨 뜻인지 되물었다. 그러자 그 여자는 웃는 얼굴로 내가 걸어 내려온 방향을 가리키며, “저기 저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보세요. 당신은 저 아름다운 풍경을 등지고 걷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그 여자가 한말이 조크였음을 알아차리고 나 역시 크게 웃으며, “좋은 팁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고 헤어졌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을 피하는 것..

단상/일상 2021.08.29

우리의 후손

“생물 본래의 기관(器官)과 마찬가지로, 특별히 의식하지 않아도 기능이 조절·제어되는 기계 장치를 생물에 이식한 결합체.” 사이보그의 사전적 의미이다. 나도 일종의 사이보그다. 수년 전 심장으로 가는 혈관이 막혀 Stent시술을 받았다. 인류 생활에 일어나는 변화의 속도가 아주 빨라져서 이제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도 그 변화를 느끼고 또 동참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30년전 회사에서 생일 선물로 구형 무전기만한 휴대 전화기를 받고 우쭐댔었는데 이제는 손바닥 안에 들어오는 셀 폰을 항상 지니고 다니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그냥 친구와 통화하는 것뿐 아니라 내가 모르는 것을 물으면 척척 대답해 주고 길 안내도 해주는 등 둘도 없는 내 비서 역할을 하니 내 몸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 30년 전에는 사..

단상/일상 2021.08.28

"우리 휴혼 했어요"

‘소설가 이외수씨와 졸혼을 했다가 이씨가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졸혼 종료를 선언한 아내가 “여보, 같이 살자”며 애틋함을 보였다.’ 한국 모일간지에 실린 기사다. 병상에 누운 이외수씨를 만감이 교차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사진도 함께 실렸다. '졸혼'이란 용어는 신조어다.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으로서 부부가 이혼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자유롭게 사는 것을 말한다. 이혼이란 법적인 갈라섬을 택하는 대신 차선책으로 마련한 타협안인 것 같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한다는 말이 있듯이 내내 평탄하고 평안한 결혼 생활은 기대하기 어렵다. 두 사람 사이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해결이 안된다고 확신하면 평생을 불편한 관계로 지내는 것 보다 헤어짐을 더 쉽게 선택하는 경향이 늘고, 대신 이혼이 가져올 불확실성을 감안..

단상/일상 2021.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