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165

닥쳐봐야...

내가 나를 보면 대체적으로 좋은 사람이다. 비교적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있고 상식선에서 행동하고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된 경우가 없다. 평상의 삶에서는 그렇다. 나는 행운아다. 지금껏 진정 생사의 갈림길에 서거나 죽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 절박한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다.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해도 지금과 같은 품위가 유지될까? 평소의 삶과 크게 달랐던 상황에 처했던 경우가 있었나 생각해 보니 한가지 있다. 그 때 내 머리속에 순간적으로 떠올랐던 생각을 적어 본다. 오래전, 여름철 남해 무인도 갯바위로 직장 동료 한 명과 같이 낚시 갔다. 선장은 우리를 내려주고 저녁 무렵 픽업하러 온다고 돌아갔고,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바위 섬에는 우리 둘 뿐이었다. 낚시 중 동료가 낚시대를 놓쳐 그만 수면으로부터 3~..

단상/일상 2022.03.05

나 혼자라는 것을 느낄 때

요상한 바이러스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붐비는 곳이 골프장이다. 실내 활동이 제약 받으니 너도나도 예약 전쟁을 치룬다. 팀별 출발 시간 간격이 좁아져서 공 찾는다고 오래 두리번거리면 눈총 받기 십상이다. 꼭 장터 같다. 다가오는 봄에도 같은 광경이 펼쳐질 것 같다. 눈 덮인 골프장의 고즈넉한 풍경을 보니 한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만약 정규 18홀 골프장에서 나 혼자 골프치면 어떤 느낌이 들까? 황제 골프? 실제로 경험해 봤다. 오래전 일이다. 별로 붐비지 않는 동네 골프장에서 여름 오후 늦게 혼자서 라운딩을 시작했다. 동네 골프장이라도 거리는 짧지만 18홀을 갖췄다. 늦게 출발했으므로 전체 홀을 다 돌 생각은 없었고 어둑해지면 그냥 나올 작정이었다. 18홀 중 약 2/3 정도 되는 지점에 있는 홀은 그 골..

단상/일상 2022.02.20

냉장. 냉동

냉장고 청소하는 날. 한참을 벼르다 하는 것이다. 2인 1조를 진행되는 것이니까 날 잡기도 힘들다. 그저께는 아내가 귀찮았고 어제는 내가 게을렀고, 오늘은 죽이 맞았다. 음식 꺼내고 재 분류하는 일은 아내가, 서랍 분해 및 청소는 내가. 내 일이 더 많고 힘든 것 같다. 다 꺼내 놓고 보니 참 많다. 뭘 이렇게 많이 사다 놓고 먹었나? 버릴 것도 있다. 유효기간 지난 것. 왜 이런 것을 넣어 두었나 할 정도의 것들. 내가 좋아하는 모 아이스크림 bar는 냉장고 구석에 숨어 있다가 물 주머니가 돼서 나온다. 양심에 가책이 온다. 세계 기아 운운하며 글 쓴 것이 조금 민망해진다. 청소 다 끝내고 엄선된 품목만 다시 제자리에 챙겨 넣는다. 꺼낼 때 냉장고가 거의 가득 차 있었는데 다시 넣고 보니 절반 정도 공..

단상/일상 2022.01.30

힘내시라!

‘Boomer remover’ 코로나의 별칭이다. ‘Baby boom’ 시대에 태어난 늙은이들 없애는 병. 섬뜩하다. 출산율 저하, 노령인구 증가가 또 다른 지구 폭탄이라고 한다. 먹여살려야하는 인구는 늘어나는데 이것을 감당할 젊은 인구는 줄어든다. 지구 부채(負債)로 전락된 느낌이다. ‘삼식이’란 말은 있는데 ‘삼순이’란 말은 없다. 같이 늙어도 암컷 코끼리는 무리의 리더가 될 수 있는데 수컷은 지가 알아서 조용히 죽어 줘야한다. 같은 종으로서 “이게 뭐야” 라는 화가 솟는다. 죽자사자 열심히 발버둥치며 살아온 것 같은데. 그래서 이튿날 깨질 듯이 아픈 두통을 예상하면서도 새벽까지 가짜 웃음 지어가며 술 퍼 마셨는데. “그래서 어쩌라고” 이 한마디에 할말이 없어진다. 부채는 부채다. 이것이 현실이다. ..

단상/일상 2022.01.28

나랑 비슷한 친구

【1 : 소박한 입맛】 한참 피어날 때 ‘부잣집 도련님 같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집안이 부자가 아니었으니 틀린 말이다. 하지만 대충 좋은 말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기분 좋다. 하지만 식성만큼은 분명 도련님 식성이 아니다. 입에 안 맞아 못 먹는 음식이 없다. 보신탕 빼고 다 먹을 수 있다. 그 중에서 순대국에 막걸리를 제일 좋아한다. 수준 높고 심오한 느낌이 드는 글을 보면 좋다. 나도 그런 수준에 도달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굳이 좋아하는 글을 든다면 그것은 내게 있어서 1순위는 아니다. 소소한 일상을 편하게 풀어가는 글을 제일 좋아한다. 내 일상이니 남이 뭐라할 이유가 없다. 원하면 그냥 자신의 일상도 나누면 된다. 맞고 틀림이 없다. 투박하거나 촌스러움이 오히려 매력이 될 수 있..

단상/일상 2022.01.20

비몽사몽

오늘 조금 일찍 눈을 떴다. 순간 여기가 어딘지 헷갈린다. 정신차리고 보니 어제 내가 누웠던 침대위다. 조금전까지 무슨 꿈을 꾸었는데 그 꿈의 내용이 생각 안 난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 있다가 온 느낌이다. 여덟 시간 동안 나는 다른 삶을 살았다. 하루를 나름 열심히 산다. 눈도 치우고 아들 딸 출근길 배웅하고 밥 먹고 와인 한잔하고 저녁에 구르지 않는 자전거 타며 땀 흘리고… 자기 전 책상에 앉아 하루를 정리해보니 그냥 순간이다. 한 폭의 정물화 같이 한장에 다 그려진다. 그 놈의 날파리 성가시다. 바깥이 추워지니 더 극성이다 화분에서 윙 날아올라서 내 콧구멍에도 들어간다. 살생중죄. 왠만하면 참겠는데 더는 안된다. 탁 치니 한점 떡이 된다. 그 녀석도 꿈이 있었을까? 점이 되기 전까지는… 지금 이 순..

단상/일상 2022.01.17

회전문

회전문 앞에 선다. 삼각형 꼭지점이 맞은편을 향해 있으니 내 쪽은 열렸으나 상대 쪽은 닫혀 있다. 양편이 다 열린 듯 보여 진다. 그러나 들어올 틈이 없다 실상은 막혀 있다. 어느 한쪽이 돌려주지 않으면 문이 아니라 벽이다. 서로 들어오라고 청해도 누가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그냥 벽이다. 들고 나는 이 마음 맞춰 한 방향으로 돌려야 한다.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밀면 열리지 않는다. 정한 약속이 있거나 상대 마음을 읽어야 드나들 수 있다. 마음을 열자. 같이 열자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회전문이다.

단상/일상 2022.01.14

나이 세는 것

한국 나이 헷갈린다. 경우의 수가 많다. 엄마 뱃속에서 한 살 먹고 안 먹고, 설날 지나면 한 살 먹고 안 먹고, 생년월일 지나야 한 살 먹고 안먹고. 경우의 수를 서로 곱하면 여러가지 경우가 더 생긴다. 그래도 인간 관계에서 나이가 차지하는 비중을 아직도 크게 생각 하는 사람들이 있다. 직접 묻기 어려우면 돌려서 묻는다. 아이가 몇 살이죠? 아무래도 오차 범위가 너무 크다. 한가지 방편으로 띠를 묻는다. 문제는 젊은 늙은이, 늙은 젊은이가 많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12살 더 어리게 보거나 12살 더 늙은 노인 취급 받을 수도 있다. 가장 확실한 방편은 속칭 “민증까기”다. 사진이 든 Photo ID를 앞에 놓고 계산하는 법. 통상 출생년도를 보지만, 출생년도가 같으면 태어난 월.일로 출생 선후배를 가린..

단상/일상 2022.01.08

헌 달력

새해 이튿날 일찍 일어나 두리번거리다 책상 위에 놓인 2021년 달력을 본다. 헌 달력이다. 하루 새 쓸모 없어졌다. 꽤 여러가지가 적혀 있다. 의미 있는 날, 돈 내야할 일, 병원 가야할 일… 한해 동안 내가 해온 일들이다. 그 일들의 바탕위에 내가 서있다고 생각하기에는 대부분 사소한 일들인 것 같다. 정말 소소한 일상이었다. 버리려고 쓰레기통 앞에 서니 망설여진다. 나의 지난 1년이 폐기물이 되는 느낌이다. 좀 뒀다 버릴까? 쓸데없는 짓이란 것을 안다. 지지난해 달력도 1년 넘게 보관했지만 한번도 다시 꺼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그렇지. 나의 역사인데. 결국 2020년 달력 위에 포개 놓는다. 역시 다시 볼일 없을 것이다. 그래도 웃고 화내고 의미 부여하며 열심히 사는 것처럼 살았는데 하루, 아니 ..

단상/일상 2022.01.02

새해결심 3: 병아리 껍질 깨듯

내가 나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정체성 문제다. 무엇이 나의 정체성을 결정할까? 한가지는 아닌 것 같다. 생김새, 습관, 취향, 사고방식... 등등. 아주 여러가지가 모여 나를 나 답게 만들고 있다. 이런 것들은 대부분 오랜 기간 동안 만들어져 와서 굳어진 것들이다. 그러니 쉽게 안 변한다. 변하더라도 아주 조금씩 변한다. 만약 나를 만들고 있는 것들이 순식간에 변한다면, 나는 미쳤다는 소리 들을 것 같다. 잘 안 바뀌는 것이 맞다. 하지만 더 나아지려면 바뀌어야 한다. 잘 안 변하는 것을 변하게 하는 방법이 있어야하겠다. 생각을 뒤집어, 잘 변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본다. ● 변화해야 할 이유를 수용하지 않는다. 변해야 할 이유에 공감하지 않으면 바뀔 수 없다. ● 변화하겠다는 결심을..

단상/일상 2021.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