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냉장. 냉동

Chris Jeon 2022. 1. 30. 12:44

<2022. 1. 28. 냉장고 청소>

 

 

 

 

냉장고 청소하는 날. 한참을 벼르다 하는 것이다. 2인 1조를 진행되는 것이니까 날 잡기도 힘들다. 그저께는 아내가 귀찮았고 어제는 내가 게을렀고, 오늘은 죽이 맞았다. 음식 꺼내고 재 분류하는 일은 아내가, 서랍 분해 및 청소는 내가. 내 일이 더 많고 힘든 것 같다.

 

다 꺼내 놓고 보니 참 많다. 뭘 이렇게 많이 사다 놓고 먹었나? 버릴 것도 있다. 유효기간 지난 것. 왜 이런 것을 넣어 두었나 할 정도의 것들. 내가 좋아하는 모 아이스크림 bar는 냉장고 구석에 숨어 있다가 물 주머니가 돼서 나온다. 양심에 가책이 온다. 세계 기아 운운하며 글 쓴 것이 조금 민망해진다.

 

청소 다 끝내고 엄선된 품목만 다시 제자리에 챙겨 넣는다. 꺼낼 때 냉장고가 거의 가득 차 있었는데 다시 넣고 보니 절반 정도 공간이 남는다. 버린 것이 얼추 10% 정도 되는 것 같으니 40%의 공간이 재 창출 되었다.  잘 정리만 해도 없었던 공간이 만들어진다. 부질없는 생각,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 차 있는 내 머리도 이럴까?

 

그나저나 냉장고 없이 사는 모습은 이제 상상하기 힘들다. 어릴 때 집에 냉장고 없었는데. 그래도 배탈 안 나고 잘 산 것이 신통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반세기만에 세상도 변했지만 사람도 많이 변한 것 같다. 좋게 변한 것이니 모두에게 감사.

 

 

<2022. 1. 29. 헌 해를 냉동고 안에 넣어두다>

 

 

 

With Corona.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이제 방법이 없으니 같이 사는 수 밖에 없다는 속마음이 읽히는 것 같아서 찜찜하다. 원치 않았던 친구 생기면 참고 같이 살아야지 어쩌겠나. 그간 오미크론 핑계로 미루었던 토요 산행에 참가하기로 마음 먹었다.

 

 

 

체감온도 영하 27도. 바람 없고 햇빛이 좋아 덜 춥다. 몇 주전 내린 폭설이 그간 낮은 기온으로 녹지 않아 그대로 쌓여 있다. 우리만 유별난 사람들이 아닌 모양이다. 외진 산속 Trail에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자국으로 footpath가 생겨 그런대로 걸을 만하다.

 

콧속이 쨍하고 귀가 시리다. 하얀 눈에 햇빛이 반사돼서 선글라스 없이는 눈뜨기 힘들다. 먼지가 없다는 증거. 매 순간 마시는 공기가 깨끗함을 눈으로 보니 시골스런 나라에 사는 이점도 많음을 느낀다.

 

 

 

 

단체 산행이지만 팬데믹 규제로 10명 이하 단위로 잘라서 이동한다. 그러니 매우 조용하다. 뽀득뽀득 눈 밟히는 소리만 들린다. 나 같은 경우 걷는 동안 별 생각 없이 걷는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내일 모레면 한국 설날이다. 우리 정서상 신년 보다는 설날이 새해라는 느낌을 더 강하게 준다.

 

새해가 왔으니 헌 해 동안 일어났던 일들은 폐기되거나 다시 잘 정리해서 보관해 둬야한다. 어제 냉장고 청소했던 일이 떠오른다. 별 쓸모 없는 것이 많았고 잘 정돈해서 다시 챙겨 넣으니 없던 공간도 만들어졌다.

 

꼭 챙기고 싶은 일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대부분 새해에서도 만들 수 있고 부딪칠 것 같은 것이다. 그래도 몇몇 것들은 추억으로 남길 가치를 가진 것 같다. 마음 속 냉동고 행이다. 가능한 왜곡되거나 상하지 않게 얼려 둔다. 다시 필요할 때 꺼내서 녹여 볼 수 있도록.

 

15km 정도 걷고 나니 등쪽에는 땀이 좀 배였지만 나머지 부분은 얼얼하게 춥다. 자연 냉동고 속을 3시간 남짓 걷고 오니 헌 해가 잘 정리된 것 같다. 이제 새해를 보다 더 여유 있는 마음으로 맞이할 준비가 끝났다. 소중한 기억들도 잘 보관해 두었으니 언제든지 필요하면 살며시 꺼내 녹여서 볼 수 있겠다.

 

'단상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 혼자라는 것을 느낄 때  (0) 2022.02.20
낙서 8: 까치 설날  (0) 2022.02.01
힘내시라!  (0) 2022.01.28
나랑 비슷한 친구  (0) 2022.01.20
비몽사몽  (0) 2022.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