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165

내 마음 속 가시 1

어느 집이나 아픈 가시 하나는 있다는 말이 있다. 마냥 행복할 것 같은 가정에도 말 못할 아픈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신이 공평해서 그렇다는 생각을 하면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다. 어디 가정사뿐이랴. 내 마음에도 아픈 가시가 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아픈 곳. 드러내기도 힘들고, 잊을 수도 없는, 그냥 안고 가야할 그런 것들. 혹자는 말한다. ‘훌훌 털라고…’ 아니면 종교적 의식인 고해를 방법으로 제시한다. 털 수 있고 고백할 수 있었으면 했겠지. 그러지 못하는 마음 역시 다른 가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손가락에 가시가 박히면 아프다. 처음에는 빼내려고 했겠지만 아파서, 피가 무서워서 등 어떤 이유로 못 빼내면 그냥 살에 묻혀 삭거나 굳는다. 큰 ..

단상/일상 2021.09.21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이 키우는 집에서 곧잘 재미삼아 아이에게 묻는 질문이다. 교육학적으로 보면 어린아이에게는 해선 안 될 질문이다. 자칫하면 편가르기를 가르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조금 철이든 아이는 망설이거나 거짓말할 수도 있다. 아이의 순수한 감정을 그대로 두고 보는 편이 맞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느낌은 그 사회 규범에 분명하게 어긋나지 않는 한 내 마음에서 비롯된 감정이기 때문에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다. 얼마전 아프간에서 난민 탈출 작전이 한창일 때 영국에 사는 어떤 사람이 전세기를 동원해서 개를 포함한 반려동물들을 구출해와서 논란이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람 구하기도 급한데 반려동물 구출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 그를 비난하는 진영의 논리다. 내가 캐나다..

단상/일상 2021.09.20

다람쥐가 가져온 상념

뒤뜰에 사는 다람쥐가 선물을 가져왔다. 야생 호두 스무 개가 문 옆 구석진 곳에 놓여 있다. 문 앞에서 두발을 모으고 서 있는 모습이 이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먹던 땅콩을 짐짓 흘려준 것이 고마워서 일까? 일단 참한 뜻을 받기로 하고 두 알만 남기고 나머지는 집안으로 들였다. 너의 마음은 안다. 그만큼의 호두를 모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올겨울을 새끼와 나기 위해서 그 작은 입이 얼얼하도록 물어 날랐을 것이다. 일단 문 앞에 두고 시간 날때마다 땅을 파고 묻을 작정이었겠지. 내 문 앞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밉지 않다. 그 많은 호두를 하루 밤사이 다 묻을 수는 없을 터 밤사이 스컹크나 라쿤이 뺏아갈 것 같아 매일 두 개씩 내놓기로 한 것이다. 기특하게도 내 뜻을 알아차린 것인지 밤사이 두 알씩..

단상/일상 2021.09.15

사랑도 배워야 하나?

본능과 이성을 생각할 때 사랑하는 마음은 본능일까, 배워야 하는 이성일까? 새끼를 품고 있는 제비를 보면 본능인 것 같기도 하고 제 아이를 죽이는 엄마를 보면 이성인 것 같다. 사랑을 타고 났다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사랑이 결핍된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문제아 되기 쉽고 이웃 사랑을 외쳐도 이웃이 미워질 때가 있으니 아무래도 본능은 아닌 것 같다. 본능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진 학습의 결과일 수 있다. 갓난 아이에게 독사의 ‘쉿’ 하는 소리를 들려주면 깜짝 놀란다고 한다. 오랜 기간 동안 파충류에게 당해온 인간의 공포가 DNA에 새겨진 결과다. 사랑을 배워야 한다면 어떻게 배워야 하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공허한 믿음이고 지식이 곧 지혜가 되는 것은 아니니 모쪼록 내 몸이 사랑을..

단상/일상 2021.09.08

금수저 흙수저 2

흙수저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 흙수저에 만족하며 사는 법을 생각했다. 뭔가 찝찝하다. 달리는 자의 능력에 따라 골인 지점에 들어가는 시간이 다른 것은 충분히 이해되는데, 출발점이 다른 것은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라는 억울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하지만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는 법. 그분의 뜻이든 확률에 의한 불운이든 내가 흙수저를 갖고 태어난 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니 금수저를 훍수저를 바꾸는 꿈을 꿔보자.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으니… 오래전의 일이다. 서울역 광장에 구두 닦는 소년 2명이 있었다. 두 명 다 장래 성공한 삶을 살고 싶은 꿈을 가졌다. “서울대에 입학하여 열심히 공부해서 사법고시 합격하고 판사가 되어 성공한 사람이 되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도 같은 생각을 ..

단상/일상 2021.09.05

잠이 줄어드는 이유

몇 년 전만해도 내가 가장 자신 있었던 분야가 3가지 있었다. 먹고, 마시고, 자는 것. 이제는 이 3가지가 나의 취약 분야가 되어가고 있다. Because of aging.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먹고 마시는 것이 약해지는 원인은 바로 짐작이 되는데 잠은 왜 줄어들까? 신체적 변화는 생존을 위한 본능이라고 한다. 소화 기능이 약해졌으니 음식물을 적게 넣어야 하고 그러니 입맛이 떨어진다. 맞다 간이 망가졌으니 알코올은 매우 해롭다. 그래서 조금 먹어도 많이 취한다. 맞다 그러면 잠은 왜 줄어드나? 내 의학적 상식이 부족하다. 구글에 물어보기 전에 나름대로 이유를 상상해 본다. 1. 떠날 시간이 길게 남지 않았으니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을 빨리 끝내라는 재촉. 2. 나이 들었다는 이유로 게을러졌으니 더 움..

단상/일상 2021.09.04

흔적 없애고 추억 남기기 1

이제 나이가 60 중반에 가까워지니 대화의 주제도 달라져서 이전까지는 거의 금기시했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러워진다. 다른 이들의 생각도 살펴보고 내가 죽음을 맞이한 이후 남은자를 위한 배려도 생각해볼 필요를 느낀다. 아무래도 나보다 오래 남아 있을 것 같은 아내의 의견을 물어보니 나를 그냥 떠나 보내기는 아직은 조금 섭섭한 듯 무엇인가 추억할 만한 흔적을 남기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 매장 보다는 화장이 낫다는 것에는 마지 못해 동의했지만 화장 후 유골 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 아내는 최소한 유골함이라도 적당한 곳에 모셔 놔야 보고 싶을 때 찾아갈 곳이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 뜻이 우선 고맙다. 힘들었던 경험도 추억이 되면 그립고 좋아 보이는 법이다...

단상/일상 2021.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