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헌 달력

Chris Jeon 2022. 1. 2. 23:10

 

새해 이튿날 일찍 일어나 두리번거리다 책상 위에 놓인 2021년 달력을 본다.

 

헌 달력이다. 하루 새 쓸모 없어졌다. 꽤 여러가지가 적혀 있다. 의미 있는 날, 돈 내야할 일, 병원 가야할 일… 한해 동안 내가 해온 일들이다.

 

그 일들의 바탕위에 내가 서있다고 생각하기에는 대부분 사소한 일들인 것 같다. 정말 소소한 일상이었다.

 

버리려고 쓰레기통 앞에 서니 망설여진다. 나의 지난 1년이 폐기물이 되는 느낌이다. 좀 뒀다 버릴까? 쓸데없는 짓이란 것을 안다. 지지난해 달력도 1년 넘게 보관했지만 한번도 다시 꺼내 본 적이 없다.

 

그래도 그렇지. 나의 역사인데. 결국 2020년 달력 위에 포개 놓는다. 역시 다시 볼일 없을 것이다.

 

그래도 웃고 화내고 의미 부여하며 열심히 사는 것처럼 살았는데 하루, 아니 순간을 지나니 처리하기 애매한 잔존물이 되었다.

 

내 숨이 톡 멈추는 그날도 이럴까? 순간을 사이에 두고 우주의 중심처럼 굴다가 처리 애매한 잔존물이 되는 것.

 

싸락눈이 온다. 집 앞뒤에 조금 쌓였다. 눈 치우기에는 너무 이르다. 넉가래가 바닥에 긁히는 소리가 조심스럽다. 우선 집 뒤 Deck에 쌓인 눈을 빗자루로 조금 쓸어 다람쥐 올 길을 만들어 놓는다.

 

그 다음 집 앞 Driveway에 길을 낸다. 내 집 앞 지나가는 사람과 아침 일찍 올 수 있는 우체부를 위한 길이다.

 

좀 춥다. 인스턴트 대추차 가루에 더운물 붓고 홀짝거린다. 뭐 감사할 일 없나? 생각해 보니 한가지 있다. 며칠전에 좀 좋은 일 한가지 생긴 것이 떠오른다. 1월 1일 감사헌금 빼먹은 것이 걸린다. 이다음에 해야지.

 

역시 소소한 일상이 지나간다. 내년초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이다. 내년이 주어진다는 전제하에서다.  일기 치고는 좀 끄므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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