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닥쳐봐야...

Chris Jeon 2022. 3. 5. 22:26

 

 

내가 나를 보면 대체적으로 좋은 사람이다. 비교적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있고 상식선에서 행동하고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된 경우가 없다. 평상의 삶에서는 그렇다.

 

나는 행운아다. 지금껏 진정 생사의 갈림길에 서거나 죽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 절박한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다.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해도 지금과 같은 품위가 유지될까?

 

평소의 삶과 크게 달랐던 상황에 처했던 경우가 있었나 생각해 보니 한가지 있다. 그 때 내 머리속에 순간적으로 떠올랐던 생각을 적어 본다.

 

오래전, 여름철 남해 무인도 갯바위로 직장 동료 한 명과 같이 낚시 갔다. 선장은 우리를 내려주고 저녁 무렵 픽업하러 온다고 돌아갔고,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바위 섬에는 우리 둘 뿐이었다.

 

낚시 중 동료가 낚시대를 놓쳐 그만 수면으로부터 3~4m 정도 되는 높이의 직벽 중앙에 걸려 버렸다. 내가 낚시 경력도 오래되었고 신발도 바위에 잘 달라붙는 일명 ‘쩍신’을 신고 있어서, 파도가 찰싹찰싹 들이치는 낚시대가 걸린 그 지점까지 살금살금 기어 내려갔다.

 

한발로 직벽 조금 튀어나온 부분을 딛고 허리를 굽혀 낚시대를 집어 들려는 순간 예상 못했던 큰 파도가 내 허리 부분까지 들이쳤고 어~ 하는 순간 내 몸은 허공에 붕 떠서 아래 바다로 떨어지고 말았다. 무식하게도 그때 구명 조끼는 입지 않았다.

 

“큰일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물속으로 처박히는 느낌이 들고 순간 주위가 연녹색으로 변했다. 바닷물 속이다. 그곳은 수심이 깊은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수영은 꽤 자신이 있었으므로 죽을 것이라는 두려움은 당장 들지 않았고, 바닷물에 빠졌을 때 해야 하는 응급조치는 본능적으로 진행되었던 것 같다. 숨 참고, 바닷물 마시지 말고, 눈뜨고, 침착하게 위로 떠오른다.

 

물속에 처박힌 후 물위로 떠오를 때까지 수초동안 내 머리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헤엄쳐야 하는데 무거운 신발은 벗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신고 있는 쩍신은 며칠 전 구입한 것인데 벗어 버리기는 너무 아깝다. 벗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기껏해야 그 당시 수만원하는 신발이 아까워서 벗어버리지 못하고 망설였다는 이야기다.

 

나의 쪼잔함을 반성하기 위해서 지금 생각에 잠기는 것이 아니다. 평소의 나와 일상과는 다른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나와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나를, 어느때나 어떤 곳에서나 시종여일하게 유지할 수 있는 확신이 있는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나의 숙제다.

 

참고로,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문제의 그 쩍신을 신은 채로 간신히 살아나왔고, 오후 늦게 배가 데리러 올때까지 팬티 바람으로 낚시를 즐겼다는 사실. 그 당시 주체할 수 없었던 열정만큼은 지금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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