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164

호사를 부려보자

어지럽고 지저분하면 화난다. 나이 땜시 많이 무뎌 졌지만 네모지고 텅 빈 승방이 좋다. 깔끔한 성격? 돈 아까우니 안 사서 단출해진 면도 있다. 빈 방이 시원해서 좋지만 허전하다. 쨍~하는 환청이 들릴 것 같다. 큰맘 먹고 꽃을 산다. 병에 꽂아 놓고 보니 참 좋다. 주변이 환해지고 향이 찬다. 쳐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비워진 만큼 채워야 한다. 이왕이면 호사스러운 것으로 채워보자. 지금까지 내 것 아니 줄 알았던 화려하고 비싼 것으로. 그 시작이 꽃이다. 그 동안 수고한 내 몸과 마음 좋은 것 보여주고 들려주고 먹여주고 싶다. 너도 한번 수준 높게 살아봐야지. 꽃으로 눈 호강했으니 차려 입고 심포니 가고 점잖게 앉아 와인도 골라 보자. 탁한 말에 찌든 목도 순수한 가글로 행궈야지. 사랑, 위로, ..

단상/일상 2021.12.08

새해 결심 2 : Better than nothing

‘고해성사’ 할 때 찔리는 것이, 매년 내 죄가 대동소이 하다는 것이다. 죄 사함 받고 다시 죄 짓지 않겠다고 했는데, 매번 같은 죄를 짓고 산다. 얍삽한 꾀가 든다. 배우자의 죄는 대충 비슷하다. 종일 얼굴 맞대고 아웅다웅하니 짓는 죄도 비슷할 터, 고해성사실에 배우자 다음 차례로 들어가서 “조금전과 이하동문입니다”하면 시간 절약할 수 있겠다. 아~ 죄 하나 더 지었다. 새해를 맞이하면 결심한다. 올해는 ~을 꼭 하겠다고. 새해 Resolution이다. 시간은 한결같이 흐르지만 인간이 잘라 놓은 토막의 시작에 서서, 지난해 못 이룬 것을 반성하고, 더 나은 미래를 기대하면서 올해는 뭔가를 꼭 이루고 말겠다는 굳은 전의를 다진다. 그러나 사람이 잘 바뀌던가? 십중팔구 작심삼일로 년초의 결심은 슬며시 폐기..

단상/일상 2021.12.04

새해 결심 1 : 오발 명중

반세기전 미군이 참전한 전쟁에서 적군 1명을 사살하는데 실탄25,000발을 소비했다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오발사고가 나면 많은 경우 인명 피해가 뒤따른다. 이것도 머피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인가? 총을 쏴서 총알을 목표 지점에 명중시키기 위해서는 일단 과녁을 잘 봐야 한다. 머리 위로 총구만 내밀고 쏘거나 과녁이 잘 보이지 않는 밤에는 높은 명줄율을 기대할 수 없다. 인간은 많은 목표를 가지고 산다. 이루고 싶은 목표, 가지고 싶은 목표, 하고 싶은 목표 등. 어떻게 생각하면 삶은 목표를 이루어 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목표는 살아가면서 지향하는 목적지이자 맞춰야 할 과녁이다. 목표가 구체적이지 않거나 흐릿하면 맞추기 어렵다. 현모양처를 배우자의 이상형으로 정하고 구한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현모..

단상/일상 2021.12.01

시간에 금 긋기

‘아인슈타인은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길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관측하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달라진다는 놀라운 이론을 발표한다. 바로 상대성 이론이다.’ 상대성 이론을 설명하는 글을 읽다가 이 문장을 발견하고 책을 덮었다. 과학도가 아닌 내가 배울 것은 이것이면 충분하다. ‘일각여삼추(一刻如三秋)’란 말도 있고, ‘세월이 쏜 살 같다’는 이야기도 있다. 시간이 느리게 가서 지겹거나 반대로 너무 빠르다고 탄식하는 말이다.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기도 하지만, 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오늘이 어제 같은 삶을 살다가 어느 날 불현듯 죽음이 눈 앞에 와 있는 것을 알게 된다면 좀 허망할 것 같다. 최소한 시간의 흐름을 느끼면서 살고 싶다. 가능하다면 행복한 순간에는 좀 더 오래 있고..

단상/일상 2021.11.29

직장 명언

짧지 않은 직장 생활하는 동안 들은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것 3가지가 있다. “누가 주인 의식 가지라고 했지 너 보고 주인이라고 했나?” “직장 정문 들어서면서 즐겁고 기쁘다면 입장료 받지 왜 월급 주겠느냐?” “혼자 쓰면 모자라고 둘이서 쓰면 남는 것이 월급이다.” 월급쟁이는 태생적으로 주인이 될 수 없다. 공정한 보상 시스템이 결여된 조직에서 ‘네가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일해 주기 바란다’는 식의 상사 말은 부하를 착취와 에너지 고갈로 몰아넣는 감언이설이 될 수 있다. 일할 때 주인 입장을 생각하는 정도가 현실적일 것 같다. 오버액션이 오히려 내게 독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이 하는 일은 두가지로 구분된다.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과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일. 월급 받고 하는 일은 후자일 경우가 많다...

단상/일상 2021.11.17

되고 싶은 모습

내가 늙은이라는 생각은 아직 안 든다. 손주가 없으니 할아버지 소리 들을 일 없고, 부모님 잘 둔 덕분에 아직 염색약 신세 안진다. 잘 걷고 심지어 좀 뛰기도 하니 나이가 나랑 비슷해 보이는 사람이 틱틱 반말하기도 한다. 얼마전 지역 신문에 5년전 내 사진을 보고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름은 분명 네 이름인데 사진 속 사람이 달라서 긴가민가해서 전화했다고 한다. 아뿔사, 나만 모르게 내 얼굴이 변했다. 나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늙어서 되기 싫은 모습을 가정해 두고 그렇게 안되기 위한 연습을 지금부터라도 시작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이 들어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할말만 또박또박 정확하게 하며 살고 싶다. 귀 닫고 주절주절 같은 말 반복하는 모습은 싫다. 그렇다고 하고 싶은..

단상/일상 2021.11.15

약장수 3: 몰약

‘모르는 것이 약이다’ 대부분 약간의 마취효과나 수면제 효과가 있는 약 정도로 알고 있다. 문제임을 모르니 가만히 있게 돼서 마음이 편하고 불필요한 사단에 말려들지 않는다. 눈 감고 있으니 내 세상이다. 이런 효능 외에 이 약이 갖고 있는 숨은 효능이 대단하다. 모른다고 하는 것은 겸손의 시작이다. 내가 알고 있으니 남의 말이 귀에 들리지 않고, 나 보다 모르는 자는 내 발아래로 보이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 겸손의 반대 끝인 교만 쪽으로 마구 달린다. 모른다고 생각하니 세상 모든 일이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긴다. 알고 계시는 분들이 대단해 보인다. 배움이 즐겁고 커가는 내가 대견스럽다. 교만에서 뒤돌아 반대 끝 겸손 쪽으로 내려온다. 편견과 고집이 사라진다. 모른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시원하다. 창고..

단상/일상 2021.11.13

약장수 2: 체하는 약

“조석(朝夕. 아침 저녁 밥)은 굶고도 이는 쑤신다” 굶고도 먹은 체하거나 없으면서도 있는 체하며 허세를 부리는 꼴을 비꼬는 말이다. ‘~인체’ 하는 것은 통상 나쁜 행동으로 치부된다. 독약도 잘 쓰면 명약이 될 수도 있는 법. ‘~인체 하는 약’의 효능이 굉장하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어낸다. 주위 환경이 행복하기 때문에 내가 행복한 것이 아니고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행복하다. ‘내가 행복한체 하는 것’ 말장난 같이 들리기도 하겠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일리 있는 말이다. ‘내가 두렵지 않은 체할 때와 내가 두려워 벌벌 떠는 모습을 보일 때의 상대방 반응이 달라진다. 내가 착한 체하면 나쁜 일 하기가 어려워진다. ‘~인체’하는 것을 단지 허세라고만 생각하지..

단상/일상 2021.11.13

약장수 1: 만약

영어 배울 때 가정법 문법이 제일 헷갈렸다. 한국말의 가정법은 상대적으로 쉽다. 시제와 관련 없이 ‘만약’만 붙이면 대충 뜻이 통한다. 그런데 이 ‘만약’의 효능이 대단하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효과가 탁월하다. "만약 내가 빛의 속도로 날아가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만약 내가 그였다면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창조적인 사람이 되고,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이 약을 상용화하면 큰 돈 벌 것 같다. 약장수가 되기로 한다. “신묘한 약이 왔어요. 창의력을 높여주고 사람과의 갈등을 없애 주는 신기한 약. 아이도 오고 어른들도 와서 먹어 봐요.” 관심 있으신 분은 이 ‘만약’의 효능을 시험하는 임상 테스트에 참여해 주시기 바란다.

단상/일상 2021.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