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나 혼자라는 것을 느낄 때

Chris Jeon 2022. 2. 20. 10:22

 

 

요상한 바이러스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붐비는 곳이 골프장이다. 실내 활동이 제약 받으니 너도나도 예약 전쟁을 치룬다. 팀별 출발 시간 간격이 좁아져서 공 찾는다고 오래 두리번거리면 눈총 받기 십상이다. 꼭 장터 같다. 다가오는 봄에도 같은 광경이 펼쳐질 것 같다.

 

눈 덮인 골프장의 고즈넉한 풍경을 보니 한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만약 정규 18홀 골프장에서 나 혼자 골프치면 어떤 느낌이 들까? 황제 골프? 실제로 경험해 봤다. 오래전 일이다. 별로 붐비지 않는 동네 골프장에서 여름 오후 늦게 혼자서 라운딩을 시작했다. 동네 골프장이라도 거리는 짧지만 18홀을 갖췄다.  늦게 출발했으므로 전체 홀을 다 돌 생각은 없었고 어둑해지면 그냥 나올 작정이었다.

 

18홀 중 약 2/3 정도 되는 지점에 있는 홀은 그 골프장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주차장을 포함해서 골프장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날이 조금씩 저물어 가는데 그곳에 도착해서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도 없고 앞서 가는 사람도 없다. 주차장에는 내 차 밖에 안보인다. 프로샾 근무자도 문 닫고 간 것 같았다.

 

어두워지는 이 넓은 골프장에 나 혼자 골프를 치고 있다. 순간 아주 묘한 느낌이 들었다.

 

프로골퍼가 되겠다는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굴랑 경쟁하는 것도 아니고, 봐주는 사람도 없고, 날 찾는 사람도 없고, 아무런 소리도 안들리고. 그냥 공 치고 굴리고 넣고 그리고 다음 홀로…

 

먼저 외롭고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후 내가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뭣하는 짓인가? 조금 슬퍼지고 마지막으로 무서워졌다. 골프장이 나를 짓누르는 듯한 느낌.

 

즉시 골프백을 메고 최단거리를 택해 주차장에 와서 차에 올라타서는 무엇에 쫓기듯 집으로 차를 몰았다.

 

집에 거의 다와서 내 집 창문에서 비쳐 나오는 불빛을 보니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때 내게 왜 그런 감정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겠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어느 신문 기자의 말이 생각난다. “혼자면 외롭고 함께면 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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