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164

웃는 연습

수녀님이 한국에서 새로 부임하셨다. 수녀복을 입고 마스크를 쓰니 눈만 보이는데 항상 눈가에 웃음이 봄날 꽃 피듯 피어나는 분이다. 영성체 모실 때는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통상 근엄한 표정을 주고받는다. 주님의 살이니까. 그러나 이분이 웃음을 달고 주시는 영성체는 꼭 엄마가 아이에게 사탕주는 것 같다. 더 달고 맛있다. 한 번 더 받고 싶다. ‘플라스틱 미소’란 용어를 가끔 듣는다. 영어사전에서 ‘plastic smile’란 단어를 검색해도 없는 것을 보니 만들어진 단어 같다. ‘plastic surgery’가 성형이란 뜻이니까,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웃음 정도의 의미로 짐작한다. 통상적으로 동양인들의 얼굴 표정은 서양인들에 비해 약간 굳어 있다. 지금은 변해가고 있지만, 감정 표현을 잘 안 하는 것..

단상/일상 2022.05.23

하루 평균 35km씩 400km 걷기

#1 새벽 5시경 눈을 뜬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오늘도 35km 아스팔트길을 걸을 수 있을까 걱정한다. 어제도 걸었으니 오늘도 어찌 되겠지. 사실 이런 걱정할 필요가 없는 아침이다. 어제부로 ‘토론토 한인회 주관 국토대장정 행사’는 끝났다. 그런데도 몸은 아직 어제를 기억하나 보다. 같이 걸은 친구들과 길 풍경이 그립다. 발이 근질거린다. 나의 국토 대장정은 계속 진행형이다. #2 토론토에서 수도 오타와까지 걷는다. 구글로 잰 거리는 403km. 이리저리 추가로 걷는 거리까지 합하면 조금 더 되겠지. 주관하는 한인회에서 행사의 목적을 나타내는 몇 가지 좋은 슬로건을 제시했다. 이를 본 아내가 나를 부추긴다. “한번 해보자. 우리 잘 걷잖아요. 지금 안 하면 평생 못해보고 죽..

단상/일상 2022.05.09

마지막날 부를 이

Mother’s Day가 다가온다. 한국에서는 1973년 어버이날로 바꿨다. 아버지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 같다. 좀 그렇다. 두 번하기 번거로우니 한꺼번에 묶었다는 느낌도 든다. 아버지는 원래 묵묵히 헌신하는 멋이 있는데… 차라리 다른 나라처럼 ‘어머니 날’ ‘아버지 날’을 따로 두어 두 번 기리는 것이 나았을 것도 같다. 2차 대전 때 일본 제로 전투기 조종사로 수많은 전투에서도 살아남은 파일럿이 쓴 회고록 중에, 최후를 맞이했던 동료 파일럿이 죽음 직전 질렀던 말이 한결같았다는 내용이 있다. “엄마”였다는 것이다. “천황폐하 만세”는 물론 아니고, 그들이 믿던 신을 찾았던 것도 아니었다.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배우는 단어도 “엄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태어나서 눈을 맞추고 안기고, 그분의 젖을 먹으..

단상/일상 2022.04.20

아나운스의 기도가 더 잘 응답 받는다?

목소리가 낭랑하고 표준말 쓰는 아나운스가 하는 기도는 그분께서 듣기 좋기 때문에 더 잘 응답해 주신다? 당연히 동의하실 분 없을 것이다.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 많은 신자수를 자랑하는 큰 종교단체에서 특별한 날 그동안 소외감을 느꼈던 할머니 신자들이 의기 투합하여 수수한 옷을 차려 입고 신자들 앞에 서서 알아듣기 어려운 목소리지만 최선을 다해 특송을 불렀다면 신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참 좋았다” 아니면 “듣기 괴로웠다” 여러분의 의견은? 여러 분야에서 봉사자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팬데믹 상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봉사자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그 이전부터 들어왔다. 가끔씩 봉사일 담당하시는 분들로부터 듣는 이야기다. “하려고 하는 사람은 있어도 수준이 좀 미달돼서… ”특히 앞에 나서서 해야 하는 ..

단상/일상 2022.04.11

사서하는 고생

달력이 필요하다. “오늘이 며칠이지?” 아침 마다 자주 듣는 소리다. 냉큼 답을 못하고 벽에 붙여 둔 달력을 봐야 오늘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가늠이 된다.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고, 지난 한주간 생긴 일들이 뒤죽박죽 기억 장치속에 우겨 넣어져 있다. 대부분 벌써 색깔이 바랬다. 무인도에서 사는 사람이 날짜 기억하기 위해 바위에 금 긋는 장면을 봤다. 깊은 동굴속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변화가 필요하다. 자극이라 해도 좋다. 뭔가 차이가 나야 다름을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지인이 정보를 줬다. 좋은 취지를 설명하며 내가 사는 곳에서 연방 수도까지 걸어가는 행사를 한다. 하루 평균 35km를 걷어 11박 12일 만에 400km 주파. 취지는 그냥 좋은 것 같다는 정도의 느낌. 대신에 내가 ..

단상/일상 2022.04.03

작은 문화 충격 3 : 가방끈

가방끈 길이를 자랑하고 싶은 세 사람이 모였다. 나는 S대 출신이야. 옆 사람이 거든다. 나는 그 학교 보다 더 유서 깊은 대학을 나왔지. 서울의 옛 이름이 한양이지. 그러자 마지막 사람이 나선다. 그대들은 지역에 기반을 둔 대학 출신이지만 난 전 국민의 대학을 졸업했다. 공부잘한 것 자랑할 만하다. 지능, 지식 수준, 성실, 인내 등 우리가 인정하는 좋은 능력 내지 성품을 평가할 수 유효한 지표이라고 생각된다. 문제는 인간의 능력이라는 것이 학업 성적으로만 평가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우리의 잠재된 능력도 큰 부분이고, 지적 능력을 평가하는 I.Q의 한계에 의해서 E.Q(감성지능)란 용어가 등장한지도 오래다. 거기에다가 머리는 좋은데 성품은 영 글러먹은 자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흐르는 세월에 몸 ..

단상/일상 2022.03.30

작은 문화 충격 2: 반말

반말, ‘반(半)토막 말’의 준말이다. 토막이 났으니 완전한 말이 아니다. 한국어에서는 통상 존댓말의 반대 의미로 사용된다. ‘존대(尊待)’의 반대는 무엇인가? ‘하대(下待)’다. 하대말은 기본적으로, 상대가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경우나, 낮은 계급에 있다든가, 자신과 친할 때 쓴다. 문자 그대로 낮게 대하는 것이다. 첫 만남 이후 서로 친해져서 말이 편하게 나오는 것은 좋다. 쌍방이 동의한 것이니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만약 내가 일방적으로 반말하기로 결정한다면? 나이는 내가 존중 받아야할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다. 계급은 그 계급이 필요한 조직을 떠나서는 의미가 없다. 친해지고 싶은 것은 내 마음이다. 만나자마자 속칭 ‘민증까기’를 제안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국식 나이 세기 방법이 헷갈리니 주민등록..

단상/일상 2022.03.26

작은 문화 충격 1: 남녀 60세 부동석

이민 와서 상당기간 한인 community와 떨어져서 살았다. 이후 거주지가 달라져서 속하게 된 한인 community에서 새롭게 발견한 풍속도다. ‘부부 동반 모임에서 남녀 60세 부동석’ 남녀가 가깝게 앉으면 탈나는 위험도가 높은 나이는 아닌 것 같다. 궁금해서 물어본다. “화제거리가 다르다.” 몇 가지 이유들 중 대표적인 답이다. 같이 앉아봤자 이야기 주제가 다르니 서로 불편해서 그런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임이나 친구집에 부부동반으로 초대받아 가면,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부부는 남남이 된다. 인간 관계의 대부분은 communication에 의해서 유지되는데, 대화가 안된다면 어떻게 하나? 혹시 밖에서 하는 대화와 집에서 하는 이야기가 다른 것일까? 양측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제나, 말..

단상/일상 2022.03.23

나 보다 낫다

나는 길치다. 한번 갔던 길도 잘 기억 못하지만 방향 감각도 무디다. 식당 화장실 가서 나 올 때는 반대편으로 꺾어 나와서, ‘employee only’ 붙여진 주방문을 열어 안에서 일하시던 종업원들 놀라게 한 적이 여러 번이다. 개소리, 개 같은 자, 개망신, 개죽음, 개고생… 나쁜 의미 단어 앞에 ‘개’가 들어간다. 좀 의아하다. 내 생각에는 개가 인간 보다 나은 점도 많다. 최소한 길 찾는 능력만큼은 나보다 좋았다. 18년 동안 내 품에서 꼼지락거렸던 녀석과 동네 산책 갔다. 이사 온지 얼마 되지 않았던 곳이라 한 두 번 갔던 동네 길이다. 촘촘히 들어선 집 사이로 샛길이 있었고 그 길이 목적지 공원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내가 앞장서고 녀석은 옆에서 조신하게 따라온다. 샛길 가까이 오긴 왔는데 그 ..

단상/일상 2022.03.17

닥쳐봐야...

내가 나를 보면 대체적으로 좋은 사람이다. 비교적 합리적인 사고를 갖고 있고 상식선에서 행동하고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된 경우가 없다. 평상의 삶에서는 그렇다. 나는 행운아다. 지금껏 진정 생사의 갈림길에 서거나 죽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은 절박한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다. 만약 그런 상황에 처해도 지금과 같은 품위가 유지될까? 평소의 삶과 크게 달랐던 상황에 처했던 경우가 있었나 생각해 보니 한가지 있다. 그 때 내 머리속에 순간적으로 떠올랐던 생각을 적어 본다. 오래전, 여름철 남해 무인도 갯바위로 직장 동료 한 명과 같이 낚시 갔다. 선장은 우리를 내려주고 저녁 무렵 픽업하러 온다고 돌아갔고,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인 바위 섬에는 우리 둘 뿐이었다. 낚시 중 동료가 낚시대를 놓쳐 그만 수면으로부터 3~..

단상/일상 2022.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