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129

옷이 날개 2

‘부모님 날 낳으시고, 선생님 날 만드시고’ 서울 어느 성형외과 건물벽에 붙어있던 광고라고 한다. 지금 봐도 잘 만든 걸작 광고 문구다. 외모를 잘 꾸미는 것. 좋다. 아름다운 것 싫어하는 사람. 없다. 마음이 중요하다. 역시 맞는 말이다. 어느 뇌 과학자가 말하길, 자신은 생각에 따라 얼굴 모양이 바뀌는 것을 믿는다고 했다. 일리 있는 말이다. 수배자 전단 사진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음산해 보인다. 선입견인가? 짝짝이 눈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에서 홀로 지내던 우울한 모습의 소녀가 있었다. 어느 날 마지막 방법으로 얼굴을 예쁘게 성형했다고 가정해 보자. 소녀의 예쁜 얼굴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이고 접근한다. 소녀는 점점 자신감을 갖게 된다. 그 중 괜찮은 심성을 가진 청년을 발견한다. 둘..

단상/일상 2021.10.11

옷이 날개 1

사자성어를 보면 그것을 만든 이가 무엇을 더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다. 권선징악(勸善懲惡) 선이 악보다 먼저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일체를 강조하지만 임금님이 제일 앞이다. 그렇다면 의식주(衣食住)와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 기준인 신언서판(身言書判)은 왜 의(衣)와 신(身)을 제일 앞쪽에 두었을까? 살아가기 위해서는 옷(衣) 보다 먹는 것 식(食)이 더 중요할 것 같고, 사람을 평가함에 있어서 외모인 신(身) 보다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판단력(判)이 더 중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의식주와 신언서판의 어순을 보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옷이 중요하고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데 있어서는 풍모가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즉 인간이 살아가면서 외형이 미치는 영향이 내부의 모습에 우..

단상/일상 2021.10.11

달라서 좋고

계절이 여름 끝자락이라 도처에 싱그러움이 더해간다. 구부러진 숲길 양옆에 나무와 플, 꽃이 무성하다. 그 사이로 다람쥐가 들락날락하며 부산을 떤다. 하늘에는 구름이 적당히 여백을 메우고 있다. 그들 가운데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하는 교만한 내가 서있다. 내가 보기에 참 좋은 구도다. 잘 알고 지내던 직장 선배가 내게 한 말이 생각난다. 온 세상 사람들이 너와 똑 같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끔찍하겠느냐? 그분이 평소 나의 장점을 자주 칭찬해 주고 또 후배인 내가 본인의 일을 많이 도와주는 것을 고마워하고 있었는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다른 사람에게는 조금 까칠한 후배에게 사회에서 어울려 사는 지혜를 가르쳐 주고 싶었던 의도로 이해된다. 이전 미국 어느 대통령이 한사코 막아냈던 히스패닉계를 미국에서 다 몰아..

단상/일상 2021.09.24

내 마음 속 가시 2

작은 가시는 살 속에 그냥 두어도 삭거나 굳어 내 몸의 일부가 된다. 어떤 땐 굳은살이 보통 살 보다 더 강해져서 유용할 때도 있다. 그럼 큰 가시는? 빼내지 않으면 상처가 덧나 고생한다. 누구나 마음 속의 가시를 가지고 있다. 크고 작고는 본인 생각이다. 본인이 묻어 두기를 원해서 삭고, 굳을 수 있다면 굳이 주위 사람이 들추지 않는 것이 좋다. 짐짓 잊고 있는 상처를 들쑤시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시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데 본인은 뺄 때의 고통이 두려워서, 아니면 피가 무서워서 망설이고 있는 경우라면 누군가 용기를 불어넣어 주거나, 본인은 눈감고 있고 다른 이가 확 빼 줄 수도 있다. 자살자의 대부분이 실행 전 자살을 암시하는 무엇인가를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살고자 하는 본..

단상/일상 2021.09.21

내 마음 속 가시 1

어느 집이나 아픈 가시 하나는 있다는 말이 있다. 마냥 행복할 것 같은 가정에도 말 못할 아픈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신이 공평해서 그렇다는 생각을 하면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다. 어디 가정사뿐이랴. 내 마음에도 아픈 가시가 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아픈 곳. 드러내기도 힘들고, 잊을 수도 없는, 그냥 안고 가야할 그런 것들. 혹자는 말한다. ‘훌훌 털라고…’ 아니면 종교적 의식인 고해를 방법으로 제시한다. 털 수 있고 고백할 수 있었으면 했겠지. 그러지 못하는 마음 역시 다른 가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손가락에 가시가 박히면 아프다. 처음에는 빼내려고 했겠지만 아파서, 피가 무서워서 등 어떤 이유로 못 빼내면 그냥 살에 묻혀 삭거나 굳는다. 큰 ..

단상/일상 2021.09.21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이 키우는 집에서 곧잘 재미삼아 아이에게 묻는 질문이다. 교육학적으로 보면 어린아이에게는 해선 안 될 질문이다. 자칫하면 편가르기를 가르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조금 철이든 아이는 망설이거나 거짓말할 수도 있다. 아이의 순수한 감정을 그대로 두고 보는 편이 맞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느낌은 그 사회 규범에 분명하게 어긋나지 않는 한 내 마음에서 비롯된 감정이기 때문에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다. 얼마전 아프간에서 난민 탈출 작전이 한창일 때 영국에 사는 어떤 사람이 전세기를 동원해서 개를 포함한 반려동물들을 구출해와서 논란이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람 구하기도 급한데 반려동물 구출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 그를 비난하는 진영의 논리다. 내가 캐나다..

단상/일상 2021.09.20

다람쥐가 가져온 상념

뒤뜰에 사는 다람쥐가 선물을 가져왔다. 야생 호두 스무 개가 문 옆 구석진 곳에 놓여 있다. 문 앞에서 두발을 모으고 서 있는 모습이 이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먹던 땅콩을 짐짓 흘려준 것이 고마워서 일까? 일단 참한 뜻을 받기로 하고 두 알만 남기고 나머지는 집안으로 들였다. 너의 마음은 안다. 그만큼의 호두를 모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올겨울을 새끼와 나기 위해서 그 작은 입이 얼얼하도록 물어 날랐을 것이다. 일단 문 앞에 두고 시간 날때마다 땅을 파고 묻을 작정이었겠지. 내 문 앞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밉지 않다. 그 많은 호두를 하루 밤사이 다 묻을 수는 없을 터 밤사이 스컹크나 라쿤이 뺏아갈 것 같아 매일 두 개씩 내놓기로 한 것이다. 기특하게도 내 뜻을 알아차린 것인지 밤사이 두 알씩..

단상/일상 2021.09.15

사랑도 배워야 하나?

본능과 이성을 생각할 때 사랑하는 마음은 본능일까, 배워야 하는 이성일까? 새끼를 품고 있는 제비를 보면 본능인 것 같기도 하고 제 아이를 죽이는 엄마를 보면 이성인 것 같다. 사랑을 타고 났다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사랑이 결핍된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문제아 되기 쉽고 이웃 사랑을 외쳐도 이웃이 미워질 때가 있으니 아무래도 본능은 아닌 것 같다. 본능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진 학습의 결과일 수 있다. 갓난 아이에게 독사의 ‘쉿’ 하는 소리를 들려주면 깜짝 놀란다고 한다. 오랜 기간 동안 파충류에게 당해온 인간의 공포가 DNA에 새겨진 결과다. 사랑을 배워야 한다면 어떻게 배워야 하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공허한 믿음이고 지식이 곧 지혜가 되는 것은 아니니 모쪼록 내 몸이 사랑을..

단상/일상 2021.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