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81

순수하다는 것

결혼식 때 입는 신부의 웨딩드레스는 흰색이다.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순수한 색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랑은 왜 검정색 양복을 입나? 시커먼 남자의 속마음을 표현한 것인가? 웃자고 한 이야기다. 혼혈인은 예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쁘고 덜 예쁘고는 느낌이기 때문에 그렇다 치고, 혼혈인은 의학적으로 우성유전법칙에 의해서 부모의 좋은 DNA를 받게 된다고 알려져 있다. 숲도 여러 수종이 섞여 자라면 병충해에도 강하고 산불에도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역사적으로도 헬레니즘 문화처럼 서로 다른 문화가 조합되면 더 훌륭한 문명이 탄생된다. 오염된 것과의 섞임은 주의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섞임을 순수하지 않음으로 바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 고유함(uniqueness)은 존중되어져야 하고 ..

시사 2021.11.22

배 멀미

배를 타고 가다 배 멀미가 날 경우 움직이는 파도를 보면 더 심해진다. 이때 육지가 보이면 움직이지 않는 육지 한 곳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으면 멀미가 좀 덜해진다. 세상이 무섭도록 빠르게 변한다. 기술발전 측면에서 컴퓨터 하나만 보더라도 지난 40년 동안 100만배 성능 향상이 이루어졌고,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그 발전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너무나 많은 정보와 접촉하며 살고 있어 이제는 내가 정보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정보에 의해 내가 조종당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현실화되고 있다. 전통적인 남녀 구분 경계가 허물어지는 예에서 보듯이 이제껏 사회를 지탱해온 규범, 가치관이 무너지거나 변화되어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 할지 혼란스럽다. 세상이 아래위로 뒤집어지고 빙..

시사 2021.11.20

리더 3: 파리와 벌

파리와 벌의 지능은 어느 쪽이 높을까? 동물학자는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벌이 더 높을 것 같다.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과학적 실험은 아니니 아무나 관심 있으신 분은 해봐도 된다. 주둥이가 열려 있는 투명한 유리병을 거꾸로 매달고 위에 약한 조명을 단다. 빛의 세기는 유리병 밑 바닥 부분이 밝게 보일 정도면 된다. 그 다음 파리와 벌을 순서대로 거꾸로 매달린 유리병 안쪽에 넣어보자. 결과는? 파리는 탈출할 수도 있지만 벌은 잘 안된다. 파리는 천방지축 날다가 운 좋으면 아래로 향한 유리병 주둥이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다. 벌은 지능이 있어 밝은 쪽이 바깥이라는 사실을 안다. 밝은 쪽, 막혀 있는 병 밑바닥을 통해 나가려고만 하기 때문에 탈출에 실패한다. 나도 그 실험을 실제 해보지는 않았다. 그러..

시사 2021.11.10

리더 2: 가면

신체 조직 중 가장 강한 곳은? 남자의 얼굴, 철면피다. 그것 보다 더 강한 것이 있다. 뭔가? 여자의 얼굴. 철면피를 뚫고 나오는 수염조차 못 뚫으니까. 아제 개그다. 두껍고 얇음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산다. 가면을 쓰고 진행하는 파티에 참석해본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파티 내내 마음이 아주 편했다고 한다. 평소와 같이 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어서 자연스런 행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양심이 보드라운 사람이 부끄러운 일을 하다가 들키면 “얼굴을 들 수 없다”고 한다. 반면에 잘못을 저지르고도 얼굴 들고 다니는 사람보면 “뻔뻔하다” 라고 한다. 얼굴은 남에게 드러내어진 일종의 자신의 ID이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psychopath)와 소시오패스(sociopath)의 차이를 쉽게 설..

시사 2021.11.07

리더 1: 돈 안되는 골프

자신만만하고 고집이 셌던 사나이가 난생 처음 친구를 따라 골프장에 왔다. 여러가지 골프채를 가방에 잔뜩 짊어지고 공을 치는 모습을 보던 그가 호기롭게 나섰다. 나는 골프채 한 개만 가지고 쳐보겠노라고. 대충 중간 길이 아이언 한 개를 뽑아 들고 첫번째 홀, 티 샷부터 시작했다. 원래 운동 신경이 좋았던 그였는지라 타수에는 관계없이 공은 앞으로 맞아 나가고 마침내 그린위에 도달하여 여러 번 시도 끝에 홀컵안에 공을 넣을 수 있었다. 이후 그는 다음 홀로 이동하기를 기다리던 친구를 보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의아해하며 이유를 묻자, 그가 하는 말, “다른 것은 다 알겠는데 이 컵 안에 든 공은 어떻게 치는지 모르겠어.” 드라이버만 잘 친다고 점수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우드나 아이언 어느 것한개만 삐끗해도..

시사 2021.11.05

날선 촛불

마음이 들끓고 열이 정수리로 치솟을 때 촛불을 보면 진정된다. 촛불을 들고 있는 자의 이미지는 폭력과는 거리가 멀다. 촛불의 속성을 생각해 본다. ♥심지가 있다.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의지나 뜻을 의미하는 심지((心志)와 동음이다. 심지에 불을 붙여 자 신을 태우고 어둠을 밝힌다. ♥휘황찬란하지 않다. 어둠과 같이 있어 더 돋보인다. ♥가진 불꽃을 나누어도 자신의 빛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주위가 더 밝아진다. ♥조용하고 부드러우며 끊임이 없다. ♥뜨거운 불을 안고 있지만 먼저 남을 데이게 하지 않는다. ♥보살피는 마음을 일으킨다. 촛불을 드는 순간 모두 가슴 가까이 대고 손으로 바람을 막는다. ♥제할 일을 다하면 그냥 없어진다. “날선’이란 형용사를 촛불 앞에 붙이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군중 집회를 할..

시사 2021.10.28

장님이 코끼리를 아는 방법

‘장님 코끼리 만지기’란 말이 있다. 사물의 어느 한 부분을 아는 것으로 전체를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꾸짖는 말이다. 어차피 우리는 사물의 전체를 완전히 알기는 어렵다. 사과를 예로 들어봐도, 사과의 모양과 맛은 대충 알아도 그것을 이루고 있는 성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사과라는 과일이 속해 있는 식물의 분류표, 성장 메커니즘 등등 따지고 들면 우리가 사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사과 전체 중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원의 내면과 같아서 알고 있는 부분이 커지면 모르는 바깥 부분은 더 커진다고… 맞는 말이다. 우리는 어차피 무한대의 우주만물에 대해서 눈뜬 장님이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으로 코끼리 전체의 형상을 파악할 수 있는 방..

시사 2021.10.27

영웅 만들기

난세에 영웅이 난다. 영웅이 난세를 기다렸다가 홀연히 나타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영화에서, 미행정부가 4형제 모두가 전장에 참여한 라이언가의 마지막 생존자 라이언 일병을 구해내라는 지시를 한 목적이 자녀 네 명을 모두 저 세상으로 떠나보낼 수도 있는 부모의 마음을 헤아린 것으로만 볼 수 있을까? 시청자들마다 영화에 대한 이해는 다르겠지만 미국이 유독 잘하는 것 중 하나인 ‘영웅 만들기’가 그 영화의 바탕에 한 자락 깔려 있음이 나는 느껴진다. 이러한 영웅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아니면 태어나서 만들어지는가? 이순신 장군은 어릴 때부터 나라를 걱정하고 문과 무를 꾸준히 연마하며 때를 기다렸다고 한다.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총명한 머리와 바른 심성, 건강한 육체를 타고 났다...

시사 2021.10.23

말로 엿본다

세상에서 말이 사라진다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할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시키는 수단 중 가장 확실하고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이 말이기 때문이다. “말은 마음의 초상(肖像)이다” 16세기 폴란드의 소설가 미콜라이 레이가 한 말이다. 사람마다 구사하는 말이 다르고, 변하기도 하고, 유행도 탄다. 개인의 말하는 습관과 그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말을 보면 그 내면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범위를 좁혀 우리 주변에서 관찰되는 형태 중 염려스러운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강해지고 거칠어진다. ‘조심’이 ‘쪼심’로 발음되고, ‘부순다’면 충분한데 굳이 ‘까부순다’를 써야 직성이 풀린다. 부대끼며 사는 이들의 격해진 감정을 엿보는 것 같다. 단축형 문장의 유행. ‘방가’가 대표적이다. 통신 용어에 ..

시사 2021.10.22

내로남불과 진정성

뉴욕 타임지에 ‘Naeronambul(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가 실렸다고 한다. 한국 여당이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원인으로 소개한 것이라고 하는데, 영어식 ‘double standard’ 정도로 번역하지 않고 원어 그대로 소개한 것을 보면 한국 정치 수준을 콕 집어 비웃는 듯한 의도가 느껴져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보통의 사람은 ‘내로남불’한다. 예수님도, 인간들이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만 본다고 나무라셨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것, 자신은 합리화하고 남에게는 날선 비판을 아끼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본질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가능해진다. 사안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의식적으로 본질을 오도함으로써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해..

시사 2021.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