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말로 엿본다

Chris Jeon 2021. 10. 22. 02:30

 

 세상에서 말이 사라진다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할 것 같다.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시키는 수단 중 가장 확실하고 빈번하게 사용되는 것이 말이기 때문이다.

 

 “말은 마음의 초상(肖像)이다” 16세기 폴란드의 소설가 미콜라이 레이가 한 말이다. 사람마다 구사하는 말이 다르고, 변하기도 하고, 유행도 탄다. 개인의 말하는 습관과 그 사회에서 유행하고 있는 말을 보면 그 내면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범위를 좁혀 우리 주변에서 관찰되는 형태 중 염려스러운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강해지고 거칠어진다. ‘조심쪼심로 발음되고, ‘부순다면 충분한데 굳이 까부순다를 써야 직성이 풀린다. 부대끼며 사는 이들의 격해진 감정을 엿보는 것 같다.

 

 단축형 문장의 유행. ‘방가가 대표적이다. 통신 용어에 필요한 효율성에 따른 유행이라고 하지만, 모든 면에서 효율만을 강조하는 현대 문명의 폐해와 자기들끼리 만 통하면 된다는 끼리끼리 문화의 문제점이 걱정된다.

 

 되풀이되는 말. 본인이 강조하고 싶은 단어는 습관적으로 몇차례씩 되풀이하는 습관을 심지어 저명 강사의 강의에서도 자주도 본다. 불확실성이 높은 사회에서 못미더워 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사이음을 많이 사용한다. “~”, ~”, 영어로 말할 때 “you know” 같은, 문장 전개와는 상관없는 단어나 문구를 습관적으로 단어 사이에 끼워 넣는 것이다. 여백과 pause을 참지 못하는 현대인의 조급한 심성을 보는 것 같다.

 

서론이 길고 point는 제일 뒤에 나온다. 에세이 작문의 기본은 주제-사례-주제 강조 순이다. 아주 드물게 point가 제일 뒤에 나오는 경우도 있는 데 이것은 상대에게 아주 어려운 부탁을 할 경우 정도에 인정된다. 이해하기 보다는 이해시키고 싶은 마음, 상대의 눈치를 지나치게 보는 마음, 남에 대한 배려 부족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묻어나는 듯하다.

 

 말끝을 같아요로 마친다. 실제로 같을 수도 있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종결부를 습관적으로 같아요로 마치는 경우는 자신감이 부족하거나 책임지지 않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익명성을 선호하는 심리로 말 할 수 있다.

 

 말에는 그 사회의 문화가 녹아 있다. 지구상에서 동식물이 멸종하는 것 이상으로 수많은 언어들이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어느 언어학자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우리말을 격조 있게 만들고 유지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면에 깔린 사회의 문제 현상을 파악하고 고민하는 것도 중요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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