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내로남불과 진정성

Chris Jeon 2021. 9. 27. 10:26

 뉴욕 타임지에 ‘Naeronambul(내로남불)’이라는 신조어가 실렸다고 한다. 한국 여당이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원인으로 소개한 것이라고 하는데, 영어식 ‘double standard’ 정도로 번역하지 않고 원어 그대로 소개한 것을 보면 한국 정치 수준을 콕 집어 비웃는 듯한 의도가 느껴져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보통의 사람은 내로남불한다. 예수님도, 인간들이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있는 티만 본다고 나무라셨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엄격한 것, 자신은 합리화하고 남에게는 날선 비판을 아끼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본질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가능해진다. 사안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하거나 의식적으로 본질을 오도함으로써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해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란 제목으로 알려진 영국 작가 로렌스의 소설 내용이, 불륜을 호기심화 하고 긍정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차가운 이성이 지배하는 비인간적인 문명 속에서 순수한 인간다움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집필된 것임을 안다면, 채틀리 부인의 행동을 흉내 낸 나는 로맨스, 남은 불륜으로 매도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무엇인가를 통해서 인식한다. 언어, , , 신경계통, 나 자신의 해석 과정 등. 이러한 중간 과정을 거치는 동안 무수한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본질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 출발점은 간단하다. 바로 진정성이다. 내가 어떤 목적으로 그 존재를 보느냐에 따라 본질을 볼 수도 있고, 자신이 원하는 내용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태초의 말씀이 유구한 세월에 걸쳐서 전해져 온 성경의 가르침을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묵상하느냐 아니면 돈벌이 목적으로 읽느냐에 따라 성인이 되기도 하고 사이비 교주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로남불이 오직 대한민국의 문제만은 아닐 것으로 본다. 만약 세상의 리더들이 내로남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면 이들이 결정하는 국가의 백년대계 역시 그 진정성이 의심스러워지는 문제가 발생된다.

 

 기후변화, 팬데믹 등 인류의 재앙이 바로 눈앞에서 어른거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향을 제시해야할 리더들의 처방은 한결 같지가 않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도 내편 네편으로 갈려 같은 문제에 대해 정반대의 주장을 하며 다툰다. 문제의 본질은 분명 하나일 텐데 처방은 정반대 방향이니, 이들이 과연 인류를 위기에서 구한다는 진정성을 갖고 문제를 대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느낌이 든다.

 

 우리에게 닥쳐올 재앙, 특히 기후 변화는 이미 되돌리기 어렵다는 비관론에 점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는 듯하다. 더 늦기 전에 세계를 이끌 지도자들이 눈앞의 이익보다 인류를 재앙으로부터 구한다는 진정성을 갖고 문제를 직시해 줄 것을 기도한다. 국민들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하지 말고, 올바른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동참해야 한다. 진정성을 가진 훌륭한 리더는 하늘이 낼지라도 그를 국가의 리더로 선택하는 몫은 국민의 것이다.

 

                                                        2021년 어느날

기후 변화 대처 방법에 대해 각국 정상들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기사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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