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리더 3: 파리와 벌

Chris Jeon 2021. 11. 10. 21:53

 

 

파리와 벌의 지능은 어느 쪽이 높을까? 동물학자는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벌이 더 높을 것 같다.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과학적 실험은 아니니 아무나 관심 있으신 분은 해봐도 된다. 주둥이가 열려 있는 투명한 유리병을 거꾸로 매달고 위에 약한 조명을 단다. 빛의 세기는 유리병 밑 바닥 부분이 밝게 보일 정도면 된다.

 

그 다음 파리와 벌을 순서대로 거꾸로 매달린 유리병 안쪽에 넣어보자. 결과는?

 

파리는 탈출할 수도 있지만 벌은 잘 안된다. 파리는 천방지축 날다가 운 좋으면 아래로 향한 유리병 주둥이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다. 벌은 지능이 있어 밝은 쪽이 바깥이라는 사실을 안다. 밝은 쪽, 막혀 있는 병 밑바닥을 통해 나가려고만 하기 때문에 탈출에 실패한다.

 

나도 그 실험을 실제 해보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의미가 시사하는 바는 이해된다. 어중간한 지식과 지능은 오히려 나의 폭 넓은 사고를 제한하고 경직되게 만든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생각해 보게 하는 실험이다.

 

리더로 화제를 옮겨보자. 학력과 경력이 평범한 사람의 눈에는 참으로 화려하게 보인다. 토론회에 나서서 토하는 사자후에 논박할 여지가 별로 없다. 지금의 대선 후보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한국을 이끌었던 리더들이 누가 봐도 멍청해 보이던 인물이 있었던가?

 

똑똑함을 기준으로 리더 자격을 판단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벌이 유리병을 탈출하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먼저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해보고 안되면 방법을 바꾸어야 한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겸손함과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평소 무시하던 파리의 행동도 보고 배워야 한다. 경우에 따라 밝은 쪽이 바깥이고 이것이 진리라는 자신의 신념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집과 소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리더, 수십년 전 읽고 감명받았던 책 내용을 금과옥조로 우기는 리더, 자신의 생각과 다르면 버럭 화를 내는 리더, 내 생각에 맞는 조언에만 귀가 솔깃해지고 그로 인해서 자신의 고집에 더욱 강한 믿음을 갖는 리더. 이런 리더는 유리병 속에서 말라 죽는다.

 

지식을 갖고 있는지 여부는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불행히도 지혜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오랜 시간 대상을 관찰해야 어렴풋이 느껴지는 정도다. 이것이 유권자 한계다. 그렇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똑똑함이 곧 훌륭한 리더의 판단 기준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것 하나만 알아도 절반은 이룬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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