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164

일탈(逸脫)

누구나 가끔씩은 일탈을 꿈꾼다. 정해진 삶의 틀에서 벗어나 보는 것. 탈선과 같은 의미는 배제하고 한번 변화를 가져 보는 것. 그러나 이것저것 생각할 것이 많다. 시간, 돈, 준비물, 같이 갈 동무, 주위의 시선, 이 나이에,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불편함… 없는 용기 내라고 할 수는 없고, 그래서 그저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 해본다. 탈 수 있는 차 있고, 몇 백 km 달릴 휘발유 살 돈 되고, 시간도 있네. 구글에 들어가서 다다다다… 내가 사는 곳에서 300km 이내 가장 가고 싶은 곳. 한눈에 팍 들어오는 사진. 얼추 280km 되는 곳, 바다 같은 호수의 만(Bay), 절벽, 해식 동굴, 겨울철에는 인적 드뭄. 딱이다. 따뜻한 옷 입고, 도시락, 약간의 간식, 트레일 걸을 때 필요 장비 답삭..

단상/일상 2023.02.17

느리게 산다는 것

♥ 블벗님과 생각 나누기로 약속한 주제인데, 쭉 연결되는 글이 안 쓰여서 그냥 떠오르는 생각을 나열해 봅니다. 무료해서 셀폰을 들여다볼 때가 있다. 누가 카톡 보내온 것 없나? 수신된 내용이 없으면 서운하다. 한창 바쁘게 일할 때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지쳐서 도대체 이놈의 전화 한시간 동안 몇 번이나 받고 거는지 헤아려 본 적이 있었다. 20번 이상, 얼추 2~3분마다 한번 꼴. 말하는 시간 감안하면 거의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던 셈이다. 물론 나는 그 당시 전화 상담원은 아니었다. ‘느림의 미학’을 설명하는 글에서, ‘느림’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 ‘느림’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느림에 대한 변(辯)】 한국에서 5년이면 충분히 완공할 것 같은 지..

단상/일상 2023.02.04

겨울철 A/S

걸작품인 것은 맞지만 24시간 움직이는 물건이니 인간도 A/S가 필요하다. 제조처가 신비로 가려진 곳이어서 직접 찾아가기는 힘들고 대신 세상에 의사란 분이 계셔서 몸은 돈만 주면 고칠 수 있지만 정신은 좀 뭣해서 대부분 내가 직접 수리한다. 며칠사이 눈이 많이 왔다. 삐까뻔쩍과는 거리가 먼 시골스러운 나라지만 조용하고 공기가 깨끗해서 나 같은 촌놈이 살기 괜찮은 곳이다. 집에서 30KM 거리에 내가 좋아하는 Trail이 있다. 왕복 10KM 거리의 계곡을 끼고 가는 산길. 내 옆 힘쎈분과 둘이서만 가면 혹시 서열 다툼 할 수도 있으니 중재자 역할 할 지인 부부를 같이 가자고 꼬드김. 3시간 정도 걷는 동안 한국인 그룹 4명 만난 것이 전부다. 예상대로 한적하다. 다행인 것은 누가 먼저 걸어서 생긴 것인지..

단상/일상 2023.02.01

미치다

서양 사람들에게서 배울 점 중 하나가 표정 연출이 참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한참 심각한 이야기 하다가 사진 찍는다 싶으면 찰나에 입을 옆으로 쫙 찢고 활짝 웃는 모습이 나온다. 반면에 한국 사람들은 잘 안된다. 그래서 사진 찍을 때 쓰는 보조적 방법 중 하나가 ‘치즈’라고 외치는 것. “치즈”하면 자연스럽게 입꼬리가 올라가니까. 그런데 더 걸작을 봤다. ‘미친년’이다. “미친년” 하면 안 웃고는 못 배긴다. 문득 미쳤다고 하는 것이 과연 나쁜 것이기만 할까? 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 미치고 싶다고도 하니까. 그럼 좋은 미침을 가려내기 위해 부정적 미침부터 잘라내 보자. 일단 자발적 미침과 비자발적 미침부터 구분한다. 비자발적 미침은 문자 그대로 질병이나 사고와 같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내가 ..

단상/일상 2023.01.29

A/S 단상

A/S 약자를 보면 먼저 After Service가 떠오른다. 물건을 팔고 난 후의 서비스(after sales service) 혹은 고객 불만족을 처리해 주는 것(customer service).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 와서 가장 불만족스러웠던 것이 바로 A/S다. 이민 초기 겪은 사례 한가지. 비즈니스 할 때 꼭 필요한 물건이 제 시간에 배달 안돼서 회사로 전화 했다. 발신음 들린 후 기계로 연결되고 녹음된 목소리가 나오면서 안내가 시작된다. 가능한 인터넷으로 연락하라고 하면서 웹사이트 주소를 알려주는데 복잡한 알파벳 첫 글자 밖에 기억 안난다… 그 다음 원하는 서비스별 눌러야 할 번호가 여러 개 안내되고… 그중 하나를 누르니 통화 중 신호 뚜 뚜 뚜… 5분 동안 계속 뚜 뚜 뚜 하다가 연결..

단상/일상 2023.01.26

약속글 5: 없어지지 않는 것

♥ 어느 블벗님과 같이 생각 나누기로 한 주제의 글 올립니다. ♥ ‘한 남자가 무거운 물건을 지고 사다리 타고 지붕에 오른다. 무릎이 시큰거릴 정도로 힘을 쓴다. 그러다가 발을 헛디뎌 장독위에 떨어진다. 장독이 깨진다. 장독은 외부로부터 힘을 받아 깨진 것이다. 그 힘은 남자가 사다리 오를 때 쓴 힘이다.’ 중학교 때 물리 선생님이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설명하면서 하신 말씀이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는 것을 보니 참 적절한 예를 드신 것 같다. 내가 힘을 다하여 베풀었지만 그 상대가 내게 소홀히 하면 섭섭하다. 헌신하며 사신 분이 허망하게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렇게 착하게만 살 필요 있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힘을 써 베풀었다면 내 힘은 사라지지 않고 어딘가에 있어야 한..

단상/일상 2023.01.20

어느날 일기

내일 토요일 산행 클럽 모임 있는 날. 작년 11월부터 거의 참석 못했는데 좀 미안해서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기상 예보 영하 13도~ 영하 4도로 춥다. 출발지까지 집에서 70Km 인데, 이제 눈길 운전은 좀 부담스럽다. 마누라 의중을 떠 보니 나랑 비슷함을 확인. 대안을 찾자. 집에서 6km 거리에 있는 트레일, 아기자기한 경관에 눈이 쌓여 있어도 걷기에 부담 없는 코스. 지인에게 번개 미팅 제안. 그들 부부도 같은 산행 클럽 멤버인데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의기 투합. 산행은 땡땡이치고, 내일 아침에 내가 제안한 그 트레일 출발지에서 만나서 같이 걷기로 약속. 요즘 가게 접고 조금 의기소침해 있는 대학 후배에게도 전화해서 join 약속 받음. 팀으로 딱 걷기 좋은 3쌍 6명 확..

단상/일상 2023.01.19

장례식에서는 조금만 울고 싶다

서양에서는 좀 덜한데 한국 장례식에서는 대부분 많이 운다. 나는 조금만 울고 싶다. 이젠 완전한 이별이라고 생각하니 슬프고 그동안 잘못한 것이 더 많으면 회한이 밀려와서 울음이 증폭된다. “나는 이제 어찌살꼬?” 내 자신의 처지가 암담한 경우에도 울음 소리가 커질 것 같다. 좋은 곳에 가셨고 앞으로 앞날 수 있다고 믿어도 다시 만날 때까지의 헤어짐이 서운해서 눈물이 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는 조용히 울 것 같다. 다시 만날 것을 믿고 싶어도 속으로 긴가민가하면 그 울음소리가 더 커질 수도 있겠다. 살아 있는 동안 너무 지긋지긋 했는데 이제 떠났으니 속이 시원한 경우에는 눈물이 안나거나 나더라도 조금 나겠지. 분명한 것은, 종교적 믿음을 가지고, 살아 있을 동안에 언젠가 떠난다는 것을 알고 할 바를 다하..

단상/일상 2023.01.14

약속글 3: 별나다

유별난 사람이란 소리를 가끔씩 듣기도 하고, 사실 내가 좀 별나 보이기도 한다. ‘별나다’의 뜻은, 통상 성격이 보통 사람보다 다르다 혹은 평균에서 멀어져 있다. 그럼 내 성격이 왜 유별난 것처럼 보여지거나 생각되는 것인지 살펴보자. 속에 생각을 오래 담아두지 못한다. 바로 내뱉거나 행동으로 옮긴다. 눈치없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결국 내 생각은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한가지 사안에 생각이 꽂히면 그대로 두고 다른 것으로 잘 넘어가지 못한다. ☞두루뭉술이 잘 안되는 점은 있지만 집중이란 면에서는 장점. 원칙에 매인다. 융통성이 부족하다. ☞기계적인 느낌이 들고 때론 인간미가 부족하다. 그래도 큰 욕은 안 먹지. 자로 잰 듯 반듯해야 기분이 좋다...

단상/일상 2023.01.10

새해 혼잣말

최근 우연찮게 ‘떡’ 이란 단어를 몇 번 쓴 것 같다. 이곳에서는 흔한 음식이 아닌데. 송구영신(送舊迎新) 나쁜 말은 분명 아닌데, 약간 고리타분한 느낌. ‘Happy New Year’가 좀 세련돼 보일까? 서울에 사시는 나이든 누님의 이야기.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 아파트로 이사 와서 이사떡 돌렸더니, 이웃집 젊은 아주머니 왈, “요즘 이런 것 안 하는데…” 하면서 딱하다는 듯 쳐다보더라나. 그래도 내 마음 속에는 아직 떡 기운이 남아있다. 뿌리는 한반도에 닿아 있으니까. 솔직히 누구나 좀 외롭다. 나 말고는 다 남이니… 아무리 좋은 남이라도 나만 할까. 그렇지만 이런저런 이유가 있어 ‘혼자면 외롭고 함께면 괴롭다’ 명언이 탄생한다. 할 수없이 혼자서 쑥덕쑥덕한다. 마음속에 이 놈 세워 놓고 훈계, 저 ..

단상/일상 2022.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