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A/S 단상

Chris Jeon 2023. 1. 26. 11:03

웃는 토끼가 좋다

 

 

A/S 약자를 보면 먼저 After Service가 떠오른다. 물건을 팔고 난 후의 서비스(after sales service) 혹은 고객 불만족을 처리해 주는 것(customer service).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나라에 와서 가장 불만족스러웠던 것이 바로 A/S다. 이민 초기 겪은 사례 한가지.

 

비즈니스 할 때 꼭 필요한 물건이 제 시간에 배달 안돼서 회사로 전화 했다. 발신음 들린 후 기계로 연결되고 녹음된 목소리가 나오면서 안내가 시작된다. 가능한 인터넷으로 연락하라고 하면서 웹사이트 주소를 알려주는데 복잡한 알파벳 첫 글자 밖에 기억 안난다… 그 다음 원하는 서비스별 눌러야 할 번호가 여러 개 안내되고… 그중 하나를 누르니 통화 중 신호 뚜 뚜 뚜… 5분 동안 계속 뚜 뚜 뚜 하다가 연결되나 싶더니… 다시 인터넷을 이용하거나 메시지 남기면 연락 준다는 안내 방송 나오고… 다시 뚜 뚜 뚜. 참고로 내가 그동안 여러 번 메세지 남겨 보았지만 회신 온 사례는 아주 드물다.

 

이젠 안 속는다. 은근과 끈기를 다짐하며 스피커 모드로 전환해 놓고 다른 일 하면서 기다린다. 30분 지나니 오기가 생긴다. 1시간 지나니 분노가 치솟는다. 거짓말 같지만 2시간 훌쩍 넘게 버텨본 적이 있다. 끊으면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2시간 넘게 버틴 끝에 드디어 누가 나왔다. 아마도 교환원? 이야기 듣더니 담당 부서로 돌려준단다. 좋아서 기다리니 전화 연결 되는 순간 톡 끊어져 버렸다. 에이~ **, 욕설이 나온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얼굴이 시뻘겋게 돼서 찾아가서 따지겠다고 차 키 갖고 나오니 옆에 있던 사람이 말린다. 이곳에서 흔히 겪는 일이라고. 다시 생각해 보니 얼굴 맞대고 잘 안되는 영어로 고래고래 고함지르다가 제 풀에 험한 꼴 당할 것 같아서 그냥 주저 앉는다. 분노가 슬픔으로 변한다.

 

이민 온 사람들이 많이 공감하는 일이라서 그 원인을 생각해 본다. 경쟁이 심하지 않은 반 사회주의 국가? 근본적으로 고객 서비스의 수준이 낮아서? 그것을 참고, 아니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사는 착한 국민 심성? …

어쨌든 내가 주도적으로 풀 수 없는 일종의 사회 문화이며 시스템 문제다. 소수 민족의 일원으로서 탓하고 원망해 봤자 내 분노만 커지고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설 쇠고 이튿날 지인과 이야기 나누다가 그 분의 새해 모토를 들었다. 지자(ZIZA), Zero Irritation Zero Anger. 짜증내지 말고 화내지 말고. 참 좋은 모토 같아서 나도 영감을 얻는다.

 

2023 새해 나의 모토는 ‘A/S’다. Always Smile! 가능한 웃으며 살고 싶다.

 

(덧 붙이는 글)

밤사이 눈이 많이 왔다. 출근하시는 분들은 힘드시겠지만, 창밖으로 보는 경치는 아름답다. 난 복 받은 사람이다. 웃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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