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어느날 일기

Chris Jeon 2023. 1. 19. 09:44

내가 좋아하는 나무다리. 가을철 다리 끝부분에 있는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좋다

 

 

<2023년 1월 어느 금요일 저녁>

내일 토요일 산행 클럽 모임 있는 날. 작년 11월부터 거의 참석 못했는데 좀 미안해서 참석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기상 예보 영하 13도~ 영하 4도로 춥다. 출발지까지 집에서 70Km 인데, 이제 눈길 운전은 좀 부담스럽다. 마누라 의중을 떠 보니 나랑 비슷함을 확인. 대안을 찾자.

 

집에서 6km 거리에 있는 트레일, 아기자기한 경관에 눈이 쌓여 있어도 걷기에 부담 없는 코스. 지인에게 번개 미팅 제안. 그들 부부도 같은 산행 클럽 멤버인데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다고 해서 의기 투합. 산행은 땡땡이치고, 내일 아침에 내가 제안한 그 트레일 출발지에서 만나서 같이 걷기로 약속. 요즘 가게 접고 조금 의기소침해 있는 대학 후배에게도 전화해서 join 약속 받음. 팀으로 딱 걷기 좋은 3쌍 6명 확보.

 

 

지난해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 조금 더 젊어 보이는 것 같아서 좋다.

 

<다음날 토요일>

약속 시간보다 모두 조금 일찍 집결지 도착. 날씨 쾌청한데 추워서 사람들이 없어 13km 정도 거리의 트레일을 6명이 독차지. 뽀득뽀득 눈길 걷는 발자국 소리 참 듣기 좋다.  우리 부부 빼고 모두 초행길인데 코스  이쁘다고 좋아해서 가슴 뿌듯함.

 

워킹 끝나고 그냥 헤어지기 섭섭해서 집 근처 한국 식당이 모여 있는 food court에서 만나기로 함. 모여서 각자 먹고 싶은 것 시키고 각자 Pay하는데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아주 삼빡하다. 나는 그래도 백의 민족 답게 뽀얀 설렁탕 주문.

 

추운 날씨에 걷고 와서 뜨끈한 설렁탕 먹으니 참 맛있다. 규정상 소주 못 마시는 것이 아쉬웠지만.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가 해산. 대학 후배 부부는 내 차로 같이 갔기 때문에 본인 차 세워 둔 우리집으로 다시 왔다가 그냥 헤어지기 섭섭해서 들어가서 위스키 한잔만 하고 가라고 꼬셨는데 못이긴 체 따라 들어옴. 내가 그 친구 부부 둘 다 위스키 좋아 하는 것 안다. 위스키 스트레이트로 한잔씩 하고 1시간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고 헤어짐.

 

시계 보니 오후 5시. 밖은 어둑어둑해 졌다. 아침 9시에 집 나서서 거의 하루 종일 바쁘게 지냈네. 지금 자리에 누워 쉬고 싶지만 너무 이르다. 잘못하면 저녁 11시에 잠 깨서 혼자 분노할 수도 있으니 술도 깰 겸 지하실로 내려가 실내 자전거 타고 이후 이런저런 동작들 섞어 만든 나만의 독창적 몸풀기 겸 근력 강화 운동 시작. 특히 하체 운동에 집중. 속된말로 정력 좋아지자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고 노화는 다리로부터 온다고 하니 나중에 민폐 덜 끼치려고 열심히 탄다.

 

꾸준히 한다는 것이 참 무섭다. 자전거 기어를 거의 MAXIMUM으로 올려도 그런대로 탈만하다. 처음에는 저속기어도 힘들었는데 뿌듯한 느낌. 운동하면서 유튜브가 제공한 맞춤 선곡 프로그램을 선택해서 내가 좋아 하는 가요를 메들리로 듣는다. 처음에는 빠르고 시끄럽게 들렸던 노래도 자꾸 들으니 그런대로 괜찮다. 뭐든 자꾸 하다 보면 친숙해지고 결국 좋아하게 되나 보다.

 

땀이 꼽꼽하게 날 정도에서 그만두고 샤워 후 책상에 앉아 컴퓨터로 글 쓴다. 오늘은 조금 방법을 바꿔봤다. 누군가 내 글을 보고 회사 결재서류 비슷하다고 했다. 겉으로는 “제가 회사 생활 오래해서 그런가 봅니다” 했지만 속으로는, “비평을 하더라도 좀 돌려서 하지 남은 그래도 감정 잡고 쓴 글인데 결재 서류라니”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밴댕이 속이다. 그냥 하루 일을 쭉 나열해서 써 보니, 있었던 일 복기만 하면 되는 것 같아 좀 쉽게 느껴진다.

 

바로 포스팅할까 생각하다가 숙성방에 넣는다. 몇 번씩 살펴보고 올린 글도 나중에 보면 맞춤법도 틀리고 문맥도 꼬인 것을 발견하기 부지기수. 아무리 일기라도 남이 보니 약간의 화장은 하는 것이 에티켓이지. 시계를 보니 저녁 11시가 가까워 온다. 내일 6시에 일어나는 것을 목표로 잠자리에 든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날 것 같지만.

 

이것이 백수의 보오~람찬 하루!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과연 보람찬 내용이 맞나 싶다.

요즘 당최 “이것이 맞소.” 할 자신이 없어진다.  

'단상 >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A/S 단상  (23) 2023.01.26
약속글 5: 없어지지 않는 것  (25) 2023.01.20
장례식에서는 조금만 울고 싶다  (24) 2023.01.14
약속글 3: 별나다  (32) 2023.01.10
새해 혼잣말  (49) 2022.1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