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마지막날 부를 이

Chris Jeon 2022. 4. 20. 22:51

 

 

 

Mother’s Day가 다가온다. 한국에서는 1973년 어버이날로 바꿨다. 아버지들의 입김이 작용한 것 같다. 좀 그렇다. 두 번하기 번거로우니 한꺼번에 묶었다는 느낌도 든다. 아버지는 원래 묵묵히 헌신하는 멋이 있는데… 차라리 다른 나라처럼 ‘어머니 날’ ‘아버지 날’을 따로 두어 두 번 기리는 것이 나았을 것도 같다.

 

2차 대전 때 일본 제로 전투기 조종사로 수많은 전투에서도 살아남은 파일럿이 쓴 회고록 중에, 최후를 맞이했던 동료 파일럿이 죽음 직전 질렀던 말이 한결같았다는 내용이 있다. “엄마”였다는 것이다. “천황폐하 만세”는 물론 아니고, 그들이 믿던 신을 찾았던 것도 아니었다.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배우는 단어도 “엄마”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태어나서 눈을 맞추고 안기고, 그분의 젖을 먹으며 자랐기에 엄마는 나의 보금자리요 의지할 수 있는 자라는 생각이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세상이 변하여 아기가 태어나서 제일 먼저 눈 맞추고 안기는 사람은 간호원이다. 조금 일찍 태어난 아기는 엄마 품속이 아닌 보조 장치가 주렁주렁 달린 인큐베이터 속에서 자란다. 엄마 젖도 아닌 소젖을 먹고 자라는 아기가 대부분이다.

 

다른 이의 자궁속에서 아기의 모습이 되기도 하고, 태어나서 기계속에서 소젖을 먹고, 어려서는 놀이교실 선생님, 조금 커서는 과외 선생님 지도하에 성숙된 아이들이 자라나서 대를 이어가게 되면, 유전자에 각인된 엄마에게 끌리는 본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궁금해진다.

 

내가 가장 절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찾는 이가 누가될까? 아직 죽음 직전까지 가보지 않았으니 확실치 않지만 누군가가 있어야할 것 같다. 만약 그때 부를 만한 존재가 아직 없다면 나는 영원한 보금자리도, 의지할 곳도 없이 사는 천애 고아인 셈이다.

 

세상 떠나기 전 간절히 불러서 나를 받아 달라고 외칠 수 있는 존재가 없으면 너무 슬프고 두려울 것 같다. 지금 당장 내가 죽을 지경에 이른다면 내가 부를 이는 누굴까? 신? 엄마? 아부지? 아내? 어머니날이 내게 준 궁금함이자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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