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사서하는 고생

Chris Jeon 2022. 4. 3. 22:35

달력이 필요하다. “오늘이 며칠이지?” 아침 마다 자주 듣는 소리다. 냉큼 답을 못하고 벽에 붙여 둔 달력을 봐야 오늘 내가 어디쯤 서 있는지 가늠이 된다.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고, 지난 한주간 생긴 일들이 뒤죽박죽 기억 장치속에 우겨 넣어져 있다. 대부분 벌써 색깔이 바랬다.

 

무인도에서 사는 사람이 날짜 기억하기 위해 바위에 금 긋는 장면을 봤다. 깊은 동굴속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변화가 필요하다. 자극이라 해도 좋다. 뭔가 차이가 나야 다름을 알 수 있을 것 아닌가.

 

지인이 정보를 줬다. 좋은 취지를 설명하며 내가 사는 곳에서 연방 수도까지 걸어가는 행사를 한다. 하루 평균 35km를 걷어 11박 12일 만에 400km 주파.

 

취지는 그냥 좋은 것 같다는 정도의 느낌. 대신에 내가 할 수 있을까? 지금 안해보면 죽을 때까지 못할 일이네 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사실 한창 때 비슷한 거리를 걸어본 경험은 있다. 얼추 40년 전 일이다. 아직도 나이를 인정 못하는 오기가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것 보다도 뭔가 확 내 몸을 던져서 할 수 있는 그런 일이 그립다.

 

신청서에 사인하고 등록을 마쳤다. 부부 동반으로. 오래 같이 살다 보니 닮지 않아야 할 성미까지도 닮은 모양이다.

 

한다고 했으니 잘 해야 할 텐데. 민폐 끼칠 수는 없지. 준비 운동 시작이다. 하루 30km 이상씩 열흘 걸어 보기로 한다. 이상이 생기는지 여부, 어느 부위에 생기는지 확인해서 대책을 세울 작정이다.

 

3일 연속 35km 걸으니 아프다. 발바닥 물집 조금, 그런데 발목, 발등 부위에 접촉성 피부염이 흉측하게 돋아난다.

 

 

걷기전
걷고 난 후

 

 

연속 10일은 아니지만 비 온 날, 일요일 빼고 11번 걸어보니 죽을 정도는 아니다. 문제는 피로 회복 속도인데 늙은 근육을 갑자기 회춘시킬 수는 없고, 시작일까지 잘 쉬고 고기 많이 먹어야겠다.

 

사실 전투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내 능력껏 최선을 다해 즐겁게 걷고 행사 마치면 소기의 목적은 달성된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더불어 내 힘이 요만치 구나 라고 알 수 있으면 그것 또한 소중한 경험이다. 특히 나처럼 주제 모르고 나대는 사람에게는 좋은 보약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