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하루 평균 35km씩 400km 걷기

Chris Jeon 2022. 5. 9. 07:50

 

 

 

#1

 

새벽 5시경 눈을 뜬다. 발가락을 꼼지락거리고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면서 오늘도 35km 아스팔트길을 걸을 수 있을까 걱정한다. 어제도 걸었으니 오늘도 어찌 되겠지.

 

사실 이런 걱정할 필요가 없는 아침이다. 어제부로 ‘토론토 한인회 주관 국토대장정 행사’는 끝났다. 그런데도 몸은 아직 어제를 기억하나 보다.

 

같이 걸은 친구들과 길 풍경이 그립다. 발이 근질거린다. 나의 국토 대장정은 계속 진행형이다.

 

#2

 

토론토에서 수도 오타와까지 걷는다. 구글로 잰 거리는 403km. 이리저리 추가로 걷는 거리까지 합하면 조금 더 되겠지. 주관하는 한인회에서 행사의 목적을 나타내는 몇 가지 좋은 슬로건을 제시했다. 이를 본 아내가 나를 부추긴다. “한번 해보자. 우리 잘 걷잖아요. 지금 안 하면 평생 못해보고 죽어요.”

 

사실 별로 내키지 않는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얼추 비슷한 거리를 걸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얼마나 지루하고 힘든 일이지 안다. 하지만 아내의 뜻이 좀 단호한 것 같다. 결사 반대하면 혼자서라도 갈 태세다. 후환이 두렵고, 또 지금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궁금증도 인다.

 

에라, 모르겠다. 가다가 안되면 차 타고 가지 머~ 라는 마음으로 신청서에 사인하고 말았다.  

 

 

 

 

 

 

 

#3

 

국도 갓길. 잔 자갈이 깔렸거나 시멘트 길이다. 발바닥이 따끔거리고 마주 달려오는 트럭이 만든 바람에 모자가 훌렁 벗겨진다. 문득 “내가 왜 이러지?” 라는 의문이 들지만 저 멀리 한점으로 사라지는 빨 빠른 신령님(?)들 따라 가느라고 무념무상으로 종종 걸음 친다. 걷고, 먹고, 자고… 단순한 일상의 반복이 인간의 생각도 단순하게 만드나 보다.

 

출발지를 떠나 10km 까지는 씽씽 잘 내달린다. 10km를 지나 점심 먹는 20km까지 점점 발이 무거워진다.  20km를 지나면, “30km는 죽여 놔야 희망이 보이지.” 라는 생각만 하며 걷는다. 볼 좁은 신발에 갇힌 발가락이 징징 울고 허벅지 무게가 2배는 늘어난 것 같다. 30km를 지나 나머지 구간 5km 정도는 자기최면이 필요하다. 한창 때 해봤던 군가도 불러보고 번호 맞춰 인솔하던 흉내도 내본다. 그런데 기억나는 군가가 몇 안된다. ‘진짜 사나이’를 반복해서 부르며 간다. 덕분에 옆에서 같이 걷는 아내도 군가 몇 개는 외웠고 ‘2중 구호’ 붙이는 방법도 터득했다.

 

걸음이 좀 빠른 덕분에 집결지에 먼저 도착한다. 뒷 팀은 30분 ~1시간 반 정도 나중에 도착한다. 내심 그냥 차안에서 쉬고 싶지만 우리는 동지 아닌가? 무거운 발을 끌고 마중 나가서 환영하고 격려한다. 늦게 도착하는 팀일수록 인상이 더 일그러져온다. 하지만 집결지에 도착하면 모두 환하게 웃고 뿌듯한 성취감에 서로 안고 다독이며 좋아한다. 행사의 목적을 나타내는 좋은 슬로건들이 있다. 하지만 진정 나를 움직이는 것은 내 자신이 설정한 목적을 달성한 기쁨인 것 같다. 나만의 생각인가?

 

 

 

 

 

 

 

#4

 

힘들여 고생했으니 얻은 것이 있어야 한다. 아니 분명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마음이 불편할 텐데 지금 나는 기쁘다. 먼 길을 걷고나서 나는 5가지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다.

 

(1) 이렇듯 먼 길을 걸을 수 있는 건강을 주심에 감사한다.

 

(2) 나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가 하루 평균 35km씩 12일간 줄곧 걸을 수 있는 것 이상임을 확인하고 자신감을 갖게 된 것에 감사한다.

 

(3)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오로지 걷기만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음에 감사한다.

 

(4) 같이 걸어준 동료들과 전 과정을 뒷바라지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한다.

 

(5) 힘들고 어려운 여정을 끝내고 무탈하게 돌아와서 이렇게 소회(所懷)를 적을 수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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