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아나운스의 기도가 더 잘 응답 받는다?

Chris Jeon 2022. 4. 11. 06:28

 

 

 

목소리가 낭랑하고 표준말 쓰는 아나운스가 하는 기도는 그분께서 듣기 좋기 때문에 더 잘 응답해 주신다? 당연히 동의하실 분 없을 것이다.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 많은 신자수를 자랑하는 큰 종교단체에서 특별한 날 그동안 소외감을 느꼈던 할머니 신자들이 의기 투합하여 수수한 옷을 차려 입고 신자들 앞에 서서 알아듣기 어려운 목소리지만 최선을 다해 특송을 불렀다면 신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참 좋았다” 아니면 “듣기 괴로웠다” 여러분의 의견은?

 

여러 분야에서 봉사자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팬데믹 상황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봉사자 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그 이전부터 들어왔다.

 

가끔씩 봉사일 담당하시는 분들로부터 듣는 이야기다. “하려고 하는 사람은 있어도 수준이 좀 미달돼서… ”특히 앞에 나서서 해야 하는 일 봉사자를 잘못 선정하면 참석자들이 complain 하기 때문에 선정이 쉽지 않다.”

 

봉사하는 일 자체가 어려운 정도의 수준 미달이라면 어쩔 수 없다 해도, 목소리가 매끄럽지 못하다, 손이 조금 느리다, 등의 이유로 수준 미달 운운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좋은 말씀을 들을 때는 말씀의 내용을 묵상해야지, 낭랑한 목소리에 더 신경 써서야 되겠는가? 손이 느려 다른 사람 김치 열 포기 담글 때 다섯 포기 담그면 그 다섯 포기는 봉사가 아닌가?

 

프로 같은 모습을 보여야 훌륭한 봉사이고 보통 수준이면 촌스러운 봉사라는 의식이 있다면 고쳐야 한다. 이런 주장 하시는 분은 혹시 본인의 수준이 높아서 봉사자로 선택받았다는 교만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반성해 봐야 할 것 같다.

 

여러 분야에서 봉사하시는 분 참 고생 많으시고 이런 분들 때문에 우리 사회는 아직 온기를 간직하고 있다. 봉사자는 봉사 자체를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겸손하며, 수혜자는 봉사 자체에 감사할 때 우리 사회의 온기는 더 넓게 더 따뜻하게 퍼져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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