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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장수 1: 만약

영어 배울 때 가정법 문법이 제일 헷갈렸다. 한국말의 가정법은 상대적으로 쉽다. 시제와 관련 없이 ‘만약’만 붙이면 대충 뜻이 통한다. 그런데 이 ‘만약’의 효능이 대단하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상대를 이해하는 효과가 탁월하다. "만약 내가 빛의 속도로 날아가면 세상이 어떻게 보일까?" "만약 내가 그였다면 나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창조적인 사람이 되고,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이 약을 상용화하면 큰 돈 벌 것 같다. 약장수가 되기로 한다. “신묘한 약이 왔어요. 창의력을 높여주고 사람과의 갈등을 없애 주는 신기한 약. 아이도 오고 어른들도 와서 먹어 봐요.” 관심 있으신 분은 이 ‘만약’의 효능을 시험하는 임상 테스트에 참여해 주시기 바란다.

단상/일상 2021.11.13

리더 3: 파리와 벌

파리와 벌의 지능은 어느 쪽이 높을까? 동물학자는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벌이 더 높을 것 같다.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과학적 실험은 아니니 아무나 관심 있으신 분은 해봐도 된다. 주둥이가 열려 있는 투명한 유리병을 거꾸로 매달고 위에 약한 조명을 단다. 빛의 세기는 유리병 밑 바닥 부분이 밝게 보일 정도면 된다. 그 다음 파리와 벌을 순서대로 거꾸로 매달린 유리병 안쪽에 넣어보자. 결과는? 파리는 탈출할 수도 있지만 벌은 잘 안된다. 파리는 천방지축 날다가 운 좋으면 아래로 향한 유리병 주둥이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다. 벌은 지능이 있어 밝은 쪽이 바깥이라는 사실을 안다. 밝은 쪽, 막혀 있는 병 밑바닥을 통해 나가려고만 하기 때문에 탈출에 실패한다. 나도 그 실험을 실제 해보지는 않았다. 그러..

시사 2021.11.10

묵은지

고등어와 묵은지를 듬뿍 넣어 자글자글 끓여낸 고등어 찌게는 겨울철 별미다. 이 맛은 6개월 이상 저온에서 숙성 시킨 김치가 내는 맛이다. 글도 숙성과정을 거치는 것 같다. 번득이는 영감에 의해 일필휘지로 작성된 좋은 글도 있겠지만 나의 능력으로는 언감생심이다. 한참 고민하여 쓴 글이라도 다시 보면 풋내가 난다. 오자 탈자는 기본이고 문장의 연결도 어색하다. 심한 경우 내가 봐도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모호할 경우도 있다. 생각도 바뀐다. 가슴이 뜨거워서 썼지만 며칠 지난 후 보면 내 주장이 너무 과했다는 느낌도 든다. 독선과 아집이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 글을 저장하는 파일을 둘로 갈라서 ‘숙성방’ 파일을 따로 만들었다. 쓴 글은 일단 그 방에 넣어두고 틈나는 대로 되새겨 본다. 내용을 다시 음미하고 ..

단상/글쓰기 2021.11.09

리더 2: 가면

신체 조직 중 가장 강한 곳은? 남자의 얼굴, 철면피다. 그것 보다 더 강한 것이 있다. 뭔가? 여자의 얼굴. 철면피를 뚫고 나오는 수염조차 못 뚫으니까. 아제 개그다. 두껍고 얇음의 차이는 있지만 사람들은 모두 가면을 쓰고 산다. 가면을 쓰고 진행하는 파티에 참석해본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파티 내내 마음이 아주 편했다고 한다. 평소와 같이 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어서 자연스런 행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양심이 보드라운 사람이 부끄러운 일을 하다가 들키면 “얼굴을 들 수 없다”고 한다. 반면에 잘못을 저지르고도 얼굴 들고 다니는 사람보면 “뻔뻔하다” 라고 한다. 얼굴은 남에게 드러내어진 일종의 자신의 ID이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psychopath)와 소시오패스(sociopath)의 차이를 쉽게 설..

시사 2021.11.07

리더 1: 돈 안되는 골프

자신만만하고 고집이 셌던 사나이가 난생 처음 친구를 따라 골프장에 왔다. 여러가지 골프채를 가방에 잔뜩 짊어지고 공을 치는 모습을 보던 그가 호기롭게 나섰다. 나는 골프채 한 개만 가지고 쳐보겠노라고. 대충 중간 길이 아이언 한 개를 뽑아 들고 첫번째 홀, 티 샷부터 시작했다. 원래 운동 신경이 좋았던 그였는지라 타수에는 관계없이 공은 앞으로 맞아 나가고 마침내 그린위에 도달하여 여러 번 시도 끝에 홀컵안에 공을 넣을 수 있었다. 이후 그는 다음 홀로 이동하기를 기다리던 친구를 보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의아해하며 이유를 묻자, 그가 하는 말, “다른 것은 다 알겠는데 이 컵 안에 든 공은 어떻게 치는지 모르겠어.” 드라이버만 잘 친다고 점수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우드나 아이언 어느 것한개만 삐끗해도..

시사 2021.11.05

두루마리 휴지

10월이 뜯겨지고 이제 2장 남았다. 가벼워져 약한 바람에도 흔들린다. 어느 논객이 시간의 흐름을 두루마리 휴지에 비유했다. 처음 사용할 때는 줄어드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뭉치에 얼마 남지 않으면 확확 주는 것이 눈에 보인다고. 여든이 훨씬 넘은 선배님에게 “제가 이곳에 온지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라고 말하자, “자네 3년과 내 3년이 같겠는가” 하시며 하늘을 한번 쳐다보셨다. 11월은 위령의 달이다. 저승에 간 영혼들을 기억하고 위하는 달이다. 제단 옆에 기억하고 싶은 분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웃는 얼굴도 있고 조금 슬퍼 보이는 얼굴도 있다. 주위 분들과 어울리지 않는 젊은 얼굴도 있다.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는 순간, 겸손해 진다. 웃고 울며 살다 보면 어느새 나도 사진 속의 얼굴이 된다. 누..

단상/일상 2021.11.03

나는 내가 좋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다. 매일 세수하고 화장하듯이… 과연 그럴까? 갱생의 노력을 포기한 사람들의 심리를 잘 나타내는 말, ‘나는 이미 금간 몸’ 이미 금 갔으니 제돈 주고 살 사람 없고 본인으로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반성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길을 찾아 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 바탕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기가 자신에게 좌절하고 포기하면 그 누구도 도울 수 없다. ‘내 생각이 나를 만든다’ 나를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소중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행동을 한다. 반대로, 내가 나를 나쁜 사람으로 단정 지으면 나는 나쁜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아끼는 마음이 들지 않으면 돌보는 행동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중한 고려청자 다루는 마음..

단상/일상 2021.11.02

내 보물 만들기

요즘은 잘 안보이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문패가 있었다. 주소는 조그맣게 써 있거나 아예 없고 대신에 집 주인 이름 석자는 크게 씌어 있다. 새로 발견한 동식물, 별, 호수의 이름도 그 발견자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모두 나의 소유권을 표시하는 의미다. 나는 나만의 해변을 갖고 싶은 욕심이 있다. 내가 사는 지역의 집값이 한국 돈으로 얼추 10억 가까이 되니 그냥 꿈일 뿐이다. 근자에 트레킹을 하다가 인상 깊은 장소를 만나면 나름대로 내게 익숙한 이름을 붙여보곤 한다. 모래와 짧은 풀이 이어져 있는 한적한 장소는 ‘쿠바 해변’, 무너진 다리는 ‘콰이강의 다리’, 아담한 꽃 길은 내 이름을 딴 ‘아무개 정원’. 이런 식이다. 그렇게 이름을 붙여 놓고 보니, 일단 기억하기도 쉽고 더 친근감이 간다. 농..

단상/일상 2021.11.01

열린 귀

기왕 시작했으니 듣는 이야기 계속해 보자. 신체기관 중 항상 열려 있는 것은 2개다. 코와 귀 항상 숨쉬어야 사니까 콧구멍은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럼 귀는? 궁금해진다. 귀 닫으면 숨 안 쉬는 것만큼 위험하다는 뜻인가? 귀 닫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당장 죽지는 않겠지만 본인도 위험하고 주위 사람들을 해친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예를 들어보자. 아무리 타일러도 말 안 듣던 자식이 불량배가 되어서 부모 가슴에 못을 박는다. 주위 참모들의 간언을 무시한 리더의 독선으로 수많은 병사들이 죽고 나라가 망하기까지 한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분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으니 세상 도처에서 총소리와 화약 냄새가 자욱하다. 가만이 생각해보니 앞 못 보는 장님 보다 귀 막고 사는 자발적 귀머거리가 더 무섭다. 열린 귀 막..

단상/소통 2021.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