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내 보물 만들기

Chris Jeon 2021. 11. 1. 08:42

 

 

요즘은 잘 안보이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문패가 있었다. 주소는 조그맣게 써 있거나 아예 없고 대신에 집 주인 이름 석자는 크게 씌어 있다. 새로 발견한 동식물, 별, 호수의 이름도 그 발견자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모두 나의 소유권을 표시하는 의미다.

 

나는 나만의 해변을 갖고 싶은 욕심이 있다. 내가 사는 지역의 집값이 한국 돈으로 얼추 10억 가까이 되니 그냥 꿈일 뿐이다.

 

근자에 트레킹을 하다가 인상 깊은 장소를 만나면 나름대로 내게 익숙한 이름을 붙여보곤 한다. 모래와 짧은 풀이 이어져 있는 한적한 장소는 ‘쿠바 해변’, 무너진 다리는 ‘콰이강의 다리’, 아담한 꽃 길은 내 이름을 딴 ‘아무개 정원’. 이런 식이다.

 

그렇게 이름을 붙여 놓고 보니, 일단 기억하기도 쉽고 더 친근감이 간다. 농담 삼아 내 이름 붙인 동산은 내년 income tax 신고할 때 포함시켜야 하겠다는 실없는 소리도 해본다.

 

신입사원 교육받을 때 강사님이, 이병철 회장이 신라호텔 주인이 아니고 하룻밤 묵고 가는 손님이 주인이라고 했다. 회장이 주인이라 할지라도 매일 밤 각 방을 돌아다니며 잘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그날 밤 그 방에 자는 사람이 주인이 되는 것이다.

 

내 주위에 주인을 기다리는 무한대의 보물이 있다. 아무리 퍼 담아도 모자람이 없는 바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밤하늘의 별, 지천에 널린 들꽃, 산… 내가 보고 즐기면 내 것이다. 마음 속으로 내가 좋아하는 이름 붙여 놓으면 다 내 것이 된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에게 이름 다 붙이기가 버겁다. 그냥 밤 하늘 통째로 ‘아무개의 하늘’이라고 이름 붙일 참이다. 하하, 인간의 욕심에는 한계가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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