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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 1: 돈 안되는 골프

자신만만하고 고집이 셌던 사나이가 난생 처음 친구를 따라 골프장에 왔다. 여러가지 골프채를 가방에 잔뜩 짊어지고 공을 치는 모습을 보던 그가 호기롭게 나섰다. 나는 골프채 한 개만 가지고 쳐보겠노라고. 대충 중간 길이 아이언 한 개를 뽑아 들고 첫번째 홀, 티 샷부터 시작했다. 원래 운동 신경이 좋았던 그였는지라 타수에는 관계없이 공은 앞으로 맞아 나가고 마침내 그린위에 도달하여 여러 번 시도 끝에 홀컵안에 공을 넣을 수 있었다. 이후 그는 다음 홀로 이동하기를 기다리던 친구를 보며 울상을 짓고 있었다. 의아해하며 이유를 묻자, 그가 하는 말, “다른 것은 다 알겠는데 이 컵 안에 든 공은 어떻게 치는지 모르겠어.” 드라이버만 잘 친다고 점수가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우드나 아이언 어느 것한개만 삐끗해도..

시사 2021.11.05

두루마리 휴지

10월이 뜯겨지고 이제 2장 남았다. 가벼워져 약한 바람에도 흔들린다. 어느 논객이 시간의 흐름을 두루마리 휴지에 비유했다. 처음 사용할 때는 줄어드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뭉치에 얼마 남지 않으면 확확 주는 것이 눈에 보인다고. 여든이 훨씬 넘은 선배님에게 “제가 이곳에 온지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라고 말하자, “자네 3년과 내 3년이 같겠는가” 하시며 하늘을 한번 쳐다보셨다. 11월은 위령의 달이다. 저승에 간 영혼들을 기억하고 위하는 달이다. 제단 옆에 기억하고 싶은 분들의 사진이 걸려있다. 웃는 얼굴도 있고 조금 슬퍼 보이는 얼굴도 있다. 주위 분들과 어울리지 않는 젊은 얼굴도 있다. 시간의 흐름을 실감하는 순간, 겸손해 진다. 웃고 울며 살다 보면 어느새 나도 사진 속의 얼굴이 된다. 누..

단상/일상 2021.11.03

나는 내가 좋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다. 매일 세수하고 화장하듯이… 과연 그럴까? 갱생의 노력을 포기한 사람들의 심리를 잘 나타내는 말, ‘나는 이미 금간 몸’ 이미 금 갔으니 제돈 주고 살 사람 없고 본인으로서는 더 이상 할 일이 없다. 반성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잘못을 반복하지 않고 더 나은 길을 찾아 가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 바탕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기가 자신에게 좌절하고 포기하면 그 누구도 도울 수 없다. ‘내 생각이 나를 만든다’ 나를 소중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소중해지기 위해서 필요한 행동을 한다. 반대로, 내가 나를 나쁜 사람으로 단정 지으면 나는 나쁜 쪽으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아끼는 마음이 들지 않으면 돌보는 행동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중한 고려청자 다루는 마음..

단상/일상 2021.11.02

내 보물 만들기

요즘은 잘 안보이지만 예전에는 집집마다 문패가 있었다. 주소는 조그맣게 써 있거나 아예 없고 대신에 집 주인 이름 석자는 크게 씌어 있다. 새로 발견한 동식물, 별, 호수의 이름도 그 발견자의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많다. 모두 나의 소유권을 표시하는 의미다. 나는 나만의 해변을 갖고 싶은 욕심이 있다. 내가 사는 지역의 집값이 한국 돈으로 얼추 10억 가까이 되니 그냥 꿈일 뿐이다. 근자에 트레킹을 하다가 인상 깊은 장소를 만나면 나름대로 내게 익숙한 이름을 붙여보곤 한다. 모래와 짧은 풀이 이어져 있는 한적한 장소는 ‘쿠바 해변’, 무너진 다리는 ‘콰이강의 다리’, 아담한 꽃 길은 내 이름을 딴 ‘아무개 정원’. 이런 식이다. 그렇게 이름을 붙여 놓고 보니, 일단 기억하기도 쉽고 더 친근감이 간다. 농..

단상/일상 2021.11.01

열린 귀

기왕 시작했으니 듣는 이야기 계속해 보자. 신체기관 중 항상 열려 있는 것은 2개다. 코와 귀 항상 숨쉬어야 사니까 콧구멍은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럼 귀는? 궁금해진다. 귀 닫으면 숨 안 쉬는 것만큼 위험하다는 뜻인가? 귀 닫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당장 죽지는 않겠지만 본인도 위험하고 주위 사람들을 해친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예를 들어보자. 아무리 타일러도 말 안 듣던 자식이 불량배가 되어서 부모 가슴에 못을 박는다. 주위 참모들의 간언을 무시한 리더의 독선으로 수많은 병사들이 죽고 나라가 망하기까지 한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분의 말씀을 귀담아듣지 않으니 세상 도처에서 총소리와 화약 냄새가 자욱하다. 가만이 생각해보니 앞 못 보는 장님 보다 귀 막고 사는 자발적 귀머거리가 더 무섭다. 열린 귀 막..

단상/소통 2021.10.30

아니되옵니다

“아니되옵니다.” 만인지상(萬人之上) 임금님이 가장 스트레스 받았던 말이다. 조선시대 왕의 잘못에 대한 간쟁, 논박을 담당하던 국가기관, 사간원(司諫院) 이야기다. 서슬이 시퍼렇던 연산군 앞에서도 바른말을 해대던 관리들이 일하던 기관이었다. 안가 폐지를 약속했던 대통령 후보자가 막상 당선돼서는 슬그머니 그 약속을 없었던 것으로 한 경우가 있었다. 막상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보니 외부와의 사적인 통로 역할을 하는 ‘안가가 필요하더라’는 것이 그 이유다. 청와대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감옥이 된다는 말이 있다. 한점의 허점도 있어서는 안 되는 경호 특성상 모든 외부로부터의 유입이 철저히 걸러지는 시스템으로 생겨나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은 고립되고, 더 큰 문제는 통상 집권 말기쯤 주변이 인의 장막으로 둘러..

단상/소통 2021.10.29

날선 촛불

마음이 들끓고 열이 정수리로 치솟을 때 촛불을 보면 진정된다. 촛불을 들고 있는 자의 이미지는 폭력과는 거리가 멀다. 촛불의 속성을 생각해 본다. ♥심지가 있다.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의지나 뜻을 의미하는 심지((心志)와 동음이다. 심지에 불을 붙여 자 신을 태우고 어둠을 밝힌다. ♥휘황찬란하지 않다. 어둠과 같이 있어 더 돋보인다. ♥가진 불꽃을 나누어도 자신의 빛은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주위가 더 밝아진다. ♥조용하고 부드러우며 끊임이 없다. ♥뜨거운 불을 안고 있지만 먼저 남을 데이게 하지 않는다. ♥보살피는 마음을 일으킨다. 촛불을 드는 순간 모두 가슴 가까이 대고 손으로 바람을 막는다. ♥제할 일을 다하면 그냥 없어진다. “날선’이란 형용사를 촛불 앞에 붙이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군중 집회를 할..

시사 2021.10.28

장님이 코끼리를 아는 방법

‘장님 코끼리 만지기’란 말이 있다. 사물의 어느 한 부분을 아는 것으로 전체를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꾸짖는 말이다. 어차피 우리는 사물의 전체를 완전히 알기는 어렵다. 사과를 예로 들어봐도, 사과의 모양과 맛은 대충 알아도 그것을 이루고 있는 성분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사과라는 과일이 속해 있는 식물의 분류표, 성장 메커니즘 등등 따지고 들면 우리가 사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사과 전체 중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원의 내면과 같아서 알고 있는 부분이 커지면 모르는 바깥 부분은 더 커진다고… 맞는 말이다. 우리는 어차피 무한대의 우주만물에 대해서 눈뜬 장님이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으로 코끼리 전체의 형상을 파악할 수 있는 방..

시사 2021.10.27

쉬어가는 것

Thanksgiving Day도 지나고 이제 곧 눈발이 날릴 것 같으니 골프장도 하나둘씩 문을 닫고 필드는 깊은 눈 속에 묻혀 겨울을 날 것이다. 이민 와서 지인의 권유로 집 가까운 곳 클럽의 멤버가 되어 한동안 매우, 열심히 그리고 재미있게 골프 쳤던 기억이 난다. 사는 지역이 온난하여 일년내내 라운딩이 가능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골프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지만 형편에 비해 과용한 것이 아까워서 거의 의무감으로 골프장으로 매일 출근한 것 같아 조금 민망하다. 어느 것 한가지에 몰두하는 것 좋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나의 전문 분야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취미 생활만큼은 조금 달리 생각해 본다. 자신의 업으로 삼지 않을 바에야 두루 섭렵도 좋은 방법으로 생각된다. 세상에 좋은 음식이 한가지가 아니듯이 ..

단상/일상 202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