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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식 재봉틀이 가져온 단상

#1 집에 오래된 재봉틀이 있다. 아내의 사랑하는 골동품이자 생활 도구다. 어느 날 작동이 멈췄다. 더 이상 재봉질이 안된다. 수명을 다한 것인가? “그래 할 만큼 했어.” “이젠 버려도 아깝지 않아.” 아내가 같은 말을 내 앞을 왔다갔다하며 계속 반복한다. 당신이 좀 고쳐보라는 압력으로 느껴진다. 불 켜고 자세히 들여다 본다. 실이 박히지 않으니 분명 북실 문제인 것 같다. 북실이 들어 있는 부분의 커버를 떼어내고 들여다보니 부속품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게 붙잡아 두는 arm이 두개 보인다. 별 생각없이 그 팔 2개를 열어 젖히니, 아뿔싸, 생선 배가르면 내장 튀어 나오듯 각가지 부속품들이 우르르 쏟아진다. 조립 순서 기억할 새가 없이 벌어진 일이다. 난감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내가 또 염장 지른다. ..

단상/일상 2023.12.16

약속, 취미, 책임감

# 좀 헷갈려서 정리해 본다. 먼저 약속이란 것. 누군가가 무언가를 할 것인지, 아니면 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해 미리 정하는 행위를 말한다. 두 명 이상이 같이 사는 곳에서는 약속이란 것이 필요하다. 이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그 조직은 무너진다. 우리가 왜 돈에 목매나? 종이장 돈에 적혀 있는 금액만큼의 가치를 보장해 준다는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그 약속이 안 지켜지는 순간 사회는 무너진다. 취미라는 것.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남이 자기와 같이 안 한다고 탓할 것 없고,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 남이 왜 그 짓 하느냐고 물을 것도 없다. 책임감 때문에 하는 일. 약속이란 것과 연관 된다. 내가 하기로 약속한 것이니 좋고 싫음에 관계없이 해야 한다. 내가 이 창고를 정해진 시..

단상 2023.12.11

낙서 39: 풍년 속 기근

아무리 좋은 곡물이라도 풍년이 계속되면 밭에서 썩어가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농부들은 눈물 흘리고 지구촌 어디에서는 여전히 굶어 죽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주의와 대량 생산이 만들어낸 아이러니다. 한국에 하나님(하느님)이 20여 명, 재림 예수가 50명이 넘는다고 한다. 로마시대 사는 사람들조차 보기 힘들어 했던 십자가 불빛이 휘황하고, 크리스마스 캐롤이 어디서나 들린다. 본인의 수상한 행적을 예수님의 고난으로 포장하는 자칭 사회 리더들이 많이 보인다. 3D 복사기로 원하는 것 뚝딱 만들 수 있는 시대가 돼서 그런지 성자, 성인들이 넘쳐난다. 너도 나도 거룩해지니 거룩함의 가치가 떨어진다. 무엇이 진정 거룩함인지 모르겠다. 사방 지천에 성자/성인들이 왔다갔다하니 나도 좀 그런 것 같다는 환상도 든다. 하나..

단상/낙서 2023.12.06

부질없다

성당에서 가장 바쁜 조직이 연령회다. 신자들의 단체로서 주로 선종하신 분들의 장례, 그리고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단체. 어느 가정이나 가족 중 누가 돌아가시면 당황하고 경황이 없다. 그런데 누가 알아서 척척 진행해 주니 고맙다. 비 신자였지만 본인 가족 장례식 때 연령회의 봉사 활동을 보고 세례 받기로 결심하신 분들도 많다. 나도 연령회 회원이다. 열심히 활동하는 ACTIVE MEMBER는 아니고 주로 운구 할 사람이 없을 때 아주 가끔씩 운구 봉사한다. 사실 장례 치러줄 가족이 없는 가정이거나, 운구 할 사람 고용할 돈이 없는 가정 등 사정이 어려운 가족들의 장례 준비를 보면 딱해서 내 주특기 좀 살린 것이다. 잘 걷고 팔 힘도 같은 나이 또래 비해서 약간 세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단상 2023.12.04

한 수 배우는 것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우리 삶 가는 곳마다 고수가 있다’. 거지는 공자와 같이 길을 걸어가도 배움이 없고 공자는 거지와 같이 걸어가면서도 배운다. 블로그 활동이 좀 가볍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이 세상 꼭 무거운 것으로부터 발전하지는 않았다. 자신이 좋아 하는 것을 그저 즐기는 분들의 자연스런 모습. 전문가다운 솜씨를 보여주시는 분. 매끌매끌 하지는 않더라도 진정이 보이는 글들. 순박하게 웃고 좋아하는 모습. 나랑 비슷한 생각 들, 내가 화내는 일에 같이 화내고, 같이 좋아하고, 나랑 비슷하게 아파하고. 나랑 생각이 다른 분들, 아하~ 이런 생각도 있구나. ... 오늘 답글에서 마음에 쏙 드는 사자성어를 배웠다. 무괴아심(無愧我心). 내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도록 한다. 즉, “다른 사람의..

단상 2023.12.03

낙서 38: 자초한 일

‘이전투구(泥田鬪狗)’ 한발 담궜다. 이 정도일지는 몰랐고. 발 빼자니 지맘대로 안 되니 삐쳤다고 흉 볼까 걱정 되네. “그래 한번 뒤집어봐?” 아직 가슴 조금은 뛰고 미련도 남는다. 내가 자초한 일. 남 탓하고, 남 눈치 볼 것 없이 내 맘 가는 대로 따르는 것이 맞겠지. 그래, 머리 좀 쉬었다 가지 뭐. 오늘 사교 댄스 강습 있는 날. 빙글빙글 돌면서 머리 식히자. 진흙 밭 대신 반들반들 마루 위 미끄러지고, 개 대신 선남선녀 보기 좋다. 짖는 소리 보다 웃음 소리 더 좋다.

단상/낙서 2023.11.30

낙서 37: 열혈사제2

‘I am a boy.’ 중학교 1학년 영어 처음 배울 때 외웠던 문장으로 기억된다. 지금 생각해보니 좀 이상하다. 내가 분명 남잔데 왜 나를 남자라고 소리쳐야 할까? 검사들 조직에서 만약 ‘정의 구현 검사단’이란 모임을 만들면 어떻게 보일까? 검사란 원래 정의를 구현하자는 미션을 안고 사는 자들인데, “검사 중에도 정의 구현 검사와 정의 안 구현 검사도 있나?” “지들만 정의를 구현하는 검사들인가?” 서울 광화문에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는 검은 유령들이 있다. 주로 대낮에 촛불을 들고 나온다. 주로 정치적 정의를 구현하자는 소리를 외친다. ‘정의구현 ***’ 나는 ‘열혈사제’를 좋아한다. 검정 갑옷 뒤에 숨어서 “I am a boy”를 외치는 대신 내가 옳다고 확신하는 바를 맨몸으로 보여주는 분. 내가..

단상/낙서 2023.11.22

낙서 36: 열혈사제1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교만이란 것이 뭐지? 잘난 체하여 뽐내고 버릇이 없음. 그럼 ‘~체’ 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 내가 더 잘난 근거가 있는 경우에 내가 잘났다고 하는 것은 교만이 아니다. 인간간 관계상 수준차에 절망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attitude의 수준. 규범이란 것이 있고, 예절이란 것이 있고, 상식이란 것이 있는데 이를 깡 무시하고 설쳐대서 결과적으로 내가, 주위가 피해를 입는다면 참 난감하다. 이 때 수준차가 나서 도저히 같이 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나를 교만하다고 비난하는 자가 있다면 내가 반성해야 하나?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이렇게 가슴치며 반성하는 동안에 그자는 더 기고만장해서 그의 부정적 attitude가 강화 될 수 있다. 이럴 경우에는 인간사적 힘이..

단상/낙서 2023.11.22

불량품 or 걸작

# 배드민턴 리시브 하려고 자세 잡고 서 있는데 갑자기 오른쪽 다리 종아리를 누가 때린 듯 날카로운 통증을 느낀다. 후위에 서 있는 파트너가 실수로 라켓으로 내 종아리를 쳤는가 싶어 뒤돌아 보면 무안해할까봐 모른척하고 게임 끝내고 의자에 앉아서 보니 종아리가 탱탱 붓고 쥐가 난듯 걷기 불편하다. 며칠 견디다가 안되겠다 싶어 병원가서 검사해보니 종아리 근육 파열이라고 한다. 이럴 수가… 400km를 열흘만에 걸어서 주파하고 평지보다 산길 걷기를 더 좋아하는 내가, 그냥 서 있었는데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다니 잘못 만들어진 물건인 것 같다. 가만히 세워 둔 차가 고장 났다면 불량품 아닌가? # 하늘 위 그분의 자녀들이 죽고 죽이고 난리다. 어느 한쪽이 멸족될 때까지 안 끝날 기세다. 거슬러 올라가면 수천년 그..

시사 2023.11.17

섬에서 밖을 보면 외롭고 밖에서 섬을 보면 그립다. 이민와서 십여년 섬에서 살아봤고 지금은 대도시에서 5년째 살고 있다. 내가 살았던 섬은 남한 면적의 1/3쯤 되는 큰 섬이지만, 가끔씩 답답함을 느꼈다. 섬 한 켠 해변에 앉아 건너편 흐릿하게 보이는 육지를 보면, 섬이라는 단어가 주는 외로움이 덮쳐온다. 고구마처럼 길쭉한 모습에, 그래서 남북으로 놓인 고속도로가 500km 가까이 거리가 나오는 섬이지만, 차 타고 휭 떠날 때는, 130여킬로 가면 해안선에 닿는 남쪽보다는 300km 넘게 달려야 바다에 막히는 북쪽으로만 갔다. 그래야 가슴이 좀 터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딜가나 한국 식당이 보이고 한국말이 영어보다 더 자주 들리는 동네에 살고 있어 무지 편하다. “오늘 소주 한잔 할래?” 번개 미팅 카톡..

단상/일상 2023.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