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봄 소식이 들려온다고 하던데 이곳은 계속 눈 소식이다.
2월 들어서 눈이 자주 온다. 최근에는 폭설이고.
내일과 모레 다시 30cm 넘는 눈이 예상된다고 하니 도로에서 집 현관까지 이어지는 drive way에 쌓일 눈을 어디로 치워야 할지 고민이다.
본의 아니게 옆집과 당분간 키 높이의 눈 벽을 쌓고 살게 될 것 같다.
근자에 이런저런 이유로 산속길은 못 걷고 집에서 2km 떨어진 동네 공원에 갔다.
공원 한바퀴 도는 거리가 약 2km 되니 집에서 출발해서 공원 돌고 오면 합계 6km 딱 좋은 산책 코스여서 자주 간다.
동네 공원이라도 큰 개울이 흐르고 숲이 있어서 코요테와 여우가 가끔씩 인사한다.
오후 늦은 시간대 집에서 출발해서 공원에 들어서니 조금씩 어두워진다.
아무도 없다.
그저께 내린 20cm 눈이 계속되는 영하의 날씨로 아직 수북이 쌓여 있고 사람들이 지나간 폭 20cm 정도의 foot path가 도랑처럼 나 있는 부분 외에는 모두 밟지 않은 흰 눈 그대로다.
참 고요하다.
무섭지 않을까? 안 무섭다.
사실 사람이 제일 무서운데 아무도 없고 짐승들도 굴 속에서 안 나오니 안전하다.
땅은 하얗고 하늘은 조금 푸른 검은 빛이고 둘 사이에 어두컴컴한 숲이 이어진다.
뽀득뽀득 눈 밟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사실 말을 많이 하고 살았다. 좋은 말, 나쁜 말, 쓸데 없는 말…
텅 빈듯한 공간에 나 혼자 걷고 있으니 할 말이 없다.
말을 안 하니 아무 생각도 안 든다. 그저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걸을 뿐.
나에게는 좋은 힐링 타임이 된다.
공원을 빠져나와 도로에 나서니 차도 많고 불빛도 밝다.
다시 내가 사는 속세로 돌아왔다.
2km 남짓 거리를 두고 속세와 자연이 공존하는 세상에 사는 것이 참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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