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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했던 순간 4

18년 동안 내 품에서 떨어지지 않던 녀석이 있었다. 세상에 나온지 4주만에 엄마 젖도 제대로 못 먹고 가게로 팔려와서 옆구리에 피부병 걸린 채 새 주인 기다리던 녀석. 그냥 두면 죽을 것 같아 덥석 안고 집에 와서야 녀석이 시츄라는 것을 알았다. 자기 밥그릇 속에 네발 딛고 서 있을 만큼 작았던 녀석. 건강해지라고 ‘바우’라 이름 지어 줬다. 한 6개월 정성 들여 키웠더니 우리집 보스가 되었다. 서열 1위 바우, 2위 엄마, 3위 형아, 4위 누나 내가 마지막이다. 내가 왜 서열 꼴찌가 되었는지 잘 모른다. 그저 ‘이쁘다’ ‘이쁘다’ 해준 죄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서열이 낮다 보니 보스 눈치 살피고 심기 관리 잘해야 한다. 뒤가 마려운 것 같으면 문을 열어드려야 하고 하루에 몇 번이 됐건 콧구멍이 간지..

단상/행복 2021.09.22

내 마음 속 가시 2

작은 가시는 살 속에 그냥 두어도 삭거나 굳어 내 몸의 일부가 된다. 어떤 땐 굳은살이 보통 살 보다 더 강해져서 유용할 때도 있다. 그럼 큰 가시는? 빼내지 않으면 상처가 덧나 고생한다. 누구나 마음 속의 가시를 가지고 있다. 크고 작고는 본인 생각이다. 본인이 묻어 두기를 원해서 삭고, 굳을 수 있다면 굳이 주위 사람이 들추지 않는 것이 좋다. 짐짓 잊고 있는 상처를 들쑤시는 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시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데 본인은 뺄 때의 고통이 두려워서, 아니면 피가 무서워서 망설이고 있는 경우라면 누군가 용기를 불어넣어 주거나, 본인은 눈감고 있고 다른 이가 확 빼 줄 수도 있다. 자살자의 대부분이 실행 전 자살을 암시하는 무엇인가를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살고자 하는 본..

단상/일상 2021.09.21

내 마음 속 가시 1

어느 집이나 아픈 가시 하나는 있다는 말이 있다. 마냥 행복할 것 같은 가정에도 말 못할 아픈 일이 있을 수 있다는 말로 이해된다. 신이 공평해서 그렇다는 생각을 하면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다. 어디 가정사뿐이랴. 내 마음에도 아픈 가시가 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도 쉽게 드러낼 수 없는 아픈 곳. 드러내기도 힘들고, 잊을 수도 없는, 그냥 안고 가야할 그런 것들. 혹자는 말한다. ‘훌훌 털라고…’ 아니면 종교적 의식인 고해를 방법으로 제시한다. 털 수 있고 고백할 수 있었으면 했겠지. 그러지 못하는 마음 역시 다른 가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손가락에 가시가 박히면 아프다. 처음에는 빼내려고 했겠지만 아파서, 피가 무서워서 등 어떤 이유로 못 빼내면 그냥 살에 묻혀 삭거나 굳는다. 큰 ..

단상/일상 2021.09.21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이 키우는 집에서 곧잘 재미삼아 아이에게 묻는 질문이다. 교육학적으로 보면 어린아이에게는 해선 안 될 질문이다. 자칫하면 편가르기를 가르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조금 철이든 아이는 망설이거나 거짓말할 수도 있다. 아이의 순수한 감정을 그대로 두고 보는 편이 맞다. 내가 무언가를 좋아하는 느낌은 그 사회 규범에 분명하게 어긋나지 않는 한 내 마음에서 비롯된 감정이기 때문에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할 사안이 아니다. 얼마전 아프간에서 난민 탈출 작전이 한창일 때 영국에 사는 어떤 사람이 전세기를 동원해서 개를 포함한 반려동물들을 구출해와서 논란이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사람 구하기도 급한데 반려동물 구출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이 그를 비난하는 진영의 논리다. 내가 캐나다..

단상/일상 2021.09.20

다람쥐가 가져온 상념

뒤뜰에 사는 다람쥐가 선물을 가져왔다. 야생 호두 스무 개가 문 옆 구석진 곳에 놓여 있다. 문 앞에서 두발을 모으고 서 있는 모습이 이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먹던 땅콩을 짐짓 흘려준 것이 고마워서 일까? 일단 참한 뜻을 받기로 하고 두 알만 남기고 나머지는 집안으로 들였다. 너의 마음은 안다. 그만큼의 호두를 모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올겨울을 새끼와 나기 위해서 그 작은 입이 얼얼하도록 물어 날랐을 것이다. 일단 문 앞에 두고 시간 날때마다 땅을 파고 묻을 작정이었겠지. 내 문 앞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밉지 않다. 그 많은 호두를 하루 밤사이 다 묻을 수는 없을 터 밤사이 스컹크나 라쿤이 뺏아갈 것 같아 매일 두 개씩 내놓기로 한 것이다. 기특하게도 내 뜻을 알아차린 것인지 밤사이 두 알씩..

단상/일상 2021.09.15

나 자신의 하자 보수 2

도심 곳곳이 공사 중이다. 하기야 그 많은 사람과 차들이 바글거리는 곳이니 고칠 것이 오죽 많을까? 이해심을 발동하려고 해도 차가 밀리고 심지어 느닷없이 길이 끊기기도 하니 짜증이 난다. 며칠이면 견딜만 하겠는데 어떤 공사는 10년이 넘도록 진행형이다. 덜 불편하게, 더 빠르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나도 공사가 필요하다. 특별하고 어려운 공사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을 고쳐야 하는 일이다. 공사에 대한 정보는 많으나 시공자는 나 혼자다. 공기도 정해져 있지 않고 감독관도 없다. 오롯이 내 책임하에 진행된다. 우선 공사 매뉴얼을 보자. 수천년 전부터 발간된 된 종교 교과서, 현재 교양서적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가지수도 무지 많다. 그다지 어려운 전문 용어는 없다. 그냥 하면 된다. 문제는..

요설 2021.0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