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설

나 자신의 하자 보수 2

Chris Jeon 2021. 9. 14. 17:39

 

  도심 곳곳이 공사 중이다. 하기야 그 많은 사람과 차들이 바글거리는 곳이니 고칠 것이 오죽 많을까? 이해심을 발동하려고 해도 차가 밀리고 심지어 느닷없이 길이 끊기기도 하니 짜증이 난다. 며칠이면 견딜만 하겠는데 어떤 공사는 10년이 넘도록 진행형이다. 덜 불편하게, 더 빠르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나도 공사가 필요하다. 특별하고 어려운 공사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마음을 고쳐야 하는 일이다. 공사에 대한 정보는 많으나 시공자는 나 혼자다. 공기도 정해져 있지 않고 감독관도 없다. 오롯이 내 책임하에 진행된다.

 

  우선 공사 매뉴얼을 보자. 수천년 전부터 발간된 된 종교 교과서, 현재 교양서적까지 종류도 다양하고 가지수도 무지 많다. 그다지 어려운 전문 용어는 없다. 그냥 하면 된다. 문제는 실행이 어렵다는데 있다.

 

  “남이 내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하라.” 맞다. 그러나 내 몸은, 내가 원하는 것을 남이 먼저 해 주기를 기다린다. 내가 먼저 하면 손해일 것 같다.

 

  내 몸은 왜 메뉴얼 내용과는 한결같이 반대 방향으로만 움직일까? 괘씸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은 난데 종이 복종하지 않는다. “이 나쁜놈아 너는 왜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가?” 큰 소리로 꾸짖는다.

 

  몸이 눈물을 흘리며 답한다. 사실 저는 제 주인이 누군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오만명 정도의 주인이라 자칭하는 사람들이 명령을 내리고 있으니 저도 헷갈립니다.

 

  아뿔싸, 하루에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살고 있으니 몸도 사실 어떤 생각이 주인의 진정한 뜻인지 헷갈리는 것이 당연하겠구나. 메뉴얼 읽을 때 사랑하자고 해놓고 돌아서면 그 놈이 미워 보이고그러면 내 몸은 사랑해야 하나 미워해야 하나 혼란스럽겠지. 더 많이 더 강하게 생각하는 것이 내 몸을 움직이겠구나.

 

  공사 매뉴얼에 적힌 대로만 생각하기로 한다. ‘용서란 화두를 머리에 두고 눈을 감는다. 조금 지나자 처음 본 내게 반말한 1년 선배 얼굴이 떠오른다. 머리를 흔들고 다시 화두에 집중한다. 이번에는 처음 보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난 후에 동료 앞에서 나를 면박준 상사의 찢어진 눈이 보인다. 공사가 계속 지연되고 있다.

 

  시간을 보니 5분 정도 지났다. 5분 동안 용서를 생각한 시간이 3, 미워한 시간이 2분이다. 오늘 1분 정도 공사가 진척되었다. 생각보다 공사가 더디게 진행됨을 안다. 이제 공사 지연을 마냥 탓할 수 만은 없겠다는 너그러운 생각을 해 본다.

 

2021년 어느날

지하철 공사로 복잡한 시내를 주행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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