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290

흔적 없애고 추억 남기기 1

이제 나이가 60 중반에 가까워지니 대화의 주제도 달라져서 이전까지는 거의 금기시했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러워진다. 다른 이들의 생각도 살펴보고 내가 죽음을 맞이한 이후 남은자를 위한 배려도 생각해볼 필요를 느낀다. 아무래도 나보다 오래 남아 있을 것 같은 아내의 의견을 물어보니 나를 그냥 떠나 보내기는 아직은 조금 섭섭한 듯 무엇인가 추억할 만한 흔적을 남기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 매장 보다는 화장이 낫다는 것에는 마지 못해 동의했지만 화장 후 유골 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 아내는 최소한 유골함이라도 적당한 곳에 모셔 놔야 보고 싶을 때 찾아갈 곳이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 뜻이 우선 고맙다. 힘들었던 경험도 추억이 되면 그립고 좋아 보이는 법이다...

단상/일상 2021.09.03

금수저 흙수저 1

“감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있는 자” 어리석고 게으른 사람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되는 비유다. 하지만 작은 확률에도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그 사람의 끈기와 한번쯤 시도는 해보는 도전정신은 칭찬할 만한 것이 아닌지. 어차피 자신의 손으로 감을 딸 재주가 없다면 입이라도 벌리고 기다리는 것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나을 것이다. “행운은 노력이 기회를 만났을 때 일어난다.” 공감이 되는 이야기다. 노력은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것에는 공감해도 많은 사람들은 기회의 불공평함을 탓한다. 그래서 금수저 흙수저는 이제 누구나 그 의미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널리 사용되는 낱말이 됐다. 하지만 만인에게 공평한 기회란 애당초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항상 변하는 환경과 다른 사람들과 엮여서 만들어지는 기회라..

단상/일상 2021.09.02

240년

7,500,000,000÷(1×60×60×24×365)=238 오랜만에 수학지식을 활용해서 계산해본 것이다. 세계 인구를 1초에 한 명씩 만나 인사한다면 몇 년이나 걸릴까? 얼추 240년 걸린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240년을 살수도 없고, 밥 안 먹고 잠안자고 1초에 1명씩 만날 수도 없으니 말이다. Post Canada에서 무료 우편 엽서를 보내왔다. 펜데믹 상황에서 고립된 사람들끼리 안부라도 물으며 위안을 주고받으라는 취지로 나온 아이디어로 짐작된다. 좋은 뜻이 고마워서 막상 엽서를 쓸려고 하니 보낼 곳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생각나는 사람도 별로 없고 뜬금없이 엽서를 보내기도 좀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저것 생각 않고 편히 인사할 수 있는 지인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지난 6..

단상/반성 2021.09.02

왜 글을 쓰는가 2

그 놈의 역병 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지면서 시간을 유용하게 보낼 방법을 생각하던 중 불현듯 글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 전문 교육을 받은 바가 없고 독서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 글을 자주 써온 것도 아닌 사람이 말이다. 회사 생활 중 문서는 많이 다루어 보고 사보 기자 하면서 깔끔하게 쓴다는 칭찬을 받는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내본 용기일 수도 있겠다. 60 여년 지난 생활을 돌이켜 보면 나름대로 참 많이 보고 들었고 고민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걸 바탕으로 아는 체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희미한 기억 뿐이다. 이것 마저 조만간 사라져 버릴 것인데… 남이 기억해줄 만한 업적이 없으면 나라도 나를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생의 마지막 문턱에 서서 자신에 대한 ..

단상/글쓰기 2021.09.01

왜 글을 쓰는가 1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말을 한다. 하지만 그것을 글로 남기는 일은 드물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게으름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은 쉽다. 그냥 떠 올려진다. 오만가지 생각이라고 하지 않는가. 하지만 글로 쓰는 것은 다르다. 주제를 정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구성하고 다듬고… 집을 짓는 것과 같은 과정이 필요하다. 보통의 사람은 자신의 집을 짓기 보다는 남이 지어 놓은 집에서 사는 것을 더 선호한다. 둘째, 증거를 남기기 싫어한다. 글은 남는다. 한번 써 놓은 것은 변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으니 오롯이 내가 쓴 것은 내 책임으로 남는다. 허튼 생각이나 그냥 해본 소리라면 누가 그것에 대해 책임지고 싶어하겠는가? 깊이 없는 생각이나 말로 자신의 낮은 수준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단상/글쓰기 2021.09.01

윤활유 한 방울 1

예절은 윤활유와 같은 것이라고 한다. 서로를 배려하는 예절은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불편한 마찰을 줄여 준다. 팬데믹 상황이 장기화 되면서 뉴노멀(New Normal)이 정착되고 있는 이때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따라서 걷기에 대한 뉴 에티켓(New Etiquette)도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1. 두 사람 이상 걸을 때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종대 대형으로 변경해서 최대한 간격을 유지해 준다. 2. 서로 스쳐 지나갈 때에는 하던 말을 멈추어서 비말 비산에 대한 우려를 줄여준다. 3. 조깅을 하는 사람은 속도를 줄이거나 걷기로 바꾸어서 맞은편 사람이 거친 숨소리를 느끼지 않게 해 준다. 4. 도로를 걸을 때 마주 보고 오는 사람이 있으면 상대편이 비켜 주기를 기다..

단상/예절 2021.09.01

행복의 조건

행복하고 싶은가? 그러면 행복하다고 생각해라. 우문 현답 같지만 정답이다. 행복은 정신적 영역의 문제지 물질적 영역으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주위 환경이 행복하기 때문에 내가 행복한 것이 아니고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주위 환경이 행복한 것으로 보인다. 행복은 감정이다. 햄버거 한조각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진수 성찬을 앞에 두고도 불만족해 하는 사람도 많다. 같은 교통체증에 갇혀 있어도 느긋이 음악을 듣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행복은 내가 느끼는 감정이지 환경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다. 행복의 조건을 외부 환경에서 찾으려고 하면 거의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외부 환경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주식 시장을 내..

단상/행복 2021.09.01

잡초찬미

3달전 새집으로 이사했다. 집을 구할 때 뒤뜰이 제법 넓고 큰 나무가 몇 그루 있어서 산속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나무 아래는 그늘이 져서 잔디가 잘 자라지 못한다. 그래서 뒷마당에는 산속 트레일을 걸을 때 밟히는 온갖 잡초가 잔디와 반반 씩 영역을 나누어 자란다.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몇몇 식물들에게만 이름을 붙여 부르고 나머지는 그냥 뭉뚱그려 잡초라고 부른다. 하지만 비료 주고 김 매주는 잔디는 쉽게 시들고 잡초는 뽑고 잘라도 끈질기게 되살아난다. 약초 캐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식물들도 잔디만 가꾸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잡초다. 하지만 잔디 먹고 병 나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인간이 자연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 중 하나가 단일 작물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것이라고 ..

단상/자연 2021.09.01

타타타

갑자기 ‘타타타’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김희갑 선생님이 작곡하고 가수 김국환씨가 부른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하며 핫핫핫 웃는 가사가 인상적인 노래의 제목이다. 브리트니 백과사전을 책장에 장식용으로 꽂아 두고 흐뭇해 하던 시대가 있었는데, 이제는 손으로 몇 자 치기도 번거로워서 “Hey Google”하고 불러 “타타타의 뜻?”하고 묻자 내가 궁금했던 답을 주르르 나열해 준다. 산스크리트어로 ‘그래 그거야’라고 번역되기도 하며, 내면의 뜻은 ‘있는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 진리’를 의미한다고 한다. 정보가 필요할 때 입만 움직이면 즉각 그럴듯한 정보들이 내 눈앞에 나열되는 참 편한 세상에 살고 있다. 물론 그 중 내가 가장 맞다고 믿는 것을 선택해야하는 부담은 있지만… 그러다 보니 ‘귀명..

단상/일상 2021.08.30

♥행복했던 순간 1♥

검은 바다 위로 훤한 보름 달이 떴다. 어두운 물빛에 황금색 달빛이 내려 꽂히니 파도가 눈부신 파편이 되어 내 눈을 시리게 만든다. 실눈을 떠서 위를 쳐다보니 총총한 별들이 구름사이 여백을 장식하고 있다. 험한 바위벽이 병풍이 되고 나는 그 아래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바위 턱에 오도카니 앉아 사방을 둘러본다.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푸르스레한 캐비나이트 불빛이 인간이 만든 유일한 빛이다. 바위를 때리는 파도 소리가 시원하다. 고립 무원의 무인도 갯바위 위에 이제 나는 완벽하게 자연에 둘러 싸여 있다. 일렁이는 물결 아래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순간, 흔들리던 캐비나이트 불빛이 물속으로 쑥 사라진다. 왔구나! 반사적으로 휘~잉 소리가 나도록 릴대를 잡아챈다. 낚싯대 끝이 물속으로 마구 처박힌다. 있었..

단상/행복 2021.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