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흔적 없애고 추억 남기기 1

Chris Jeon 2021. 9. 3. 02:12

 

  이제 나이가 60 중반에 가까워지니 대화의 주제도 달라져서 이전까지는 거의 금기시했던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러워진다. 다른 이들의 생각도 살펴보고 내가 죽음을 맞이한 이후 남은자를 위한 배려도 생각해볼 필요를 느낀다.

 

  아무래도 나보다 오래 남아 있을 것 같은 아내의 의견을 물어보니 나를 그냥 떠나 보내기는 아직은 조금 섭섭한 듯 무엇인가 추억할 만한 흔적을 남기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 매장 보다는 화장이 낫다는 것에는 마지 못해 동의했지만 화장 후 유골 처리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 아내는 최소한 유골함이라도 적당한 곳에 모셔 놔야 보고 싶을 때 찾아갈 곳이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 뜻이 우선 고맙다.

 

  힘들었던 경험도 추억이 되면 그립고 좋아 보이는 법이다. 그래야 인간이 산다. 부정적인 경험이 계속  힘들게만 한다면 나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탈진할 가능성이 높다. 망각이나 기억 왜곡과 같은 기재들은 조물주가 인간을 위해 만든 걸작품이다.

 

  가까이 있던 사람이 떠나고 나면 평소에 그 사람에 의해 겪은 힘들었던 경험에 대한 부정적 감정은 대부분 망각되고 왜곡되어서 긍정적으로 변하고, 오히려 그리워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것은 내 감정이다. 매몰차게 말하면, 실재하는 것이 아닌 그냥 내가 살아남기 위해 뇌가 만들어 내는 감정이고 착시 현상일 뿐이다.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의 원숭이 손이라는 짧은 단편 소설이 있다. 나는 그것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공포 소설보다 더 리얼한 공포를 느꼈다. 내 기억을 더듬어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외아들이 있는 어느 부인이 마른 원숭이 손을 갖게 되었다. 그 손은 신비한 힘을 갖고 있는데, 3가지 소원을 들어준다. , 조건이 있으니 그것은 한가지 소원이 이루어질 때 마다 다른 한가지의 나쁜 일도 일어난다는 것이다. 당시 돈이 궁했던 부인은 일정 금액의 돈을 얻는 것을 첫번째 소원으로 말했고, 원했던 돈은 얻었으나 자신의 외아들을 잃게 된다. 아들이 일하던 공장에서 사고로 죽고 그 사고에 대한 위로금으로 부인이 원했던 바로 그 금액의 돈을 받게 된 것이다.

 

  후회와 자책감에 몸부림치던 부인은 남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번째 소원을 말한다. "죽었던 아들이 다시 돌아오게 해 달라고…" 그날 밤 부인은 문밖에서 누군가 힘겹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게 되고 그 정체가 무덤에서 나온 아들임을 안다. 거의 실신 상태에 이른 부인을 대신해서 남편이 원숭이 손에게 아들이 다시 무덤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마지막 소원을 외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무덤가에 꽃을 바치며 다시 한번 보고 싶다고 우는 사람에게 감동한 시신이 무덤에서 걸어 나오는 광경은 그 소설보다 더 무섭다. 추억은 추억 속에 있을 때 아름다운 법이다.

 

  요즘 장례 비즈니스를 하시는 분들의 아이디어가 다양하다. 유골 중 일부를 장식품으로 만들어 준다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DNA를 특수 용기에 보존한 것을 주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형태와 방법이 어쨌든 죽은 자의 신체 일부를 가지고 다닌다는 것이, 오래전 사람들이 죽은 자의 신체 일부를 기념품으로 끈에 꿰어서 목에 걸고 다니는 광경을 연상시켜 찬성하기 싫다.

 

  지금은 아니지만 교회도 이전에는 화장을 금했다고 한다. 부활을 고려해서다. 만약 내가 죽은 후 화장처리 되어 저승으로 갔을 때 거기 계신 어느 분이 왜 맨 영혼으로 왔느냐고 물었을 때 환경보호나 묘지 구하기 어려운 사정을 설명하고 새 몸 하나 달라고 부탁하면 들아 주실 것 같다. 만약 주지 않고 다시 세상으로 돌려보내면 더 좋고.

 

  세상을 떠난 자의 물리적 흔적은 가능한 남기지 않고 좋은 추억만 많이 남기는 것이 좋겠다. 물리적 흔적은 상하고 물리지만 추억은 항상 좋은 것으로 변하는 법이다. 이 글을 읽고 아내도 화장 후 가장 편한 곳에 나의 유골을 놓아주는 것에 동의하기를 기대한다. 대신 나는 그 때까지 가능한 좋고 많은 추억을 남기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하면서

 

202192

날씨가 갑자기 서늘해져서 세월 무지 빨리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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