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글쓰기

왜 글을 쓰는가 2

Chris Jeon 2021. 9. 1. 10:40

  그 놈의 역병 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지면서 시간을 유용하게 보낼 방법을 생각하던 중 불현듯 글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 전문 교육을 받은 바가 없고 독서를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실제 글을 자주 써온 것도 아닌 사람이 말이다. 회사 생활 중 문서는 많이 다루어 보고 사보 기자 하면서 깔끔하게 쓴다는 칭찬을 받는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내본 용기일 수도 있겠다.

 

  60 여년 지난 생활을 돌이켜 보면 나름대로 참 많이 보고 들었고 고민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걸 바탕으로 아는 체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 남아 있는 것은 희미한 기억 뿐이다. 이것 마저 조만간 사라져 버릴 것인데남이 기억해줄 만한 업적이 없으면 나라도 나를 기억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생의 마지막 문턱에 서서 자신에 대한 인식이 가물가물해지는 시점에 지난날의 희미한 기억을 아쉬워하기 전에 내 자신의 탁본을 만들어 두자.

 

  그냥 내가 해온 생각, 행동, 기억을 내 자신의 글로 형상화 시킨다. 누구에게 보여줄 목적이 아니니 숨길 것도 없고 지나치게 치장할 이유도 없다. 그냥 내 자신을 새겨 놓고 싶다. 남이 나를 기억해 주지 않으면 나라도 나를 기억할 수 있어야 하고 그 기억의 바탕이 글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쉽게 생각하니 망설임이 줄어든다.

 

  우선 에세이의 형식을 취한기로 했다. 이민 후 이곳 캐나다에서 수료한 ABC(Adult Basic Course) 영어 과정에서 배운 에세이 작문 방법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가능한 주제 – example – 결론의 구조를 살린 A4 한 장 분량 이내의 짧은 단문을 쓰기로 한다. 매일 떠오르는 주제를 그냥 내 생각대로 풀어내 쓰고, 이후 틈틈이 되새겨 수정한다. 생각이 안나면 그냥 안 쓰고 머리가 맑을 때면 몇 편이고 쓸 수 있으니 아주 마음 편한 작업이다.

 

  처음 시작하여 몇 편 써 놓고 보니 글쓰기 시작한 것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선 내 생각이 정리됨을 느낀다. 그간 산만하게 느껴졌던 생각과 기억들이 비교적 나름대로 정연하게 정리되는 것을 보게 되고 동시에 보완해야 할 점도 보인다. 이를 바탕으로 더 발전된 구상도 가능해질 것 같다. 이제 증거가 남으니 허튼 소리 대충 하기도 멋쩍어 자료도 자주 찾아보게 된다. 몇 편 마음에 드는 글이 써지면 나도 훌륭한 탤런트를 가졌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도 든다.

 

  써 놓은 글이 20여편을 넘자 욕심이 한가지 생겼다. 몸과 마음이 소진된 때가 오면 그간 써 놓은 글을 묶어 남은자에게 보여주겠다는 생각이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헉헉 거리는 대신에 내가 이렇게 살아왔다는 표시로 책 한권으로 정리된 나의 탁본을 점잖게 보여주고 싶다.

202062

날씨가 화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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