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자연

잡초찬미

Chris Jeon 2021. 9. 1. 08:48

 

 

  3달전 새집으로 이사했다. 집을 구할 때 뒤뜰이 제법 넓고 큰 나무가 몇 그루 있어서 산속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다가왔다. 나무 아래는 그늘이 져서 잔디가 잘 자라지 못한다. 그래서 뒷마당에는 산속 트레일을 걸을 때 밟히는 온갖 잡초가 잔디와 반반 씩 영역을 나누어 자란다. 인간은 자신이 좋아하는 몇몇 식물들에게만 이름을 붙여 부르고 나머지는 그냥 뭉뚱그려 잡초라고 부른다.  하지만 비료 주고 김 매주는 잔디는 쉽게 시들고 잡초는 뽑고 잘라도 끈질기게 되살아난다. 약초 캐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식물들도 잔디만 가꾸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잡초다. 하지만 잔디 먹고 병 나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인간이 자연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 중 하나가 단일 작물을 대량으로 재배하는 것이라고 한다. 온갖 식물들 중 가장 적합한 것들로 뒤덮여야 할 들판에 오로지 밀 한가지만 자라고 있으니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짐은 말할 것도 없고 자라는 단일 식물 역시 병충해와 같은 외부 공격에 대한 저항력이 크게 떨어진다고 한다. 이전에 살던 집에는 넓은 정원에 잔디가 곱게 가꾸어 져 있었다. 이민 와서 처음 가져본 잔디 정원이 마음에 들어 봄이면 머리를 내미는 잡초들을 그냥 두고 보지 못했다. 한민족의 은근과 끈기를 앞세워 호미 하나를 들고 며칠씩 쪼그려 앉아 그 많던 잡초들을 모조리 박멸했던 기억이 새롭다.

 

  새집 뒤뜰을 가꾸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야산 컨셉. 잔디도 좋고 잡초라도 좋다. 누구든 내 정원에서 살기를 원하고 살 수만 있다면 뿌리를 내려라. 대신 내가 서로 우쭐거리지 않게 키만 일정하게 깎아 주겠 노라고. 이제 뒤뜰에는 잔디 반 잡초 반이 사이 좋게 자라난다. 이름 모를 들꽃들도 한자리 씩 차지했다. 이제는 쪼그리고 앉아 내편 네 편을 가려 호미질을 하지 않아도 되니 몸과 마음이 편하다. 비료를 뿌리지 않아도 알아서 잘들 자란다. 간혹 물주기를 걸러도 불만이 없다. 누가 잡초를 잡초라고 불렀는가? 인간이 좋아한다고 잔디고 잔디가 아니라고 잡초라고 부르는 인간의 편협함이 안쓰럽다. 모두가 다르고, 다름이모여서 조화되고 강해짐을 잡초를 통해서 배운다. 이제 잡초라는 말 대신 들풀이라고 부르겠다. 더 좋은 호칭이 있으면 알려주시길…

 

2020년 6월 4일

뒤뜰에 핀 들꽃을 보다가

 

'단상 > 자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캐나다 숲, 물 그리고 단풍 3  (0) 2021.10.11
캐나다 숲, 물 그리고 단풍 2  (0) 2021.10.11
캐나다 숲, 물 그리고 단풍 1  (0) 2021.10.11
천의무봉(天衣無縫)  (0) 2021.08.28
별라  (0) 2021.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