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행복

♥행복했던 순간 1♥

Chris Jeon 2021. 8. 29. 11:35

 검은 바다 위로 훤한 보름 달이 떴다. 어두운 물빛에 황금색 달빛이 내려 꽂히니 파도가 눈부신 파편이 되어 내 눈을 시리게 만든다. 실눈을 떠서 위를 쳐다보니 총총한 별들이 구름사이 여백을 장식하고 있다. 험한 바위벽이 병풍이 되고 나는 그 아래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바위 턱에 오도카니 앉아 사방을 둘러본다.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푸르스레한 캐비나이트 불빛이 인간이 만든 유일한 빛이다. 바위를 때리는 파도 소리가 시원하다. 고립 무원의 무인도 갯바위 위에 이제 나는 완벽하게 자연에 둘러 싸여 있다.

 

   일렁이는 물결 아래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순간, 흔들리던 캐비나이트 불빛이 물속으로 쑥 사라진다. 왔구나! 반사적으로 휘~잉 소리가 나도록 릴대를 잡아챈다. 낚싯대 끝이 물속으로 마구 처박힌다. 있었구나, 파도아래 그 무엇이... 그 무엇의 요동이 낚시대를 통해 내 몸에 전달된다. 달빛, 파도, 바위, 적막함에 더해 소름 끼치게 생생한 생명의 꿈틀거림이 버무려진 황홀감에 취해 일순 다리에 힘이 빠진다. 사투는 끝났다. 쿨러를 뒤져 소주병을 잡는다. 싸한 기운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동안 나는 내가 진정 살아있음을 느꼈다.

 

2020년 6월 2일

남해 어느 무인도 갯바위 밤 낚시 추억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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