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설 23

나 자신의 하자 보수 1

하느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나서 “참 좋았다”란 감탄사를 남기셨다. 그리고 당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시고 그 좋은 세상에 살도록 하셨다. ‘화룡점정畵龍點睛)’ 하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사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 참 좋다는 생각이 항상 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 볼 것 없이 나 자신을 곰곰이 뜯어보면 하자가 한 두 곳이 아니다. 만약 이런 상품을 쇼핑몰에서 판매하면 즉시 환불 요청이 들어올 것 같다. 창조주께서 그동안 너무나 많은 인간을 창조하시다 보니 나 같은 불량품도 생겼을 것이라는 우스개말도 해 본적이 있다. 불행히도 인간은 한번 만들어지면 반품이나 신품으로 교환이 안된다. 버리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고쳐 써야한다. 설사 불량품이 아니더라도 험한 세상에서 살다 보면 먼지도 ..

요설 2021.09.14

추수

봄에 씨를 뿌리고 가을에 곡식이 익으면 추수를 한다. 씨를 뿌리고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고, 가뭄이 들 때면 등짝이 타는 듯한 땡볕 아래 물을 주는 것은 농부의 일이지만, 사실 알고 보면 곡식이 익어가는 대부분의 과정은 하늘이 하는 일이다. 그 누가 뿌리로부터 볍씨까지 영양분을 나를 수 있으며 알곡이 적당히 익도록 만들 수 있을까? 모든 것은 하늘이 주관하고 인간은 거저 하늘이 주신 잔심부름만 할 뿐이다. 때가 되면 알곡은 거둬진다. 밑동이 잘리고 볍씨가 털려 가마니에 모아지고 배고픈 인간들의 입속으로 들어가서 우리가 산다. 잘려진 몸통은 볏단이 되어 지붕이 되고 지푸라기는 거름이 된다. 볍씨 중 실한 놈은 내년을 위한 종자로 선택되어 창고에 갈무리된다. 한 알의 볍씨에서 출발해서 모가 되고, 커서 벼가..

요설 2021.09.10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보이지 않는 손)’ 란 말이 있다. 원래 경제학 용어였는데 다양한 분야에 원용된다. 한 예로, 지구도 유기체와 같아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필요한 대응을 하는데, 이를 위해서 그가 당면한 불균형을 보이지 않는 손, 즉 그 어떤 초월적인 힘으로 조절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남 여의 성비가 극히 불균형한 상태에 있을 때, 우연의 일치로 보여지는 큰 전쟁이 난다는 식이다. Covid 19 사태가 작년에 처음 시작 되었을 때 SNS상에 ‘부머 리무버(boomer remover)’란 신조어가 돌아 다녔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베이비 부머(baby boomer) 세대 즉 1950년대 이후 태어난 꼰대 세대를 제거하는 바이러스라고 빗대어 한 말이다. 그 당시 나이 드신 분, 특히 요..

요설 2021.09.04

곰곰이 생각하며 읽기

하느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고자 그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고 아브라함은 이에 순종한다. 창세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후세의 사람들은 이를 하느님께 대한 지극한 믿음의 모델로 삼고, 하느님이 그의 믿음을 확인 후 축복의 근원으로 삼으셨다며 하느님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을 찬양한다. 나를 시험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신분은 하느님이시다. 그런데 왜 정작 본인은 인간을 시험하는가? 남이 내게 하는 싫은 짓은 나도 남에게 하지 말하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면, “시험” 역시 그 분으로서는 하지 말아야할 것 중 하나다. 성경의 내용을 한단어로 축약하면 ‘사랑’이라고 한다. 사랑의 하느님께서 인륜을 거슬러는 친자살해를 믿음을 확인하는 방법으로 사용하셨다면, 목적이 방법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인간의 상식적..

요설 2021.09.03

방탄복 입은 순교자

저항군 거점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탈레반 전사의 모습인데, 순교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방탄복을 입고 있다. 순교를 하더라도 더 많은 적을 죽이고 난 이후여야 한다는 실리적인 명분이 있겠으나, 죽고 사는 것은 신의 뜻이라는 평소의 그들의 믿음과는 왠지 아귀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간이 사는 동안에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명제를 생각할 수 있음으로 인해 종교가 탄생되었을 것이라는 종교학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죽기 전까지는 죽음을 겪어볼 수 없는 한계로 인한 불안 때문에 신이라는 존재를 찾게 되었다는 논지다. 이생에서 생을 마감한 후에 벌어지는 부활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나의 죽음은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생각해 보니 3가지 정도로 크게 나눌 수 있었다. 첫째는 우연히 결정된..

요설 2021.09.02

창조와 진화 2

유튜브 상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중 어느 것이 더 우수한 것인가를 놓고 논쟁한다면 시청자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난센스임을 안다. 본질이 다른 두가지를 놓고 비교하는 것 자체가 성립이 안되는 논쟁이므로 바위와 장미 중 어느 것이 더 아름다운지를 놓고 다투는 꼴이다. 스토리와 과학이론은 본질이 다르다. 스토리는 주제를 전달하고자 만든 이야기다. 과학은 자연의 이치를 관찰하여 세운 가설을 논리적 증거를 바탕으로 입증한 것이다. 단군 신화는 홍익 사상을 담고 있는 이야기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인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논문으로 입증하려고 시도한 사람은 없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뉴턴이 사과가 아래로 떨어지는 자연 현상을 관찰하고 세운 가설이 과학적 증거로 입증된 이론이다. ..

요설 2021.09.01

창조와 진화 1

믿고 본다. 보고 믿는다. 종교와 과학의 차이를 간단히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재치있고 일리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된다. 창조론자와 진화론자는 대척점에 서 있고 그들이 서로 합일점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일 때가 있다. 우연한 진화에 의해 인간과 같은 정교한 생명체가 만들어질 확률은 인쇄소가 폭발해서 활자들이 날라가 벽에 박혔는데 우연히 성경책이 만들어질 확률과 같다. 진화론은 불완전한 증거라도 있지만 창조론은 그 불완전한 증거조차 없다. 평행선을 달리는 양자의 주장에 삼각형의 꼭지점은 보인지 않는다. 소나무가 자라는 야산에 사는 참새의 눈에 보이는 나무의 성장 과정은 어떨까? 어느 날 나무씨가 땅에 떨어져 싹이 트고 대부분의 어린 나무는 말라 죽고 그중 일부가 조금씩 자라 소나무의 모습이 갖춰진다. ..

요설 2021.09.01

공허한 메아리

어느 회사에서 겨울철을 맞아 불조심 캠페인을 했다. 사장님이 전 직원을 모아 놓고 불조심하자고 했고, 부장은 과장에게, 과장은 대리에게, 대리는 사원에게 불조심을 강조했다. 불조심하라는 말을 들은 말단 사원은 창밖을 향해 “불조심”하고 외쳤다고 한다. 물론 지어낸 이야기이겠지만, “How to”가 없는 슬로건은 공허하다는 것을 꼬집는 예다. 우리는 자주 추상적인 목표만 제시하고 그 실천 방법은 등한시하는 우를 범한다. 마치 골프장 18홀을 드라이버만 갖고 라운딩 하는 것과 같다. 홀에 공을 넣기 위해서는 아이언도 필요하고 마지막 승부는 가장 정교하고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퍼팅이 결정 짓는다. 추상적인 목표는 방향은 제시해 줄 수 있을지 언정 그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은 없다. 최고 리더는 크고 넓은 안목..

요설 2021.09.01

브라질에 세워진 큰 불상

카톨릭 신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브라질에 거대한 불상이 세워졌다. 이 불상은 브라질 유명 볼거리 중 하나인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보다 5M 더 크고, 앞으로 유명 관광 명소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현지 언론이 밝혔다고 한다. 부처님의 공덕과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것에 일부 특정 종교에 편집증을 가진 신자를 제외하고는 반대할 사람이 적을 것이다. 사실 불상도 석가모니께서 만들라고 하신 적은 없지만, 무엇인가 보이고 만져져야 느낄 수 있는 인간의 한계에서 만들어진 것임에 이를 탓할 수만은 없다. 하지만 필자는, 언론에서 강조한 ‘이루데자네이루 예수상보다 크다’ ‘관광 명소가 될 것이다’라는 말에 일종의 거부감을 느낀다. 사실, 사람들은 교회의 십자가 수와 범죄율이 반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요설 2021.08.30

나무늘보

조직 중에서 가장 변화가 느린 조직은 무엇일까? 2000년전 쓰여진 성경은 일점 일획도 고칠 수 없다고 강조하는 리더가 존재하고 과학적 논리로 입증되어지고 있는 진화론을 적대시하고 “7일만에 우주가 만들어 졌음을 믿읍니다”라고 외치는 이들이 믿음이 강한 멤버로 인정되기도 하는 조직, 교회가 바로 그 질문의 답 중 하나가 아닐까 반성해 본다. “변화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 모든 것이 변화한다는 진리다”라는 명언이 있듯이 교회도 그 변화를 비켜갈 수는 없다. 종교가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고 과학이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Science without religion is lame, religion without science is blind). 과학과 종교는 서로 배척하는 관계가 아니라 같이 가야하는 것이다. ..

요설 2021.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