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설

방탄복 입은 순교자

Chris Jeon 2021. 9. 2. 03:19

 

 

  저항군 거점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탈레반 전사의 모습인데, 순교자임을 자처하는 이들이 방탄복을 입고 있다. 순교를 하더라도 더 많은 적을 죽이고 난 이후여야 한다는 실리적인 명분이 있겠으나, 죽고 사는 것은 신의 뜻이라는 평소의 그들의 믿음과는 왠지 아귀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인간이 사는 동안에 죽음이라는 추상적인 명제를 생각할 수 있음으로 인해 종교가 탄생되었을 것이라는 종교학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죽기 전까지는 죽음을 겪어볼 수 없는 한계로 인한 불안 때문에 신이라는 존재를 찾게 되었다는 논지다. 이생에서 생을 마감한 후에 벌어지는 부활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나의 죽음은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생각해 보니 3가지 정도로 크게 나눌 수 있었다.

 

  첫째는 우연히 결정된다는 것이다. 살아 있는 생명체는 살려고 하는 본능이 있어 최대한 죽음을 피하려고 노력하지만, 질병, 사고, 노환 등과 같은 상황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본인의 의지에 따라 생을 마감하는 자살 역시 그 자살을 강요한 것이 상황이라고 우기면 얼추 일리 있는 생각으로 느껴진다. 대부분의 상황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냥 일어난 것이니 나는 주사위 놀이와 같은 확률에 의지하며 살고 있다는 무력감이 든다. 내가 상황을 만들어 간다는 동기부여 강사들의 말은 이러한 경우 조금 멀리서 들린다.

 

  두번째는 섭리에 의한 죽음이다. 신이거나 그냥 초월적인 힘을 가진 그 어떤 존재가 나를 세상에 내보내고 불러들이는 결정을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때가 되면 일어나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살아 생전에 그분의 뜻에 따라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긍정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나의 삶을 그분의 뜻에 100% 맡기고 나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맞는가 라는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든다. 내가 열심히 하는 것에 따라서 그분께서 나를 불러들이는 시간과 방법을 조정하실 지는 몰라도 불러 주시기만을 기다리는 나는 참으로 수동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마지막 세번째는 그냥 모른다는 것이다. 논어에 나오는 아직 삶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는 경귀처럼, 그냥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잊고 사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역시 논리적으로는 가능할 지 몰라도 유인원의 수준을 한참 벗어난 인간에게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겠다고 해서 죽음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모른다고 고개 저어도 내 머리에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떠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죽음을 미리 생각할 수 있는 생명체가 인간이 유일하다는 것이 맞다면, 인간이 되고 싶으면 우리는 죽음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지 않을까? 죽음의 본질과 죽음 이후의 세상이 과학적으로나 신의 왕림으로 명명백백하게 밝혀진다고 가정하면 인간은 더 이상 지금과 같은 인간으로 사고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될 수 없을 것 같다. 인간을 만들고 나서 참 좋았다고 하셨던 그분이, 우리가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남기신 신의 한수가 우리가 알 수 없는, 필연의 죽음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때로는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짐짓 잊고 살려고 노력하고, 그때를 기다리며 어려움도 참고, 그날 이후가 두려워서 행동을 삼가하고이 모든 것이 신이 우리에게 주신 특혜이니, 더 이상 죽음에 대해 파고들 필요가 없이 죽음에 대해 그때 그때 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순리라는 것으로 내 잡상스러웠던 단상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목숨을 걸고 싸움에 임하는 그들 전사들의 절박함에 대한 공감이 부족한 상태로 방탄복에 시선이 꽂힌 나의 협소한 인식이 미안해진다.

 

2021831

저항군 최후 거점 공격을 준비하는 팔레반 전사들의 사진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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