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설 23

신의 한수

세상은 공평, 공정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나만의 생각이 아닐 것이다. 선하게 산다고 모두 좋은 결과를 맞이하는 것도 아니고 노력한 만큼 이루어 진다는 확신도 없다. 죄 없는 아기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도 보게 되고 나쁜 짓을 많이 한 것이 분명한 사람이 더 잘 사는 것을 볼 때도 있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 돈독한 신앙심을 가진 분들이 많이 하시는 말씀, “그분의 섭리는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만약 내가 한 것만큼의 정확한 결과를 받는 세상이 된다면 어떨까? 어떤 방법을 사용하든, 노력도 계량화 되고 선과 악도 모두가 공감하는 척도를 만들어서 잴 수 있는 세상이 와서 그 결과에 따라 본인의 기대하는 만큼의 대가가 보장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이 될 것인가 상상해 본다. 나는 노력도 했고 선한 ..

요설 2021.08.28

누가 구원하는가?

홍수로 한 남자가 지붕위에 고립되었다. 독실한 신자인 그는 사방이 황토물 바다가 된 상황에서 하느님께 구해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였고 또한 구해질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한참이 지난 후 한 사람이 배를 타고 지나가다 지붕위에 있는 그를 발견하고 도움이 필요한지 물었고, 그 남자는 단호히 대답했다. 하느님께서 곧 구해주실 것이니 괜찮다고. 한참이 지난 후 2번째 사람이 지나갔고 하룻밤이 지난 후 3번째 사람이 왔지만 그 남자의 확신에 찬 대답은 한결 같았다. 이윽고 이틀째 되는 날 밤에 그는 불어난 황토물에 휩쓸려 죽고 말았다. 죽어서 저승에 간 그 남자는 하느님을 만나서 따져 물었다. 왜 저를 구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이 질문을 받은 하느님께서는 당황하며 되물었다. 아니 내가 너를 구하러 3명이나 보냈는데 ..

요설 2021.08.28

동정탄생에 대한 생각

성경은 글자 한 자 토씨 하나 고칠 수(것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다.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 고대어로부터 현대어까지,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온 성경이 그 원전과 완전히 일치한다고 할 수 없고 또한 번역 과정상의 오류는 없다 할지라도 시대적 배경이 다르고 과학의 발전 수준이 달라짐으로 인한 변화는 그 해석상에 반영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성경은 그 문자적 해석보다는 의미의 이해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동정 마리아께 대한 신앙고백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불편함으로 남는다. 위대하신 분의 탄생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한 story telling으로 이해하면 동정이란 단어는 의미의 본질을 훼손하지는 않는다고 내 나름대로생각해보지만, 내 입으로 “동정녀”를 외면서 머리까지 조아리는 것은 여전..

요설 2021.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