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설

공허한 메아리

Chris Jeon 2021. 9. 1. 01:16

 

  어느 회사에서 겨울철을 맞아 불조심 캠페인을 했다. 사장님이 전 직원을 모아 놓고 불조심하자고 했고, 부장은 과장에게, 과장은 대리에게, 대리는 사원에게 불조심을 강조했다. 불조심하라는 말을 들은 말단 사원은 창밖을 향해 불조심하고 외쳤다고 한다. 물론 지어낸 이야기이겠지만, “How to”가 없는 슬로건은 공허하다는 것을 꼬집는 예다.

 

  우리는 자주 추상적인 목표만 제시하고 그 실천 방법은 등한시하는 우를 범한다. 마치 골프장 18홀을 드라이버만 갖고 라운딩 하는 것과 같다. 홀에 공을 넣기 위해서는 아이언도 필요하고 마지막 승부는 가장 정교하고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퍼팅이 결정 짓는다. 추상적인 목표는 방향은 제시해 줄 수 있을지 언정 그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은 없다.

 

  최고 리더는 크고 넓은 안목으로 조직이 가야할 목표를 제시한다. 그 리더를 따르는 조직원들은 자신이 책임지는 범주에 따라 상위로부터 하위직으로 갈수록 점점 더 디테일한 실천 방법을 가져야 한다. 부하가 없는 리더라면 혼자서 목표 설정과 실천 방법을 다 강구해야 한다. 할머니가 손자에게 차 조심하라고 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차 조심할 수 있는지까지 이야기해 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이런 필요한 세부 사랑이 결여됨으로 해서 온갖 구호만 난무하고 정작 필요한 변화는 일어나자 않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 대표적인 예를 신앙생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믿은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한다. 의자를 보고 의자라고 믿는 것은 사실 믿음이 아니고 인지의 결과다. 안보이고 못 느끼는 것에 대한 믿음이니 외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무엇을 믿는가? ~님의 말씀을? 그 중 무엇을? 그 말씀이 뜻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조목조목 따져가면 창밖을 향해 불조심하고 외치는 것과 같은 공허한 믿음이 아닌, 내가 확신하고 실천할 수 있는 믿음으로 가까워질 것이다.

 

  예수님이 믿고 따르라하셨다. 여기서 따른다의 의미는 당신의 가르침을 실천하라는 의미로 해석하고 싶다. 믿음의 가치는 행함에 있기 때문이다. 실천하려면 당연히 그 가르침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하고 거기에 합당한 실천 방안이 나와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말로만 믿습니다를 외치는 것이나 가르침에 대한 자신만의 이해 없이 믿는다는 것은 공허하다.

 

  올바른 신앙 생활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묵상하고 의문을 가져야 한다. 올바른 믿음을 위해서는 무엇을 믿을 것인지, 그 믿음을 어떻게 행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구해야 하는데 모두 쉽지 않은 과제이니 나의 제한된 사고능력과 결심만으로는 충분치 않을 것 같다. 이래서 은총이 필요하고 성령이란, 내게는 다소 알쏭달쏭한 것도 필요한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어디 거저 주어지겠는가? “진인사대천명그저 최선을 다해 곰곰히 생각하면 어느 날 답이 떠오르겠지 라는 기대를 해 본다. 설사 답이 안 나타나면 어떠리. 정답을 안 주셨으니 일단 내 생각대로 하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될 터.

2021.07.06

내가 가진 믿음이 공허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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