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병이다.’
‘불을 끄면 더 멀리 본다.’
통하는 말인 것 같다.
고민고민 한다고 꼭 신통방통한 답이 나온다는 법이 없다.
‘장고 끝에 악수’ 라는 바둑에서 통하는 격언도 있고.
결국 내가 구축한 ‘신념의 체계’ 내에서 사고할 수밖에 없다.
일종의 창문 같은 것.
창을 통해 밖을 볼 수 있게 되지만, 나는 창이 보여주는 하늘만 본다.
“절대적인 가르침이라 믿습니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언제 한번 그것이 왜 절대적이냐고 물으면 안될까?
그러면 불경스러운 것인가?
성탄절 모래밭에서 싸우는 두 무리.
폭탄 떨구고 총 쏴서 숨어 떨던 민간인까지 싸잡아서 백여명 죽이는 전과 올렸다고 한다.
그들이 믿는 가르침이 잘못된 것인지, 그들이 참된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것인지?
차라리 그 가르침을 치워버리고 그냥 맨대가리로 생각하면 안될까?
내 눈을 가리고 내 생각을 틀에 가두는 그 알량한 신념의 체계를 부수는 것.
싸우면 나쁜 사람이라고,
유치원 다니는 아이도 안다.
'요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심하지 말지어라 (16) | 2024.10.26 |
---|---|
약속글 4: 기도에 대한 생각 (25) | 2023.01.17 |
자식과 로봇 (0) | 2023.01.07 |
되바라진 자식의 항변 (0) | 2023.01.06 |
내가 신부님이 된다면 (21) | 2022.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