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설

내가 신부님이 된다면

Chris Jeon 2022. 10. 25. 17:58

 

 

 

나는 신부 시켜준데도 안할란다. 적성에 안 맞다. 아니, 내가 할 수 있는 자질이 안된다. 그 정도는 내가 잘 알고 있지.

 

 

아예 나하고 거리가 아주 먼 일 상상하는 것이 때론 재밌다. 새롭기도 하고, 안 할 것이니 부담 없어 홀가분하고 그러니 더 솔직해 질 수도 있고.

 

 

내가 신부님이 된다면 다음과 같이 하고 싶다.

 

 

1. 성가대 노래 부르는 속도를 지금 보다 두배쯤 빠르게. 즐거운 노래나 장중한 노래나 모두 장송곡 부르는 속도다.

 

2. 교우들에게 좀 밝은 색 옷 입고 오라고 틈틈이 당부한다. 크리스마스 때도 검정색 일색이다.

 

3. 제발 내자리라고 매주 같은 자리 앉지 말고 옮겨 앉아서 새 친구 좀 사귀고.

 

4. 성당 입구 들어올 때 죄 지은 사람 마냥 고개 숙이고 발끝으로 걷지 말고 친정집 찾아오듯 기쁘고 즐겁고 당당하게.

 

5. 기도할 때 “이 죄인” “비천한 종” “죽여 주소서” 같은 막말 가능한 사용하지 말고, 밝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말로 바꾸기. 솔직하게 내가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말하기. 실제로 그분이 죽여주겠다고 하면 좋을까?

 

6. 신부님 존중하는 것은 좋지만 무슨 절반의 신 같이 대하지 말고 친한 친구처럼 대하기. 그래야 나도 숨 좀 쉬고 살지. 나도 인간이다.

 

7. 미사 끝나고 인사한 후 종적도 없이 사라지는 신부가 아닌, 친교실에서 교우들과 같이 밥 먹고 농담도 따 먹는 신부가 될란다. 밥그릇은 교우가 내 테이블로 가져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직접 줄 서서 가져온다. 나이드신 분에게는 순서도 양보하고.

 

8. 봉자사 부족하다고 말만 하지 말고 주변에 할 만한 사람 있으면 하라고 부탁하고. 은근히 누가 자기에게 권하기를 기다리는 사람 많다. 마지 못해 하는 척하다 보면 열심히 하게 되고. 그냥 주보에 ‘봉사자 구합니다’ 안내만 보고 달려올 조선사람 많지 않다.

 

프로페셔널한 봉사자 구하지 말고, 좀 어눌하더라도 열심히 하시는 분 모셔오고. 봉사자가 뭐 탤런트는 아니지 않는가? “아나운스의 기도가 더 잘 응답 받나?”

혹시 봉사자 본인이 탤런트라는 교만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9. 친교실에 잘 설치된 기기들 쉽게 활용하게하고. 예를 들면 노래방 기기 일년에 한번 사용할 할까 말까? 궁금해서 물어보니 사용하려면 신부님 허락 받아야 한다고.

평소에는 다른 일에 방해만 안된다면 누구나 기분 한 번 풀 수 있도록 open.

 

성가대 인원 모자란다고 계속 주보에 성가대원 모집한다는 글만 내놓지 말고, 1주일에 한번씩 성가대 주관으로 노래연습 교실 개최해 보지. 가요도 좋고 고상한 노래도 좋고. 즐겁게 기쁘게 스트레스 풀자. 노래 좋아하는 사람 노래 잘 부를 확률 높고, 지휘자가 눈 여겨 보다가 그런 사람 모이면 답싹 성가대원으로 모시면 되지.

 

10. 교회 웹사이트에 공개토론방 개설. 되는 소리, 안되는 소리, 쓴소리, 단소리 모두 들어야 귀가 뚫린다.

 

11. 젊은이들 활동은 무조건 장려, 그들이 교회의 미래다. 미사 후 공지 사항 안내할 때 청년부 활동 안내는 대부분 그냥 넘어간다. 아마도 영어로 쓰여 있기 때문이 아닐까? 공지 하시는 분 연세가 좀 많거든.

 

12. 어린이 성경 교실 교사는 심사숙고해서 정한다. 아이들은 그냥 받아들인다. 내가 들은 쇼킹했던 이야기 하나. 어느 어린이 성경 교실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마리아님은 너희들의 제1 엄마, 지금 어머니는 제2 엄마.” 이후 어떤 설명이 따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들은 어린이들은 어떤 생각을 먼저 했을까? “우리 엄마가 둘이래” “그러면 제 1엄마가 더 중요하신 엄마네 ???”

 

13. 사목회의 할 때 원탁에서. 사목회장은 교회 운영 파트너. 야당 성격으로 간주. 아무 말 안하고 듣기만 하는 위원들은 집에 가라고 하고. 필요하면 위원 연수도 좀 시키고.

 

14. 성모회. 미사 후 밥만 주로 하더라. 성모회가 아니라 식모회 같다. 이름에 걸 맞게 성모가 될 수 있는 공부 프로그램도 좀 넣고, 즐거움도 좀 줄 수 있는 행사도 하고. 무엇인가 즐거워야지 열심히 할 맛이 나지 국 끓이고 밥만 짓는다면 누가 오래 열심히 하랴. 임기 끝날 날만 기다리지.

 

15. 교회 장기 비젼도 만들어 보고. 신부님 3~5년 이면 바뀌는데, 그럼 누가 긴 안목의 비전을 제시하나? 내 있을 때 한번 만들어 보지. 그대로 되든 안되든.

 

16. 미사 후 친교실에서 모여 친교 한다는데, 밥/국 끓여서 판다. 그러니 대부분 복작대는 테이블에 밥,국 차려 놓고 잘 아는 친구끼리 모여서 열심히 드신다. 식사 다하고 나면 얼얼한 입 닦고 집으로 돌아간다.  나이드신 분들이 많으니 뜨끈한 국과 밥이 필요하다. 이해된다. 로컬 성당보니 핑거 푸드 집어 먹으면서 이 테이블 저 테이블 왔다갔다하며 이야기 많이 하던데. 대부분 나이 드신분들. 식성이 달라서 그런가 보다. 그러면 우리 한국 교우들은 태생부터 친교에 불리하구나.

 

17. 나도 공부 해야한다. 전문 지식은 풍부하니 됐다고 보고, 주변 지식 학습해서 폭을 좀 넓히자. 공부란 것이 꼭 도서관에 꽂힌 책보면서 해야 하는 것 아니지. 운동도 하고, 산과 들에도 나가보고, 치맥도 해 보고… 인생살이 땀내를 맡아보자. 그러던 중 영혼에 혹시 때가 묻으면 자기전에 기도 하면서 탁탁 털면되지. 해봤으니 이젠 알잖아?

 

 

더 생각하며 더 많이 나올 것 같다. 오늘은 여기까지. 되는 말 안되는 말 쏟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네. 그런데 나만 봐야하나? 다른 사람이 보면 나 욕 먹을 것 같다. 낙서로 하고 댓글 닫을까? 일단 자고나서 좀더 생각해 보자.

 

 

2022년 가을 막바지

그동안 속으로 궁시렁거리던 것들 글로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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