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237

다람쥐가 가져온 상념

뒤뜰에 사는 다람쥐가 선물을 가져왔다. 야생 호두 스무 개가 문 옆 구석진 곳에 놓여 있다. 문 앞에서 두발을 모으고 서 있는 모습이 이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해서 먹던 땅콩을 짐짓 흘려준 것이 고마워서 일까? 일단 참한 뜻을 받기로 하고 두 알만 남기고 나머지는 집안으로 들였다. 너의 마음은 안다. 그만큼의 호두를 모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올겨울을 새끼와 나기 위해서 그 작은 입이 얼얼하도록 물어 날랐을 것이다. 일단 문 앞에 두고 시간 날때마다 땅을 파고 묻을 작정이었겠지. 내 문 앞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믿음이 밉지 않다. 그 많은 호두를 하루 밤사이 다 묻을 수는 없을 터 밤사이 스컹크나 라쿤이 뺏아갈 것 같아 매일 두 개씩 내놓기로 한 것이다. 기특하게도 내 뜻을 알아차린 것인지 밤사이 두 알씩..

단상/일상 2021.09.15

낚시 8맛

1. 친구가 생긴다 술꾼들이 술 인심 후하듯이 낚시꾼들은 낚시 정보에 인색하지 않다. 공통 관심사를 갖고 아낌없이 퍼주는 분위기가 조성되니 낚시 이야기를 나눌 때만큼은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된다. 2. 상상의 나래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여행을 계획할 때가 더 즐겁다고 했다. 어디로 갈까? 그곳은 어떤 풍경일까? 몇 호 바늘을 맬까? 어떤 놈이 물까?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편다. 맛있는 것 먹을 때 보다 맛있는 음식 상상할 때 침이 더 흐르는 법. 3. 가는 길이 즐겁다 고기는 이른 새벽이나 해 저물 때 잘 문다. 새벽에 작은 낚시배를 타고 바다로 나서면 해돋이를 볼 수 있다. 뱃전에 앉아, 파도를 이고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다. 4. 기다림의 묘미 만약 매 1..

단상/재미 2021.09.14

내 맘 니가 알고 2

개도 사람 마음을 읽는다. 독일의 한 연구소에서 나온 실험 결과를 소개하는 신문 기사의 제목이다. 내용을 보니, 개는 주인의 행동을 보고 최소한 그것이 의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우연한 실수에 의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가 아니지만 나는 기사를 읽고 한가지 의문을 가졌다. 그 연구 결과로 인해 ‘개는 인간의 행동을 100% 읽는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라는 것이다. 전문을 원문으로 읽지 못한 나로서는 그냥 의문을 가져보는 수준이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개가 인간의 마음을 읽을 수도 있다’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영화 장면 중 한참 사랑을 나누던 여인이 연인에게 돌연 살해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연인이, 사실은 살해 목적을 가진 킬러였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 속 이..

단상/소통 2021.09.13

행복했던 순간 3

캐나다로 이민 와서 처음 정착한 B.C주에 있는 작은 도시는 마치 고향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물론 낯선 이국 땅에 처음 발붙이고 산 곳이니 그러겠지만, 천당 보다 조금 못한 999당이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문자 그대로 산 좋고 물 좋은 곳이어서 더욱 정이 가는 곳이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이민 초기의 어려움을 많이 어루만져준 한 local 성당은 마치 고향 부모님 집과 같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아내를 따라 운전 기사로 성당을 다닌지 거의 8년 만에 세례를 받았다. 청강생 보다는 정식 졸업장을 받아 두는 것이 나중에 뵐지도 모르는 그분을 만날 때 더 유리할 것이라는 세속적인 계산이 마음속 저 밑바닥에 깔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정식으로 성당 재적 학생이 되고난후 나름 열심히..

단상/행복 2021.09.11

행복했던 순간 2

방학이 시작되는 날 늦은 오후다. 겨울 방학은 길다. 1달 넘게 수업 안 받아도 되고 매일 숙제 걱정도 없다. 참 편하고 기쁘다. 눈발이 가끔씩 날리지만 찬 바람은 대부분 문풍지가 막아주니 온돌방이 따듯하다. 아랫목에 깔아 놓은 캐시밀론 이불속에 드러누워 무협지를 읽는다. 무협지는 참 재밌다. 하늘을 나는 주인공은 잘 죽지도 않는다. 그러나 악당은 결국 죽고 만다. 엄마는 무엇이라도 읽으면 좋다고 내가 무협지 읽는 것을 별로 말리지 않는다. 오히려 간식거리로 튀긴 강냉이를 넣어 주셨다. 집이 조용하다. 스르르 잠이 온다. 뜰에 있던 내 강아지가 심심한지 몇 번 짖다 멈춘다. 방학 첫날, 재미있는 읽을 거리, 맛있는 간식, 친구 강아지와 함께 있으니 난 참 행복하다. 초등 학교 2~3학년 때 내가 적은 일..

단상/행복 2021.09.11

오랜만의 라운딩

골프는 참 좋은 운동이다. 돈과 시간이 좀 많이 든다 싶어 그렇지 70이 넘어도 age shooter를 노려볼 수 있는 운동이라서 더 매력이 있다. 아주 오랜만에 필드에 나갔다. 후배분들이 고맙게도 초청해준 덕이다. 약속일 전 평생 잔소리꾼인 아내가 조언을 준다. 옛날 생각 잊어버리시고 마음 편히 즐기다 오세요. 맞은 말이다. 당연히 그래야지. 티 박스에 서니 약간 현기증이 난다. 주위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나무와 풀들도 나를 지켜보는 것 같다. 순간 몸이 뻣뻣해지고 드라이버의 바람 가르는 소리에 비해서 공은 초라하게 러프로 힘없이 휘어져간다. 세컨드 샷 거리가 많이 남았다. 조금이라도 더 가야지 하는 마음에 평소 잘 안 썼던 3번 우드를 잡는다. 공이 놓인 곳이 풀이 긴 러프임을 깨닫지 못한다..

단상/반성 2021.09.11

왜 글을 쓰는가 3

‘숙성’이란 단어의 뜻을 천천히 익어가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멋스러워 보인다. 글자 순서를 뒤집으면 ‘성숙’이 되니 더욱 그렇다. 글쓰기를 하면서 컴퓨터에 ‘숙성방’을 만들어 현재 작업 중인 글을 넣어 둔다. 불완전했던 글이 술 익어 가듯 천천히 맛있게 익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드러내고 싶은 교만, 곰곰이 생각 않는 조급함, 너무 뜨거웠던 감정. 이런 것들이 곰삭아 내 글이 성숙되어 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이번 글이 부족하면, 다음 글의 키가 더 자랄 것을 기대하면서. 아이를 키우듯, 만사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다리는 지루함 보다 자라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이 더 크다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지혜를 글을 쓰며 배운다.

단상/글쓰기 2021.09.09

사랑도 배워야 하나?

본능과 이성을 생각할 때 사랑하는 마음은 본능일까, 배워야 하는 이성일까? 새끼를 품고 있는 제비를 보면 본능인 것 같기도 하고 제 아이를 죽이는 엄마를 보면 이성인 것 같다. 사랑을 타고 났다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사랑이 결핍된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문제아 되기 쉽고 이웃 사랑을 외쳐도 이웃이 미워질 때가 있으니 아무래도 본능은 아닌 것 같다. 본능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 오랜 시간 동안 이루어진 학습의 결과일 수 있다. 갓난 아이에게 독사의 ‘쉿’ 하는 소리를 들려주면 깜짝 놀란다고 한다. 오랜 기간 동안 파충류에게 당해온 인간의 공포가 DNA에 새겨진 결과다. 사랑을 배워야 한다면 어떻게 배워야 하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공허한 믿음이고 지식이 곧 지혜가 되는 것은 아니니 모쪼록 내 몸이 사랑을..

단상/일상 2021.09.08

불완전한 경청

카톡으로 글을 쓸 때 평소 잘 안 쓰는 단어나 신조어를 타이핑하면 프로그램이 오타로 인식하고 스스로 알아서 가장 그럴듯한 단어로 바꿔준다. 뜻은 고맙지만 확인 안하고 발송하면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문장이 전송되어서 당황했던 경험이 있다. 배려하는 마음이 섣부른 예단(豫斷)으로 인해 오히려 화근이 된 셈이다. 경청이란 의미가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본 적이 있다. 잘 듣는다는 사전적 의미는 짐작이 되는데, 잘 듣는다는 것이 어떻게 듣는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대략 공통적으로 이야기되는 경청의 다섯 등급의 수준을 인용해 본다. 5등급 수준: 상대방을 무시한다. 전달되는 내용이 하나도 없다 4등급 수준: 듣는 척한다. 자신의 생각 속에 빠지고 집중하지 않음으로 대화 상대가 불편해진다. 3등급 수준: 선택적으로..

단상/소통 2021.09.08

윤활유 한 방울 2

대면에서 비대면으로 커뮤니케이션 방법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일과 중 ‘까똑’ 소리가 한동안 들리지 않으면 내가 뭔가 소외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지경이 됐다. 따라서 우리의 일상이 된 비대면 방식의 의사소통에 대한 에티켓도 필요해 졌다는 생각이 든다. 그 중에서도 카톡을 사용하는데 필요한 예절 가운데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10가지를 정리해본다. 예절은 사회가 부드럽게 돌아가도록 하는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한다. 아무쪼록 편하고 즐거운 카톡 사용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1. 상대의 활동 시간대를 고려한 사용 시차가 있는 나라는 물론이고 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를 새벽에 깨우는 실례를 범해서는 안된다. 특히 단톡방과 같이 거주지가 다른 사람들이 한방에 모여 있을 경우 더욱 주의해..

단상/예절 2021.09.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