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행복

행복했던 순간 3

Chris Jeon 2021. 9. 11. 12:26

 

 캐나다로 이민 와서 처음 정착한 B.C주에 있는 작은 도시는 마치 고향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물론 낯선 이국 땅에 처음 발붙이고 산 곳이니 그러겠지만, 천당 보다 조금 못한 999당이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문자 그대로 산 좋고 물 좋은 곳이어서 더욱 정이 가는 곳이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이민 초기의 어려움을 많이 어루만져준 한 local 성당은 마치 고향 부모님 집과 같은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아내를 따라 운전 기사로 성당을 다닌지 거의 8년 만에 세례를 받았다. 청강생 보다는 정식 졸업장을 받아 두는 것이 나중에 뵐지도 모르는 그분을 만날 때 더 유리할 것이라는 세속적인 계산이 마음속 저 밑바닥에 깔렸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정식으로 성당 재적 학생이 되고난후 나름 열심히 성당의 멤버가 되기 위해서 노력한 것 중 하나가 밤 시간대 성체조배를 다닌 것이다. 모두들 힘들어 하는 시간대를 맡겠다고 했다. 나이 드신 할머니들이 부탁하는데 젊고, 시간도 많은 내가 거절하기도 뭣해서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 시간대를 맡았다. 3시 성당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시에 기상해야 하고 1시간 성체조배를 마치면 4, 여름이면 먼동이 터오고 겨울에는 아직 깜깜하다.

 

 성체조배하는 동안 그냥 멍하니 앉아 있기가 지루하여, 누가 누구를 낳고…, 솔직히 시간 보내는 것을 주 목적으로 꾸역꾸역 성경책을 읽거나 아무도 보는 사람 없으니 평상시에는 조금 멋쩍어서 잘 하지 않던 기도를 자못 진지한 자세로 하곤 했다. 모두가 잠든 시간대에 성체조배실의 엄숙한 공간에 나 혼자만 있는 것 자체도 사실 새로운 경험이었고 신선했다. 물론 많이 졸리기는 했다. 때론 불편한대로 플라스틱 의자를 옆으로 이어두고 새우잠을 자기도 했다.

 

 어쨌거나 한시간이 지나고 다음 교대자가 와서 지루, 신선했던 임무를 마치고 성당문을 나서면, 바로 앞에 마주치는 큰 나무에서 엄청 많은 새들이 모두 함께 큰 소리로 지저귀곤 했다. 특히 여름 철에는 새들이 기상해서 먹이 활동을 막 시작하는 시간대 였는지 온갖 소리로 귀가 멍멍할 정도 였다. 인간이 일어나기 귀찮아 하는 시간에 새들은 이렇게 부지런을 떠는구나. 노래하는 새 소리를 뒤로하고 희뿌옇게 먼동 트는 거리를 신나는 팝송을 들으며 차를 몰 때면 나도 남보다 먼저 세상을 여는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는 뿌듯한 보람과 함께 뭔가 착한 일을 했다는 소박한 기쁨을 느끼곤 했다.

 

202066

내가 나름 행복했던 때를 기억해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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