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재미

낚시 8맛

Chris Jeon 2021. 9. 14. 01:46

 

1. 친구가 생긴다

술꾼들이 술 인심 후하듯이 낚시꾼들은 낚시 정보에 인색하지 않다. 공통 관심사를 갖고 아낌없이 퍼주는 분위기가 조성되니 낚시 이야기를 나눌 때만큼은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된다.

 

2. 상상의 나래

여행지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여행을 계획할 때가 더 즐겁다고 했다. 어디로 갈까? 그곳은 어떤 풍경일까? 몇 호 바늘을 맬까? 어떤 놈이 물까?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편다. 맛있는 것 먹을 때 보다 맛있는 음식 상상할 때 침이 더 흐르는 법.

 

3. 가는 길이 즐겁다

고기는 이른 새벽이나 해 저물 때 잘 문다. 새벽에 작은 낚시배를 타고 바다로 나서면 해돋이를 볼 수 있다. 뱃전에 앉아, 파도를 이고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은 쉽게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다.

 

4. 기다림의 묘미

만약 매 10초 마다 고기가 문다고 생각하면 그 같은 중노동도 없을 것이다. 낚시는 야구와 같다. 3할 타자면 아주 훌륭한 선수다. 10번 출조에 3번 고기를 낚을 수 있다면 대 성공이다. 기다림 끝에 얻는 수확, 그 기다림 동안 즐기는 자연, 밑질 수 없는 장사다.

 

5. 손맛

말하면 무엇 하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홀연히 다가오는 생명의 꿈틀거림. 사냥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내가 제대로 정신 통일 해본 것은 대어와 사투를 벌릴 때뿐이다.

 

6. 나누는 정

잡은 고기를 집으로 냉큼 가져가는 낚시꾼은 하수다. 동료와 갯바위에 앉아 잡은 고기를 듬성듬성 설어 소주 한잔과 함께 나누는 맛. 이 맛을 포기할 수 없어 충분한 고기를 확보 못했을 때는 시장에서 산 고기를 집에 가져가기도 한다.

 

7. 뒷풀이 흥

생사를 같이한 낚시 친구끼리 그냥 헤어지면 섭섭하지. 하루 종일 중노동 했으니 배가 출출하다. 이런저런 과장된 자랑과 함께 내일의 출조를 기약하며 뒷풀이하는 즐거움을 생략한다면 뭔가 허전할 터.

 

8. 아쉬움의 매력

남의 손에 있는 떡이 더 커 보이고 내 옆자리가 명당이었을 것 같다. 집에 온 후 곰곰이 오늘의 출조를 복기해 보면 항상 아쉬움이 남고 이 미련이 곧 다음날 새벽에 나로 하여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게 하는 힘이 된다.

 

2020618

내가 왜 그토록 낚시에 매료됐을까 생각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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