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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라도 괜찮고 1

“혼자면 외롭고 함께면 괴롭다.” 오래전 어느 강연에서 들은 기억이 있는데 딱 와 닿아서 아직도 기억된다. 아니, 내 심정을 꿰뚫어 본 것 같아 섬찟하다. 내가 보기에 나는 좀 소극적인 사람이다. 여러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남이 보기에 그저 얌전하고 성실한 것처럼 보이는 타입이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인생 황금기를 남 앞에 서는 일을 많이 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타입이든 아니든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고, 실제로 내 맘에 안드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부대끼며 살아온 것 같다. 은퇴해서 일을 놓으니 그간 내 앞에서 왔다 갔다 하던 사람이들이 다 사라졌다. 내 천성이 어쨌든 주위가 북적대다가 홀연 조용하니 뭔가 귀에서 쨍~하는 소리가 들릴 듯한 적막함이 엄습해 온다. 새로운 사람을 찾고 ..

단상/일상 2022.11.20

첫눈

내가 사는 곳에 첫눈이 내렸다. 기상청에서 공식적으로 첫눈임을 인정하는 기준이 있다고는 하지만 내 눈으로 부실부실 내리는 눈을 보았기에 내게는 첫눈이 맞다. 무엇이든 ‘첫’ 이라는 것은 설렘을 준다. ‘첫눈’ ‘첫사랑’, ‘첫출근’ … 그럼 ‘첫죽음’은? 설레지도 않지만 용어 자체가 어색하다. ‘첫’이란 단어를 썼지만 사실은 처음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전부터 겨울이 시작되면 눈이 내렸고, 사랑이란 의미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익숙했던 것 다시 보니 반갑고, 말로만 듣던 것 내가 해보니 좋더라. 이번 겨울만 눈 오고 다음부터는 눈이 안온다면? 사랑이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면? 설레는 느낌이 달라질 것 같다. 결국 내게 익숙한 것이고, 이번이 처음이지만 다시 내게 다시 올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되니까 ‘첫..

단상/일상 2022.11.16

싸움 2 : 싸우기 위한 싸움

# 싸움에는 이유가 있다. 이유 중에는 싸우려고 결심했기 때문에 싸우는 것도 있다. 돈 받고 싸우는 격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격투기는 나름대로 룰이 있고 심판이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말하면 싸움이 아니고 경기다. 상대에 대한 증오심. 이런 경우에는 이해와 타협이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상대를 해쳐야 한다는 투지만 불타오를 뿐이다. 증오심이 형성된 이유는 물론 있다. 논리적으로 생각할 경우, 증오심이 형성된 이유를 풀면 증오심이 사라지고 이해와 타협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일단 증오심이 내 마음에 자리잡으면 이성이 잘 작동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해와 타협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에 의해 작동되기 때문이다. 벼락 맞은 듯 어떤 큰 각성에 의해 증오심이란 것을 자각하고 던져 버..

시사 2022.11.14

싸움 1 : 끝없는 싸움

통상 싸움에는 끝이 있다. 승자, 패자, 무승부, 휴전. 그런데 끝없이 이어지는 싸움도 있다. 부부싸움이다. 부부 관계가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싸움의 소재가 무궁무진하다. 최대치의 기대를 안고 상대를 고른 만큼 실제 생활하다 보면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 만을 사랑하는 사람' 오직 이것 하나만을 조건으로 상대를 골랐다고 하는 사람, 실제로는 사랑이 제일 먼저라는 이야기지 그 뒤에 깔려 있는 부대 조건들이 많다. 그래서 찾기만 하면 싸울 소재가 널려 있다. 싸움이 싸움을 부른다. 반찬 투정하는 남편 때문에 시작된 싸움이 시어머니에게 불손한 아내 태도 문제로 번지고 나중에는 30년전 혼수 문제로 비화된다. 한가지를 해결하고 다음 문제로 넘어가야 정리가 ..

단상/일상 2022.11.11

임윤찬 2

인간과 점점 비슷한 로봇이 만들어지고 있다. 인간과 완전히 같은, 달리 말하자면, 감정까지 포함해서 인간이 발휘하는 모든 능력과 같거나 더 나은 능력을 가진 로봇이 만들어진다면, 그럴 리는 없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벌써 사람보다 바둑 더 잘 두는 로봇이 나왔고 추상적인 개념을 논할 수 있는 수준의 로봇도 나왔다. 로봇이 임윤찬처럼 귀신같이 피아노 잘 치는 걸 우리가 감상할 때, 로봇이라는 것을 알면 느낌이 다르겠지. 그럼 누가 치는지 모르게 녹음만해서 듣는다면? 벌써 반려 로봇이 인기란다. 깨끗하고, 충직하고, 관리 편하고… 강아지와 완전, 아니 비슷하게만 돼도 아주 소신을 가진 사람 아니면 똥 치우는 수고 보다 싫증나면 건전지 뽑고 버릴 수도 있는 로봇 반려동물 택할 것 같다. 조심스러운 ..

단상/일상 2022.11.06

임윤찬 1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피아노 참 잘 친다길래 유튜브로 연주하는 모습 봤다. 귀신같이 친다. 나는 피아노 문외한이므로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전부다. 그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피아노를 잘 칠 수 있을까? 재능을 타고 났고, 노력을 했고, 기회가 있었다. #1 재능 누군가가 인간을 만들었다면, 같은 종류와 수준의 재능을 주었을까? 아니면 각자 다른 재능을 갖도록 만들었을까? 우리가 볼 수 있는 인간의 외형적 조건만 보더라도, 손가락이 길고 유연하다: 피아노 치기에 유리한 조건 팔뚝이 굵고 근육이 강하다: 손으로 힘쓰는 데 유리한 재능. 어떤 특별한 재능을 갖도록 만들었다면 그 재능을 활용하도록 할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창조주는 무의미한 행동은 하지 않으실 것 같다. #2 노력 열심히 노력해서 그 ..

단상/일상 2022.11.06

나의 꽃말 1

해국의 꽃말은 ‘침묵, 기다림’. 절묘하다. 딱 그 캐릭터와 맞다. 센바람 찬바람 맞으면서 하필이면 바위틈새에서 옹송그리며 자랄까? 꽃 모양도 작은 해바라기 같고. 그 자리를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 돌아오실 ‘님바라기 꽃’? 꽃말 짓는 사람 존경한다. 그 많은 꽃들 모두 꽃말이 있는데, 한결 같이 그 꽃의 아름다움에 뜻을 심어주는 표현이다. 오랜 동안의 세밀한 관찰과 영감 없이는 어려울 것이다. 문득 “내 이름은 뭔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Identity를 나타내는 중요한 것인데, 내 의지와는 관계 없이 성이 주어지고, 항렬 지키고, 조상님의 희망 사항 담아서 문자 그대로 주어진다. 내가 되고 싶은 모양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질 수도 있다. 지금 내 모습과 완전히 다른 경우도 생기..

단상/일상 2022.11.03

특별한 나눔

잠에서 깼다. 잠시 죽었다 살아난 기분. 금방 다시 죽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고, 신문을 본다. 29살 꽃다운 나이 여성이 갑자기 뇌사 상태가 돼서 100여명에게 장기기증하고 저 세상으로 갔다는 기사를 봤다. 사랑했던 이를 떠나 보낸 사람들이 무덤 앞에 꽃을 두고 그리워 한다. 살아 생전 곱던 모습, 장한 모습, 다정했던 모습. 그리움에 감동 받아 죽은 자가 무덤 속에서 벌떡 일어서서 나온다면? 끔찍하다. 이곳에서 첫 의료보험증 받을 때 장기기증 서약했다. 사체도 해부용으로 기증할 의사를 묻는 난에는 동의 표시하지 않았고. 죽었지만 발가벗겨 이리저리 잘리기 싫더라. 자는 동안 나는 뭐했나? 모르겠다. 그냥 잤다. 내가 죽으면 내 몸은 어떻게 될까? 벌레 밥이 되고 훌륭한 비료가 될 수도 있겠지. 며칠 ..

단상/일상 2022.10.31

무제

이곳 할로윈 데이 전날 아침. 고국에서 일어난 안 좋은 소식이 전세계에 펴졌다. '안타깝다' '어처구니없다' '슬프다' '화난다' '부끄럽다' 등등의 감정.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는 제3자의 생각. 졸지에 생 때 같은 분신을 떠나 보낸 이의 마음은 실감 안된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서 보니 더 냉철해 질 수도 있겠다. 신문에 왠만큼의 분석과 재발 방지 대책이 벌써 나와 있네. 불순한 생각만 하지 말고 같은 불행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남의 자의 할 일이다. 곰곰이 생각하면, 우리 모두 분명 각자 할 일이 있지. 이도 저도 생각 안나면, 황망 중에 떠나신 분을 위해서 기도하면 되겠다.

단상/일상 2022.10.30

오케스트라 지휘자 2

한국 남쪽 단풍은 이제 시작이란다. 내가 사는 이곳은 끝물이다. 뜨는 해 지는 해처럼 도는구나. 인적 드문 산길에는 잎들이 어느새 가지에서 내려와 바닥에 누웠다. 이제 좀 쉬어야지. 싱싱했던 이파리들이 형형색색으로 카펫처럼 바닥에 좌악~ 깔리고, 그 위를 걸으면 조금 미안하기도하고 어찔어찔하다. 마치 밤하늘 총총한 별 고개 들고 쳐다보면 현기증 나듯이. 참 좋네. 그리고 고맙다. 자연의 오케스트라는 누가 지휘하실까?

여운 2022.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