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일상 164

잡초 대화

‘사부작사부작’ 생활 철학의 실천 방법 중 좋은 것이 잡초 뽑기다.아침에 스무개, 저녁 나절 또 같은 수 정도 뽑으면 그다지 넓지 않은 뜰은 내가 원하는 녀석들만 맘 놓고 자라는 천국이 된다. “잡초를 왜 잡초라 부르시나요? ““글쎄, 내가 너희들 이름을 잘 몰라서 그런다.”“혹시 쓸데 없는 녀석들이란 뜻은 아니겠지요?” 그러고 보니 ‘잡’자 들어간 단어는 대부분 그 의미가 좋지 않다.‘잡종’, ‘잡상인’, ‘시정잡배’ … 좀 망설이다가 궁한 답을 한다.“사실 이름도 모르지만 내가 같이 살기를 원하는 풀들이 아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잡초라 불리는 우리들이 얼마나 환경에 잘 적응해서 생명력이 이렇게 질긴지 아시나요?”“당신들이 좋아하는 잔디는 하루만 물 안 줘도 비실대지만, 우리는 그냥 내버려둬도 ..

단상/일상 2024.06.14

내가 누군지 모르겠소

‘부모님 날 낳으시고, 선생님 날 만드시고’서울 어느 성형외과 건물벽에 붙어있던 광고라고 한다.지금 봐도 잘 만든 걸작 광고문구라는 생각이 든다. 나를 나라고 할 수 있는 정체성(Identity)은 무엇일까? 나의 모양은 매 순간 변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1초전 나의 모습과 지금의 나의 모습은 다르다. 그 사이 세포 분열이 일어났을 수도 있고, 눈썹 한 개가 빠질 수도 있다. 선생님이 나를 새로 만드신 경우는 짧은 시간에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나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정신이란 존재 자체도 아리송한 것이지만, 하루 종일 오만가지 생각을 하듯이 어떤 정신이 나를 특정하는 지 알 수 없다. ‘내 마음 나도 몰라’ 라는 유행가 가사도 있다.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 내가 구별되는가? 김 아무개의 아버지..

단상/일상 2024.06.08

내 이름 부르는 이는?

평생 내 이름을 내가 큰소리로 부르는 경우가 몇 번이나 있을까?대부분 내 이름 부르는 이는 남이다. 나를 지칭하는 것은 이름 외에도 많다. ~ 아빠, ~할머니, ~박사님, ~회장님…하지만 그것은 관계상 혹은 직책/직위의 호칭일 뿐 나라는 브랜드명은 내 이름이다.이름은 나라는 존재의 ID를 대표하는, 나의 고객을 위한 명칭이다. 아침에 카톡이 온다. 받아보니 갓난아기가 웃고 있다. 내가 언제 갓난 아기를 친구 삼았지? 이름을 보니 CK, P. 누군지 모르겠다. 단서를 찾으려고 프로필 사진을 찾아보니 온통 아기 사진과 꽃 사진뿐이다. 더 이상의 조사를 단념한다. 그나마 이름도 여럿이다. 한국 이름, 영어 이름, 세례명, 남편 성 따른 이름. 이런 요소를 조합하면 한사람의 이름이 매우 복잡하게 나눠진다. 내 ..

단상/일상 2024.06.06

오월 결산

아~신록이다 했는데5월도 끝물이다.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시간이지만 일단 12토막 쳐 놨으니대차대조표를 만들어 보자. 수입기후 변화로 인류 멸종 일어나지 않아 1달 더 살았고,주위 아는 분들 역시 부고 소식 없어서더운 날 검은 옷 입고 “상사말씀 무슨 말씀…” 머리 조아리지 않았고,우리 식구 역시 사건사고 없어 5월이 4월 같았고,나는 여전히 두발로 땅 딛고 청춘인양 성큼성큼 걷고 있다.… 지출?모두 공짜로 받은 것 밖에 없어 지출 항목 ‘0’다. 뭣 같아 보이는 세상도 곰곰이 생각해 보니좋은 일 천지삐까리다.

단상/일상 2024.05.28

사부작사부작

인도로 망명한 티벳 노승에게 기자가 물었다. “그 험한 히말라야 산맥을 어떻게 넘어 오셨습니까?” 그 노승의 대답, “한걸음 한걸음 걸어서 왔지요.” 할머니들 밭에서 호미질 하시는 것 볼 때 경운기로 그냥 확 갈아 엎는 광경만 생각하면 좀 답답해 보인다. 하지만 한나절 일 끝내고 중참 잡수실 때 보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고랑들이 깨끗해진 것을 보고 놀란다. ‘사부작사부작’, 별로 힘들이지 않고 계속 가볍게 행동하는 모양을 뜻한다. 사부작사부작이 가능해지는데 전제 조건이 있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이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그 일을 즐길 수 있는 것.  빨리빨리 왕창왕창 문화에 젖은 우리가 사부작사부작의 의미를 잠시 잊고 산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드는 시간 생각했을..

단상/일상 2024.05.20

난 막걸리를 마시고

27세, 유학생, 여자, 한국 시골에서 태어나 명문 Y대 졸업. 캐나다 유학 후 영주권 취득을 위해 WORKING PERMIT으로 일하던 중 돌연사. 지병이 있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한국에서 수술 받기 위해 항공권까지 예약해둔 상태였음. 세례 받았고 미사도 착실히 참석. 성당 연령회에서 장례 지원. 가족은 한국에서 날아온 부모님과 여동생 한 명. 이곳 친구 소수. 관 들어줄 사람 없어서 내가 봉사. 사지 멀쩡하고 시간 많다. 이곳 문화에 따라 관 뚜껑 열려 있고 조문한다. 참 예쁜 얼굴이다. 죽은 자 예쁘든 안 예쁘든 무슨 상관이겠냐 만은 그래도 이쁘고 젊은 얼굴 보니 더 안타깝다. 부모님 보니 50대 초반. 어머니가 무척 강하시다. 장례 미사 때 떠난 딸 회고하는데 많이 울지 않음. 미사 참석한 사람들..

단상/일상 2024.03.27

2024.03.22 아침 단상: 거짓말

내가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아온 것 같다. “열심히 공부 한다.” 배움을 위해서가 아니고 좋은 직장 얻어서 잘 살려고. “부하를 위해서 내가 먼저 위험 지역에 들어간다.” 사실 장교 계급장 달고 쪽 팔리기 싫어서. “회사를 위해서 책임감 있게 헌신적으로 일 한다.” 승진 빨리 하려고. “은퇴 후 느리게 살자.” 사실 게으르거나 할 일이 별로 없어서. … 다른 사람은 어떨까? 나라를 위해서라며 잠도 안자고 뛰어 다니며 자신을 국민의 머슴으로 뽑아 달라고 한다. 그런데 뽑아 주면 머슴이 아니라 주인행세 한다. … 공상을 해본다. 만약 이마에 내 진심이 화면에 비치듯 나타난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참 재미 있을 것 같다. 아니 거의 세상 종말이 올 것 같다. 거짓말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나쁜 것만은 아..

단상/일상 2024.03.23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땅이 녹아 꽃은 망울을 터뜨리고 아이들은 그 위에서 뒹굴며 논다. 그러나 북방 언 땅에 살던 미녀의 가슴은 여전히 겨울이다.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새싹 돋는 들판에서 죽고 죽이는 싸움이 벌어진다. 귀 간지럽게 들려야 할 새소리가 사람들의 악다구니에 묻혔다 춥습니다. 하늘이여 봄을 주소서 황당한 것은 그분도 마찬가지다. 잘 먹고 즐기라고 봄 밥상을 차려줬더니 엎어버리고 머리끄덩이 잡고 싸우네. 차려준 것도 못 먹는 자식들 이제 보기 지겹노라. 한 많은 여인의 가슴은 아직 차갑지만 대지는 이미 봄의 열기에 들뜨기 시작한다. 전쟁통에도 생명은 태어나고 귀 기울이면 차가운 얼음장 아래 물 흐르는 소리 들린다. 감사합니다. 차려 주신 진수성찬 잘 먹고 힘내서 밭고랑 하나부터 갈겠습니다. 지지고..

단상/일상 2024.03.12

그것은 이론이고…

“그건 이론이고…” 용어 선택이 정교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 뜻은 이해된다. 세상사 법대로, 논리대로 대로 안된다는 의미다. 법은 그물과 같아서 가로 막히는 것 보다 빠져나갈 구멍이 더 넓다. 원칙에 따라 사는 사람 보다 그러지 않은 사람들이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큰 길로 가고 안가고는 본인 마음이다. 다른 지름길이 있다고 생각하면 그리로 갈 것이고 분명 틀린 방향이라고 확신하면 딴 길을 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니는 길이 목적지까지 가장 쉽게 갈 수 있는 길일 확률이 높다는 것은 맞다. 이론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이론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율법이 나쁜 것이 아니고 율법에 매이는 것이 나쁜 것이다. 세상살이 기준이 없으면 옳고 그름을 가리는 ..

단상/일상 2024.02.26

앉은뱅이 용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KRWUGOF9ZM&list=RDyKRWUGOF9ZM&start_radio=1 ‘앉은뱅이 용쓴다’란 말이 있다. 참 슬픈 말이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해도 앉은뱅이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생각에는 한계가 없다. 그러나 세상일은 생각만으로 이루어 지지는 않는다. 그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다. 이러쿵 저러쿵 내 생각을 펼쳐본다. 공허하다. 나의 생각은 내 위에서 놀고 있는 그들의 세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들은 히죽히죽 웃을 것이다. “앉은뱅이 용쓰고 있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그들 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나의 한계를 절감한다. 그러나 앉은뱅이는 용쓰고 싶다. 잘려질지라도 독사처럼 머리를 곧추 세우고 싶다. 앉은 채..

단상/일상 2024.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