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이전투인(泥田鬪人)

Chris Jeon 2024. 8. 16. 22:00

 

 

 

내 어릴 땐 내가 어른이 되면 문자 그대로 어른스러워질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나이들어 보니 어떨 땐 아이들 보기에 민망해질 경우도 있다.

 

그래도 뿌리가 한국땅에서 자란 덕분에 여전히 고국에 대한 관심이 많다. 최근에 한국에서 들리는 소리와 그 모습이 근자에 유행하고 있는 단어, ‘weird’를 떠올리게 한다.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 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경우, 또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박수 치는 사람들,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분명 올바르지 않은 것 같은데 직접 그 현장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도 weird하게 되는 신비한 현상들…

 

감정이 격해져서 싸움이 시작되면 내 몸은 이성보다는 본능을 따른다. 뇌가 긴급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몸과 마음을 오직 생존과 승리만을 위해 반사적으로 작동하도록 system을 바꾼다.

 

투견장의 개를 보면, 투견장에 끌려올 때는 두려움에 떨지만 막상 상대와 싸움이 붙으면 오직 이기기 위한 행동만을 할 뿐 내가 이곳까지 끌려오게 된 경위나 주인에 대한 원망, 내가 왜 싸워야 하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어느 선배님 왈, 훈련 받을 때는 전투에서 강한 애국심과 전우애로 싸운다고 배웠는데 막상 총탄이 빗발치고 전우가 쓰러져 비명 지르는 모습을 보니 오로지 나를 지배하는 감정은 상대를 향한 ‘적개심’ 하나 밖에 남지 않더라.

 

광복절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나쁜 나라로부터 조국이 해방된 날을 기념하고 다시는 정복당하는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로 반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국가로 발전해 나가자는 결의를 다지는 행사인데, 전 국민이 둘로 나뉘어 으르렁댄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동포들도 덩달아 편싸움해서 보는 사람들을 민망하게 한다.

 

본래의 목적은 오간데 없고 오직 ‘상대는 나쁘고 나는 옳다’를 증명하고 적을 섬멸하기 위한 적개심만 번득이는 것처럼 보인다. 바다 건너 어떤 나라는 혀를 차고 또 어떤 나라는 실실 웃을 것 같다. “그러니 나라를 뺏겼지”. 싸움 붙여 놓고 돈 세는 투견장의 관객들 함성 속에 열심히 싸우는 개들의 모습이 연상되어 섬뜩해진다.

 

죽자사자 싸움하는 사람들을 그대로 두면 둘 중 하나가 상하거나 둘 다 더 이상 못 싸울 정도가 돼야 싸움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전에 싸움을 끝내는 방법은 그나마 이성이 있는 주변인들이 말리는 방법이다. 아니면 경찰을 불러 끌고 가게 하든지.

 

아직도 한국은 발전 중이다. 선배들은 예전에는 꿈도 못 꿨던 일들을 이루었고 그 기적을 이어받은 후배들은 선배들 역시 꿈으로만 생각했던 일들을 거침없이 해낸다. 진흙탕에서 개 대신 싸움질 하는 인간들의 모습이 매스컴의 주요 이슈가 되지만 그건 뉴스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개가 사람을 물면 토픽이 안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토픽이 된다’는 독설도 있다.

 

불행히도 weird한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리더로 뽑혔고 그런 사람들의 weird한 행동이 주로 매스컴을 타니 한국 사회 전반이 weird하게 돌아 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으로 믿고 싶다. 아니 그럴 것이다. 모든 면에서 부족한 내 눈에도 비정상으로 보이니 국민들 다수는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대로 두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비정상이 정상을 몰아내는 불행한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 이전에 호시탐탐 좋은 먹잇감 노리는 열강들의 밥이 될 수도 있다. 그런 막다른 골목에 도달하기 전에 양식 있는 다수의 국민들이 용기 있게 나서야 한다.

 

침묵하는 다수가 아닌 제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다수가 나서서 앞뒤 못 가리고 눈앞의 이익과 적개심만으로 눈이 멀어 진흙탕 속에서 싸우는 개, 泥田鬪狗(이전투구)가 아닌 인간, 泥田鬪人을 말리든지 끌어내야 할 시점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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